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창조경제의 신성장동력인가
드라마에서 강남스타일까지…한류 콘텐츠 진화 과정
“싸이가 성공한 건 그가 꾸미지 않는 진정성이 있었고, 잘생기거나 멋져 보이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했고, 그러한 싸이의 모습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 조르디 산체스 (스페인 남 31세, 한국 내 스페인어학원 강사, 4년째 한국 거주)
“너무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 한류 1.0 탄생
한류(韓流, Hallyu, Korean Wave)의 출발은 1997년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 CCTV를 통해 방영돼 4.2%의 폭발적인 시청률을 차지하면서부터다. 이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의가형제> <목욕탕집 남자들>들이 잇달아 방영되면서 높은 시청률을 이어갔다. 여기에 한국 팝이 가세했다.
중국 내 한류 열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2000년 2월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열린 아이돌 그룹 H.O.T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두고 ‘한류’라는 용어가 국내외 신문기사 제목으로 등장했다. <베이징청년보>는 중국 청년들이 한국의 유행가나 텔레비전 연속극, 영화, 옷차림에 매혹되고 있는 현상을 ‘한류’라고 표현했다. 처음 한류는 한국 기업이나 한국산 제품을 지칭했으나 가수 클론, H.O.T가 중화권에서 인기를 끌자 ‘유행하는 한국의 대중문화 흐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 발전했다.
한류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중국·대만·베트남 등지에서 본격화됐다. 가족·휴머니티· 순애보 같은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아시아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역동적인 댄스 음악이 청소년을 열광시켰다. 2004년 일본에서 방영된 <겨울연가>는 일본 중년여성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고 주인공 배용준은 ‘욘사마’로 불리며 일약 한류스타로 발돋움하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그 해 배용준의 경제적 효과가 3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일본 대중문화를 수입하기만 하던 한국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기점으로 일본에 대한 한류 콘텐츠 수출을 본격화했다. 사극드라마 <대장금>은 2004년 대만과 2005년 홍콩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홍콩 TVB에서 방영된 최종회 시청률은 47%로 홍콩 방송사상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대장금>의 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동남아·중동·아프리카·동유럽으로 확산되었다. 한류가 중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세계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하기까지를 한류 1.0으로 분류한다.
2.0으로 진화한 한류, 3.0으로 비상하라
한류 2.0의 핵심은 K-Pop이다. 보아, 비, 원더걸스가 일본·동남아를 거쳐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까지 진출했다. 아이돌가수, 아이돌그룹이 뒤를 이었다. 2011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콘서트는 유럽진출의 교두보가 됐다. 유럽전역에서 몰려든 K-Pop팬들로 공연은 대성황을 이뤘다. 르 피가로, 르 몽드, 뉴욕타임즈가 ‘한류 K-Pop, 유럽 강타’ 기사를 쏟아냈다.
한류 전문가들은 K-Pop 안에 내재된 새로움, 개방성, 절제성, 친근성에 주목했다. 영어권 대중음악이나 J-Pop과 달리 다이나믹한 군무를 추는 아이돌의 모습은 유럽인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K-Pop에는 폭력과 욕설이 들어있지 않고 안무와 가사는 경쾌하고 따라 부르기 쉬웠다. 아이돌 한류 돌풍을 일으킨 주요 엔터테이너를 살펴보면 동방신기, 샤이니, 슈퍼주니어, 카라, 소녀시대, 빅뱅, 세븐, 원더걸스 등이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팬들의 사랑받았다.
전문가들은 K-Pop의 성공요인을 제작과정의 시스템화를 통한 세계화 전략(생산), SNS의 적극적 활용(전달), 전 세계 능동적 향유자와의 소통력(소비자), 가창력·안무·외모를 갖춘 아이돌의 경쟁력(콘텐츠) 이 네 가지의 탁월한 조합으로 보고 있다.
K-Pop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사회적·기술적 조건은 바로 유튜브와 SNS의 일반화였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K-Pop 소식은 빠르게 각 나라 청소년들에게 공유됐다. 유튜브는 K-Pop 아이돌 공연을 직접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최고의 미디어가 되었다.
K-Pop을 선두로 2011년 요르단 국영TV가 황금시간대에 <대장금>을 집중 방영했다. 이란에서 <대장금>의 시청률(2007년)은 86%, <주몽> 시청률은 85%(2009년)에 달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011년까지 <주몽>을 무려 다섯 차례나 재방영했다. 대개 사극은 역사와 전통문화의 차이로 인해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장금> <주몽>은 전통음식과 전통의상을 앞세우면서도 권선징악적 보편적 스토리텔링을 결합시켜 기존 한국사극의 한계를 돌파하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번져갔다.
