[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누군가 당신을 지켜본다”

타이틀 :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
감독 :?폴 그린그래스 (Paul Greengrass)
원작 : 로버트 러들럼 (Robert Ludlum)
음악 : 존 파웰 (John Powell)

출연진
맷 데이먼 (Matt Damon) – 제이슨 본 (Jason Bourne)
줄리아 스타일즈 (Julia Stiles) – 니키 파슨스 (Nicky Parsons)
데이비드 스트라탄 (David Strathairn) – 노아 보슨 (CIA Deputy Director Noah Vosen)
알버트 피니 (Albert Finney) – 알버트 허쉬 박사 (Dr. Albert Hirsch)
조앤 알렌 (Joan Allen) – 파멜라 랜디 (Pamela Landy)

모든 정보기관은 불법적 공작을 하고 있을까

여기 미군 대위 출신 킬러가 1명이 있습니다. 미 CIA 내부 비밀조직의 전문 암살요원 제이슨 본. 첩보 액션스릴러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 2007> 주인공입니다. 그는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 특별 세뇌프로그램에 의해 길들여진 전문 킬러입니다.

국가는 정보기관을 운용합니다. 최고 권력자는 합법적 비합법적 정보취득 권한을 정보기관에 부여합니다. 모든 정보기관은 이중적입니다. 합법과 불법의 담장 위를 걷습니다. 국가 안보와 자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명분을 내걸고 나라안팎으로 무소불위의 공작을 수행합니다. 무소불위의 권한은 합법을 가장한 수많은 불법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불법이 용인되면 부패가 자랍니다. 부패는 외부 자본과 쉽게 유착됩니다.

독점적 권한을 가진 조직엔 반드시 필히 부패가 서식합니다. 부패하기 쉬운 고위층은 비즈니스(?)를 개시합니다.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비밀조직을 사적(私的)으로 전용합니다. 애꿎은 킬러들은 부패은폐의 도구가 되고 맙니다. 바로 킬러 제이슨 본의 ‘고뇌의 대장정’ 출발점입니다.

주인공 제이슨 본은 CIA의 일반 요원들과 다릅니다. 팀 단위로 특정 지역을 담당하는 붙박이 요원이 아닙니다. 극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 암살전문 요원입니다. 이미 본인이 인간개조 프로그램을 통해 살인 기계로 변해 있습니다. 더구나 조직은 그에게 공작 수행을 위해서라면서 살인면허까지 부여한 상태입니다. 미국의 국익에 저해되는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합니다. 이 시간에도 미 국무부가 제도적이고 의례적인 외교술을 발휘한다면 미 CIA의 비밀 조직들은 그들만의 매뉴얼대로 세계 곳곳에서 USA 국익을 위한 어둠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겠지요.

킬러는 조직이 만든 인간 병기

암살 전문 킬러들은 5대양 6대주를 거침없이 드나듭니다. 가방 속에 여권만 예닐곱 개. 구사하는 언어도 서너 개. 단독으로 때론 거점 요원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핀셋으로 뽑아내듯 타깃을 제거합니다. 휴대전화로 작전개시 명령이 접수되면 즉각 출동, 본능적으로 살인하는 인간병기입니다. 그들은 고도의 정신교육에 최고의 특공무술 생존기술을 익혔습니다. 모든 실제상황에 신출귀몰하게 적응하며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킬러는 작전 공간인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한눈에 왕래하는 사람 수를 파악합니다. 동시에 어느 쪽 몇 시 방향에 타깃대상이 있는지 변별합니다. 타깃의 키와 몸무게를 정확히 가늠해내고 제압 방법까지 이미 견적이 나옵니다. 홀 중심에서 주변부까지 몇 걸음인지 비상구는 어디에 몇 군데인지를 감안해 퇴로를 계산해 놓습니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한눈에 주변 자동차 번호를 다 암기해 버립니다.

그들에게 과거는 무의미합니다. 킬러프로그램 훈련을 통해 이전의 기억들을 점차 잊게 됩니다. 이런 인간 병기들이 정말 있을까 싶지만 모든 정보기관은 비합법, 불법적인 공작을 병행하기에 킬러 양성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고 은폐되어 있을 뿐입니다.

