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보 다이어트’

잿빛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쳐 입은 법정 스님(1932~2010)이 꼿꼿하게 앉아 있다. 맑고 온화한 얼굴, 청정하고 그윽한 눈길에는 스님이 생전 가르친 무소유 정신이 오롯이 묻어난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 초상화는 수묵 인물화의 대가 김호석 화백 작품

비움의 편집미학…삶의 탄력 회복

자면서도 휴대전화를 끼고 잔다. 전화기를 집에 두고 출근한 날은 하루 종일 좌불안석이다. 뭔가 긴급한 메시지를 놓칠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머리 속은 항상 인터넷에 반응하고 있다. 이메일은 금방 열어봐야 하고 소셜미디어 댓글도 즉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즉각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다. 사람 만나는 대면관계는 건성이고 하루 종일 휴대전화 화면과 맞대고 산다. 목소리와 목소리가 교차하는 전화 통화도 부담이 되니 문자로만 대화 나눈다.

자고 나면 첨단 IT 신제품이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지식·정보·뉴스가 쓰나미처럼 쇄도한다. 강력해진 검색엔진은 천문학적 연쇄 정보를 물고와 모니터에 펼쳐 보인다. 즉각적 인터넷 서핑은 인간을 현명하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을 무지와 왜곡에서 해방시킨 첨단 정보사회는 지혜와 지식으로 훨씬 행복해졌을까.

피상적 헛똑똑이만 가득

예측 가능한 것이 늘었지만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은 더 늘었다. 아는 것 많아져 똑똑해졌다는 현대인은 즉흥적이고 피상적일 뿐이다. 산란한 마음에 붕 뜬 헛똑똑이들만 가득하다. 박학다식을 가장한 속물적 지식인만 늘었다. 소득이 늘어 집안에 첨단 가전제품들이 늘고 컴퓨터 파일에 저장해둔 자료가 넘쳐도 행복하지가 않다. 자격증 개수가 늘고 박사학위를 받아놔도 만족스럽지 않고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버전업된 스마트폰에 업그레이드된 앱을 깔아놔도 든든하기 보단 더욱 족쇄 채워진 느낌은 왜일까.

2010년 입적하신 법정(法頂) 스님은 ‘무소유’ 의 현인이다. 1976년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불교적 가르침을 담은 2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학승이자 선승이었다. 스님 가르침의 밑바탕엔 “깨달음을 구하는 이는 일관되게 중생의 일상성을 수행의 생생한 텃밭으로 삼으라”는 말씀이 배어 있다. 말씀의 뼈대는 ‘소유한 것의 소유’가 되어버리는 삶의 허상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스님의 책에서 비움의 미학이 배어나오는 몇 부분을 발췌해본다.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수행하던 법정스님이 직접 만든 ‘빠삐용의자’.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는 거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만족할 줄 모르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소유>(범우사)에서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

간소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손대지 않고 쓰지 않는 물건이 쌓여 있다면 그것은 내게 소용없는 것들이니 아낌없이 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갖지 않고 마음이 물건에 얽매이지 않아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에서

집착 없는 마음이 자유를 잉태한다

연말이면 행사처럼 아궁이 앞에 앉아 편지도 태우고 사진도 불태워 없애고 불필요한 기록들도 불 속에 던져버린다. 태워버리고 나면 마치 삭발하고 목욕하고 난 뒤처럼 개운하고 홀가분해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의욕이 솟는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현재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다.” 찾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이 마음을 가지고 어디에 매어두어야 한단 말인가. 찾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텅텅 비워버려야 한다. 텅 빈 데서 비로소 메아리가 울린다. 어디에도 집착이 없는 빈 마음이 훨훨 날 수 있는 자유의 혼을 잉태한다. -<물소리 바람소리>(샘터)에서

접속하지 말고 접촉하라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포만상태는 곧 죽음입니다. 그리움이 고인 다음에 친구를 만나야 우정이 더욱 의미있어집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아는 것은 우리 영혼에 공해와 같은 것임을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일기일회>(문학의숲)에서

문명의 이기를 잠시 끄고 나는 누구인지 물어보라

너무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지 말고 때로는 밤에 텔레비전도 다 끄고 전깃불도 끄고 촛불이라도 한번 켜보라. 때로는 전화도 내려놓고 신문도 보지 말고 단 10분이든 30분이든 허리를 바짝 펴고 벽을 보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물어보라. 이렇게 스스로 묻는 속에서 근원적인 삶의 뿌리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명의 이기로부터 벗어난 하루 한 순간만이라도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문학의숲) 중에서

경박한 스마트 시대, 우리는 어떻게 진지해질 수 있는가. 감각으로만 꾸역꾸역 채워 넣는 것을 멈추고 텅 비워야 한다. 바로 비움의 편집미학이 필요하다. 정보 과잉의 시대 ‘정보 다이어트’가 절실하다. 무작정 쌓인 것은 썩고 만다. 자고로 비워야 산다. 마음 비우는 명상의 강을 건널 때 우리는 잃어버린 삶의 탄력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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