문화예술 분야의 대표적 성과는 작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2011년 4월 미국에서 출간돼 <뉴욕타임즈> 양장본 소설 베스트 순위 14위에 오른 쾌거이다.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가 문화예술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음식한류 의료한류, 관광한류라는 용어가 속속 등장한다.
한류 3.0의 키워드는 ‘K-Culture’다. K-Pop를 선두로 한 한국 대중문화가 보폭을 넓히고 한국 문화예술과 전통문화가 문화 콘텐츠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세계인과 공유하는 상태를 말한다. 즉 한국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 탈(脫)한국문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2012년 하반기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류확산의 가장 드라마틱한 분수령이 되었다. 2011년 K-Pop 열풍이 유럽발이었다면 강남스타일 신드롬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무엇보다 대중음악의 중심인 미국을 강타했다. 미국 빌보드차트 7주 연속 2위, 아이튠즈 음원 다운로드 2개월 이상 1위, 유튜브 누적조회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세계 20여개국 음악차트 정상에 올랐다. 한류 3.0이 지향하는 교감지역의 전 세계화, ‘전 세계인과 함께하는 한류’의 목표를 노크한 것이다. 한류는 계속 진화하면서 세계인과 교감·공감하는 K-Culture, 한국적 스타일을 의미하는 K-Style의 광역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류 콘텐츠, 글로벌 플랫폼의 절대강자
세계 10대 경제규모를 이룩하고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한국은 이미 세계 주요국가 반열에 올라 있다. 경제·정치·외교 분야에서 다른 선진국과 관계를 맺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6.25전쟁 이후 단기간에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올라 선 한국의 현대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아쉽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한국과 한국인을 특징짓는 문화적 아이콘이 없다는 점이었다. 바로 이런 시점에 한류가 등장했다.
한국인들은 이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K-Pop과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나타내는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해외여행을 하면 한국산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외국인을 종종 볼 수 있다. 한류와 한국산 제품은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면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한국은 경제원리와 정치원리에만 휘둘리는 나라를 벗어나 문화원리를 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그의 이렇게 설명한다. “산업화의 땀과 민주화의 피를 흘린 한국인에게 땀과 피가 결합된 문화원리는 눈물이고 생명이다. 문화원리는 GDP나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종래의 숫자나 컴퓨터로 계산할 수 없는 문제를 창조산업으로 전환하여 세상을 감동시키는 것이 문화산업이다. 눈물은 타자를 위하여, 나를 위해서 울리는 공감이다. 죽음과 생의 문제이다. 이것이 내재적 가치며 생명의 가치다. 바로 한류가 이러한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염동훈 구글코리아 대표는 한류의 확산채널로서 개방적인 글로벌 플랫폼의 역할을 주목한다. 그는 “전 세계 수십억 사용자들을 하나로 묶는 글로벌 플랫폼은 모든 콘텐츠 유통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 하나만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게 했고, 한류 콘텐츠는 그 기회를 가장 잘 활용한 모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드라마 K-Pop을 즐기는 해외 사용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한국 TV 프로그램 영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다양한 한국문화상품들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한류 해외 팬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나 배우의 패션, 한국어, 한국관광, 한국음식으로 관심의 폭을 넓힌다. 실제 유튜브에는 한류스타의 화장법, 패션 정보, 한국 요리 조리법, 한글강좌 등 수 만개의 콘텐츠가 공유되고 있으며 관련 유튜브 동영상들은 한국문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류 효과 이전에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강한 경제력, 무역대국, 자동차 전자제품으로 한정돼 있었고 외국 언론도 주로 적대적 노사관계, 북한과의 대립관계 등의 이미지로 한국을 그려왔다. 이로 인해 외국인의 눈에 한국인은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공업단지 근로자와 같은 소극적 이미지로만 채워져 있었다.