영화 <본 얼티메이텀>은 1편 <본 아이덴티티 The Bourne Identity 2002년 개봉>, 2편 <본 슈프리머시 The Bourne Supremacy 2004년 개봉> 시리즈의 3편에 해당합니다. 20세기 냉전이 종식되고 절대 악으로 상호 규정되는 양대 진영과 이념적 대치가 사라진 21세기. 첩보영화는 “敵은 내부에 있다”는 시나리오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로버트 러들럼의 동명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제이슨 본 ‘3부작’은 이전 첩보영화의 구태의연한 스테레오타입을 떨쳐버립니다. 2시간 내내 핸드헬드 촬영의 긴박감과 탄탄한 구성은 숨 한번 크게 내쉬지 못할 만큼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고뇌하는 킬러

제이슨 본은 미국에 대드는 아프리카 젊은 독재자를 제거하려다 그의 어린 아들딸이 현장서 함께 목격되자 잠시 살인을 머뭇거립니다. 그 사이에 역습을 받아 총상을 입고 지중해 바다를 떠돌다 어선에 구출됩니다. 본은 부상 후유증 탓에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어부들에게 의탁합니다. 조직은 그를 이탈자로 분류하고 조직의 제거대상으로 등록합니다. 조직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비밀 노출을 가장 꺼립니다. 특히 조직의 치부(恥部)를 알고 있는 조직원은 제거대상이 되거나 대상을 제거하려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 시리즈 3부작은 버림받은 본이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추적하면서 거대 권력 미 CIA와 맞서는 액션을 스피디하게 보여줍니다. 스파이영화 ‘007’ 제임스 본드는 결코 고뇌하지 않았습니다. 섹시한 본드걸과 최첨단 무기로 철저하게 계산된 오버 액션을 연출합니다. 세련되지만 공감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제이슨 본은 흔들리는 스파이입니다. 암살 대상자 옆에 그의 부인이 함께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하는 수 없이 본은 그 둘을 함께 처리합니다. 그 이후 그는 늘 악몽에 시달립니다. 결국 모스크바를 뒤져 그들의 외동딸을 찾아내고 그녀 앞에서 죄를 고백합니다. 최첨단 훈련프로그램도 근원적 인성은 바꾸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잃어버린 기억만을 되찾기 위해 자신을 키운 조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타고난 천부적인 킬러인지, 킬러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추적합니다. “나는 살인을 즐겼던 것인가, 살인을 지시하는 명령에 복종했던 것인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자신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의 입안자들을 찾아갑니다. 맷 데이먼의 지적이면서 파워풀한 연기는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이 지점서 킬러첩보원의 흔들림에 우리들도 자연스럽게 빠져듭니다. 본은 혈혈단신으로 CIA 비밀조직 내부를 휘저어 놓습니다.

빛나는 아날로그 액션

유독 육박전 씬이 많습니다. 맞싸우는 킬러도 조직이 키운 또다른 자신이기에 그들의 결투는 생생하고 처절합니다.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근육파워가 전해질듯 다가와 오히려 관객들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토리노, 스페인 마드리드, 모로코 탕헤르, 미국 뉴욕 등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펼치는 제이슨 본의 맨몸 액션은 SF영화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아날로그적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CG(컴퓨터그래픽)로 조작된 판타지를 보여주는 영화는 감칠맛이 없습니다. 훈남 데이먼의 솟구치는 뜀박질과 본능처럼 튀어 나오는 위기대처능력에서 사람 냄새 풀풀 납니다.

오밀조밀한 건물 옥상과 옥상을 건너뛰면서 재빨리 잡아챈 빨래감을 손에 감고 병조각이 촘촘히 박힌 담을 넘어가는 연쇄동작,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카메라도 함께 뛰어내려 근접 촬영한 생생함은 현란하기 그지없습니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자동차 추격 시퀀스. 수백 대의 차량이 물 흐르듯이 움직이다 충돌하고 나뒹구는 스펙타클. 쫓고 쫓기는 추격신에서 차체가 걸레처럼 찢겨져 나갑니다. 대역 없이 웬만한 장면은 리얼액션으로 선보인 데이먼의 표정은 압권입니다. 장면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수많은 각도에서 들고찍기 기법으로 액션 크리에이티브를 연출합니다. 빠른 편집 역동적인 음악은 영화평론가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습니다.

