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 포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남긴 숙제

<자료사진=뉴시스>

1.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여운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은 지난 3월 27일 고농축우라늄(HEU)과 플루토늄의 제거 및 최소화 노력을 통해 핵무기 원료인 핵물질을 제거해 나감으로써 핵테러 가능성을 차단토록 한다는 내용의 정상선언문(서울 코뮈니케)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는 핵테러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방안, 핵물질의 불법거래 방지, 핵물질과 원전 등 핵관련 시설의 안전강화 등이었다. 주요국 정상들은 다양한 양자 및 다자회담을 통해 핵안보 방안을 논의하였고 초점은 핵물질의 폐기였다.

코뮈니케 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53개국 세계 정상급 지도자들은 핵안보를 강화하고 핵테러의 위협을 감소시키며 테러리스트, 범죄자, 여타 비인가자들의 핵물질 획득을 방지하기로한 의지와 실천을 천명하였다. 세계 지도자들은 핵군축, 핵비확산 및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지구촌의 공동 목표임을 재확인하였다. 선언문은 <글로벌 핵안보체제> < IAEA의 역할> <핵물질> <방사선원>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 <운송보안> <불법거래 방지> <핵감식> <핵안보와 문화> <정보보안> <국제협력> 부문으로 분류되어 구체적 실천방안을 명기하였다.

참고로?‘핵안보’라고 하면 ‘원자력안전(nuclear safety)’혹은 ‘핵비확산안전조치(safeguards)’와 혼동하기 쉬운데, ‘원자력 안보’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이 자연재해나 기술적문제로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핵비확산안전조치’는 국가단위의 핵물질 전용과 핵개발을 저지하는 조치이다. 반면 ‘핵안보’는 국가가 아닌 테러집단이나 개인에 의한 핵을 이용한 테러로부터 인류의 안전을 지키고자 의도적인 핵물질의 절취, 불법거래 등을 사전에 저지하고자 하는 조치를 말한다.

2.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 남긴 것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는 한마디로 ‘안보외교 올림픽’이었다. 핵안보가 핵심 주제였지만 전 세계에 한반도 안보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북핵으로 야기된 ‘코리아 디스카운트’(지정학적 요인으로 한국경제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해소도 큰 효과를 보았다.

세계 2대 화약고로 불리는 한반도에 북한의 김정은 체제 등장이후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최된 이번 회의가 한반도 평화 안정에도 상당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북한이 핵안보 정상회의 개최와 맞물려 발표한 군사 로켓 발사계획에 대해 미국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북한의 전통적 우방들조차 우려를 표명하면서 로켓 발사를 제재해야 한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확산된 것은 큰 소득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세계 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인 것만으로도 국제사회에 한국 안보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핵 리스크로 항상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안고 있는 한국이 서울에서 핵안보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며 “금융불안 등 경제위기에도 믿음을 주는 일종의 보험 구실도 한다”고 강조했다.

3.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58명의 지도자들이 핵안보라는 주제 아래 서울에 집결한 것 자체가 한국이 `글로벌 거버넌스’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회의에 참가한 53개국은 전세계 인구의 80%, 전세계 GDP의 90%를 대표하고 있어, 지구촌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의 외교 당국자들은 “G20로 세계 경제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데 이어 국제안보 분야의 최고위급 포럼인 핵안보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한국은 세계 외교무대의 변방에서 중심국으로 우뚝서게 됐다”고 자평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회의 폐막식 의장 기자회견에서 “핵안보 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는 내 평가가 아니라 오신 분들이 한 것이다”며 “이제 우리는 핵 없는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세계 지도자들은 북한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무력행사를 목적으로 한 북한 로켓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한 목소리로 드러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3월 26일 한국외대 특강에서 ‘도발-보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놨고, 이 맥락에서 2ㆍ29 베이징 합의에 따른 식량지원 문제도 재고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대북 압박 행보를 최고 수위로 높였다. 과거 `북한 감싸기’에 주력해 왔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로켓 발사에 우려를 표명했고,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의 생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4. 아시아의 두 얼굴, 국제협력 ㅡ 힘의 각축전

‘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이 저마다 아시아 각국과 ‘합종연횡’식의 관계개선을 통해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한편,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 바탕에는 조만간 세계 인구의 60%, 세계 GDP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아시아에서 밀려난다는 것은 곧 ‘미래 경쟁에서의 도태’라는 공통 인식이 깔려 있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과 본격적 양국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미국이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방침을 확정한 상황에서 ‘힘의 공백’을 대신 메우고 지역 맹주로서의 위상을 다지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주도의 서방 세계가 지난 10여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세력과 맞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중국은 아이나크 광산 채굴권을 따내는 등 아프가니스탄과 경제적 관계에만 치중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미군 철수 후에도 여전히 탈레반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아프가니스탄 안보에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중앙아시아에서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높이고 이에 따른 경제적 이익도 함께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우선 아프가니스탄 군대를 훈련시킬 인력을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초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으로, 시카고 G8(주요 8개국) 정상회의에 불참하면서까지 중국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이다. 푸틴의 이 같은 행보는 중국과 함께 아시아 국가를 아우르는 외교 잔치를 벌여,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항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푸틴은 방중 기간 중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상하이협력기구는 중국, 러시아 외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역내 안보협력기구이다. 올해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긴밀히 갖고서 양국 관계 강화를 적극 모색했다.