한국에서 40년 넘게 체류 중인 피터 바돌로뮤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이사는 서울시 명예시민이다. 그는 한류의 효과를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크게 줄었다. 한류는 ‘대단한 국가에서 내뿜는 놀라운 움직임’이라는 국제여론이 느껴진다. 이제 한국인들은 재미있고 유쾌하며 창의적인 사람일 뿐만 아니라 문화, 미디어, 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앞서가는 선도자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작동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콘텐츠 획일성, 상업주의를 극복하라
한국문화의 열풍이 세계 곳곳에서 불면서 그 거센 바람의 역풍도 불고 있다. ‘혐한’ 또는 ‘반한’ 기류다. 한류의 출발점이자 한국 문화 콘텐츠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시아에서 오히려 한류에 반하는, 한류를 싫어하는 움직임이 생겨난 것이다. 반한류의 원인은 ▲ 불균형적-일방적 한류 전파 ▲ 자국의 문화산업 보호 ▲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 상실 등을 꼽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자신들과 비슷해서 좋아했던 한류가 이제는 그 인기가 지나쳐 자국의 문화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동아시아 문화적 주도권 행사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측면이 눈에 띈다. 이런 시각은 중국에서 두드러진다. 한류 드라마의 TV 방영 편수를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지난해 독도가 이슈화하자 일본에서 한류 드라마 방영이 연기되고, NHK <홍백가합전> 출연진에서 한류스타가 제외되었다. 문화 전파는 다문화 속 소통현상을 전제로 한다. 한류를 얘기할 때 항상 문화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반한류·혐한류에서 걱정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한국인의 문화적·경제적 우월주의가 부각되는 측면이다. 몇몇 아이돌의 말실수는 해명과 사과로 수습될 수 있지만 문화적 우월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역풍을 초래한다. 특히 한류를 경제적 이익으로만 환산하려는 접근방식은 한류 발전의 최대 장애물이다.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 콘텐츠가 새로운 성장동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는 공감이고 소통이다. 한류를 공연티켓, 제품판매 수단으로만 여기는 시각은 적절치 않다. 제품과 문화 콘텐츠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이고 상호보완적이어야 오래간다. 경제적 이익만 챙기는 물신주의는 금방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부가가치의 창출이 한류 진흥의 결과가 될 수는 있어도 최우선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류 콘텐츠의 획일성은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현안으로 다가온다. 멕시코 콜맥스대학에 재직 중인 김윤희 교수는 “최근의 한류 대부분이 K-Pop에 치우쳐 있거나 너무 아이돌 그룹에만 치중되고 있다. 마치 인형처럼 똑같이 생긴 가수들이 젊은 취향의 시끄러운 음악만 반복해 연주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K-Pop은 유사한 아이돌 그룹에 댄스곡 위주, 섹시 코드 등 획일화된 콘텐츠 제공으로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드라마는 비슷한 결말, 출생의 비밀, 불륜, 복수 등 식상한 소재가 반복되고 있다. 지나친 상업성과 콘텐츠의 획일성은 한류가 가장 먼저 돌파해야 할 장애물이다.
한국의 목표는 문화콘텐츠대국
한국 드라마와 K-Pop을 통해 가장 주목 받는 점은 한류스타들의 미모다. 고조되는 스타의 인기는 고스란히 한국 화장품 구매로 직결되고 있다. 김현중·장근석·송혜교·소녀시대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한국산 화장품의 2011년 수출액은 8억5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이는 2001년 9600만 달러였던 수출액이 8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화장품은 한류의 최대 수혜품목이 됐다.
2012년 11월 한국은 외국인 관광객 1천만명 시대를 열었다. 제주도는 2013년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목표를 200만명으로 잡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한해 외래 관광객은 500~600만명 규모였으나 2009년 한류열풍이 불면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한류는 문화를 통해 한국산 제품의 부가가치를 확대시키고 연관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한류의 긍정적 파급효과는 관광·식품·의료 등 직접적 연관산업 이외에도 ICT·자동차·의류 등 제조업 전반에 미치고 있다. 2012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류의 매출 증대효과가 서비스업종에서는 문화(86.7%) 관광(85.7%) 유통(75.0%), 제조업에서는 식품(45.2%) 전자(43.3%) 화장품(35.5%) 자동차(28.1%) 의류(23.3%)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류 콘텐츠 전체 수출 규모는 2011년 기준 43억201만 달러에 이른다.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 점유율은 2.4%로 세계 10위 수준으로 급등했다.
한류는 무형자산이다. 기업이 가진 다양한 자산 중 화폐화시키기는 어렵지만 매출에 기여하는 보이지 않는 원천을 무형자산으로 볼 때, 한류는 우리 경제의 무형자산으로서 ‘명성’‘브랜드’와 같은 기능을 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한류 덕분에 한국문화의 글로벌 경쟁력, 소프트파워 경쟁력도 강화됐다. 전 세계 한류 전파국은 235개국으로 한국과의 수교국(189개국)보다 많다.
한류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산업은 저성장 장기침체의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의 승부수이며 돌파구다. 21세기가 창조의 시대라고 할 때 창조적 역량은 교육·기술·과학·문화 영역에서 크게 발현된다. 한류는 문화를 응용한 영역이다. 과거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제조업과 IT산업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첨단 융합기술에 한류 등 문화콘텐츠산업을 접목한 분야가 한국경제 전반을 끌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과 현대, 스토리와 디지털 아트, 예술과 콘텐츠 문화가 융합해 세계의 소비자와 만날 때 한류의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 산업 연관효과가 커지면 한류는 명실상부한 한국경제 성장의 원천이 된다. 한류는 단순히 콘텐츠산업 수출에 기여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창조경제 시대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 이 글에 인용된 통계와 자료는 2013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한 <한류 백서>를 근거로 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