감시당하는 21세기를 폭로하라

본 시리즈 3부작을 보면 작금의 세계에서 “과연 개인의 사적 비밀이 보호 받을 수 있을까”하는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더구나 본 시리즈는 황당한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 첩보원 세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 세계 정보 감청망 ‘에셜론 프로젝트(ECHELON Project)’의 일부가 생생히 드러납니다. 에셜론 프로젝트는 미국의 NSA(국가안보국)를 중심으로 영국 등 우방국 정보기관들과 세계 각국 주둔 미군 감청기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감청시스템은 전 세계의 E메일, 무선통신, 전화, 팩스 정보를 위성을 통해 취합. 분석하는 정보감시망입니다. 수십 개의 인공위성이 합세하여 신체의 신경망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정보는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NSA로 전달되고 NSA의 메인 컴퓨터는 음성인식 장치와 단어검색시스템을 이용, 세계 곳곳에서 전송된 모든 내용을 검색, 필요한 정보를 뽑아냅니다.

영화 초반 사라진 제이슨 본을 찾아내는 과정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CIA 상황실은 특정시간대 제이슨 본과 관련된 특정 단어가 들어간 전 세계 유무선 통화를 감청하고 검색해냅니다. 관련 통화자를 찾아내고 곧 그들의 신원이 파악됩니다. 현장 책임자들에게 지시가 하달되고 저격수까지 좌악~ 깔립니다. 동시에 본이 나타나게 될 특정국가 공공장소의 수십대 CCTV는 CIA상황실의 모니터로 연결됩니다. 배치 요원들도 동영상으로 현장중계를 합니다. 제이슨 본 제거 작전은 인터넷게임처럼 진행됩니다. 물론 ‘우리들의 호프’ 본은 명석한 머리로 정교하다는 CIA작전의 틈새와 사각지대를 정확히 포착하여 이 거대 시스템을 조롱합니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전 범죄나 완전 음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의 커뮤니케이션도 꼬투리를 남깁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 타인 명의의 대포폰을 써도 흔적은 남습니다. 특정 통신망에 로그인만 해도, 특정 홈피에 접속만 하여도 IP주소를 남기게 됩니다. 아무리 첩첩산중에 숨으려 해도 차 기름이 떨어져 한번 들른 주유소 CCTV에, 도피 자금을 인출하려한 현금지급기 카메라에 영상 흔적이 남습니다.

당신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포털 메인 서버는 당신의 비밀 메일 내용을 전부 기억합니다. 누구와 얼마나 어느 곳에서 무슨 내용의 콘텐츠를 주고받았는지 다 기록합니다. 당신의 주거래은행과 신용카드사는 당신의 씀씀이, 소득상태, 금융거래, 입출금 내역을 다 알고 있습니다. 교통카드 기능을 겸한 신용카드로 인해 당신의 행동반경, 소비행태, 이동동선까지 기록됩니다. 당신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기지국과 교신을 하기때문에 실시간 당신의 현재 위치는 그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회사 본인의 좌석, 길거리 곳곳, 지하철 내부, 시내버스 내부, 커피숍 구석진 곳, 엘리베이터 내부… CCTV는 늘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거대 조직이 알고 있는 셈입니다.

대개의 정보기관은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작전본부와 수집된 정보를 분석평가하는 정보본부로 이뤄집니다. 정보도 결국은 상품이므로 정보소비자(권력자)의 입맛에 맞도록 제조되고 취사선택됩니다. 본 시리즈 3부작 중에서 고위급 관리가 러시아의 신흥재벌과 유착, 정보자금을 빼돌려 공생하는 음모가 나옵니다. 본의 제거가 절실한 이유는 본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감시당한 적이 있나요? 압도적인 디지털 테크놀러지는 당신의 비밀영역을 언제든지 훼손할 수 있습니다. 정보기관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한 인간의 삶을 쥐락펴락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원하는 곳에서 제3자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은닉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대중사회 속 익명의 얼굴로 살아가는 삶을 한번쯤 되돌아 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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