6월 4일 베트남 방문한 美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사진=뉴시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빠지지만, 안보의 축을 동아시아로 옮기면서 중국과의 ‘태평양 패권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일본·호주·필리핀·태국 등 ‘핵심 동맹’, 인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핵심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통해 최대 경쟁자인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5. 요동치는 중동과 수수방관하는 미국

시리아 내전 사태, 이란의 핵개발 의혹 등 중동지역 정세가 악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특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재선여부가 경각에 달하자 대외 외교 문제는 아예 손 놓고 있다. 지난 몇 달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자세를 살펴보면 시리아 내전, 리비아 문제에 등을 돌리고 핵개발이 의심되는 이란에 대한 공세에 주저하는 등 중동 평화에 개입을 꺼려왔다. 시리아에서 2년 가까이 바샤르 알 아사드가 이끄는 정부군과 반군과의 유혈 충돌이 계속되고 있지만 미국은 반군 지지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리아에 적극 개입해도 미국의 이익에 유리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와 함께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한데 이어 추가 제재를 검토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설 움직임을 보였지만 핵개발 저지를 위해 이란을 공격하자는 이스라엘과는 여전히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재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유대인 유권자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실제 공습에 나선다면 국제유가 상승을 야기,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외교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면서 “이제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6. 동북아 영토갈등 -> 군비경쟁 치킨게임 -> 지구촌 화약고

동북아시아 국가간 갈등과 분쟁이 표면화되면서 동북아가 중동에 못지않은 지구촌 화약고로 급부상하고 있다. 남북간 일촉즉발의 무력충돌 국면으로까지 비화될 뻔한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가 여실히 보여주듯 남북긴장은 지역안보 위협요인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그동안 잠재돼 있던 동북아 국가간 영토·역사문제를 둘러싼 마찰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지역정세는 한층 더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간 서해북방한계선(NLL), 한-일간 독도, 중-일간 다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러-일간 쿠릴열도,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 – 필리핀 간 남중국해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가 영토·역사 문제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미일과 북중러를 각각 축으로 하는 전통적인 지역정세 구도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해법을 모색해야할 각국 정지지도자들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권교체가 예고돼 있는 바람에 국제적인 대화와 협력보다는 국내적인 정치 논리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동북아 갈등과 분쟁이라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특히 두 차례 세계경제위기 속에서도 매년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선 중국과 만성화된 경기침체와 지진·해일·원전사고 등 잇단 대재앙 끝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일본의 부침에 따른 지역패권의 변화양상도 뚜렷하다. 문제는 동북아 갈등 심화가 고스란히 군비경쟁으로 옮아가면서 화약고라는 표현이 정치적인 의미를 넘어 군사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공식 국방비는 2011년 899억 달러로 2000년 225억달러에 비해 4배 증가했으며, 일본의 경우 2011년 582억달러로 2000년 400억달러에서 50% 가까이 늘었다. 한국은 2000년 171억달러에서 2011년 286억달러로 증가해 일본보다 증가폭이 컸다. 한국은 특히 최근 2년간 국방비증가폭에서 중국에 이어 아시아 지역에서 2위를 기록했다.

7. 한국이 아시아, 동북아의 조정자로 나서야

한국이 15년 만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지역의 정세불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문제 해결이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제평화와 안보유지를 제1 목적으로 하는 유엔에서 안보리는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구다.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임기제한이 없는 상임이사국 5곳과 대륙별로 할당된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 10곳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리비아 사태 때 연합군의 공습을 허용한 것이나 북한이나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 제재안이 가능한 건 안보리가 가진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분쟁지역에 군대를 파견하거나 침략자에 대해 경제제재를 하고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등 평화유지를 위해 각종 사안을 결정권한을 갖는다.

한국은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면서 안보리 이사국간 비공개회의에 참여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지난 4월 북한의 로켓발사 후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 시 한국은 이사국이 아니었던 탓에 이사국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회의가 끝난 후에 전해 들어야만 했다. 최근 국제무대의 주요 현안인 동북아 지역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도 보다 발언권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중국이 거대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팽창전략을 고수하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은 아시아 회귀정책을 공언했다. 올해 다시 대통령에 오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강한 러시아를,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총리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일본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극우성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중일이 겪고 있는 영토·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은 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가능성이 높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한국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유다.

한국은 지구촌 소통을 향한 ‘국제 지성’을 도모하고 묶어낼 수 있을 것인가. 단일 국가 차원을 뛰어넘은 국제 연대와 아시아 유대를 엮어낼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아시아 저널리스트의 조직 아시아기자협회 오늘의 화두이다.

*이 자료는 한국언론재단이 후원한 ‘2012 AJA 국제언론 심포지엄-서울 핵안보정상회의 효과 지속을 위한 아시아 언론의 역할’에서 발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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