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편집자’ 조용필, 베이비부머를 위무하다

그를 느껴야 세밑 겨울로 진입할 수 있다

데뷔 45주년을 맞는 한국 대중가요계 거목 조용필이 10년 만에 제19집 앨범 ‘헬로’을 발표했다. 세대를 초월한 열광적 호응이 온라인 오프라인 음반시장을 달구고 있다. ‘오빠’가 귀환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서울대 사회학)가 1980년 여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창밖의 여자’에 전율한 이래 조용필의 열렬한 팬이 됐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라고 한다. 두 남자는 가수와 팬으로, 술잔을 앞에 놓고 사는 얘기, 음악 얘기를 나눈다. 이번 19집 앨범에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곡 ‘어느 날 귀로(歸路)에서’(조용필 작곡 송호근 작사)가 실린다. 평생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직자의 쓸쓸한 심정을 그린 노래다. 송 교수는 이 노래를 가리켜 ‘한국 베이비부머들(1955~1963년생)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명명한다. 출발은 송 교수와 대리 운전기사와의 만남이었다. 나이를 묻고, 어떻게 대리기사 일을 하게 됐느냐는 손님(송 교수)의 질문에 기사는 “퇴직하고 사업이 안돼서 이렇게 됐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날 술을 함께 마셨다.

송 교수는 “50대로서 안고 있는 고민은 비슷했다”고 기억했다. 가왕 조용필은 송 교수가 들려준 대리기사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곡 써놓은 게 있는데 그 얘기를 써주면 좋겠다”고 슬며시 가사 써줄 것을 부탁했다. 노래 ‘어느 날 귀로에서’는 이렇게 탄생했다. 송 교수는 “전후 베이비붐으로 이 땅에 태어난 한국 50대의 생애는 유별나다. ‘가교 세대’인 동시에 ‘끼인 세대’다. 자식, 부모 세대의 모든 부양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면서도 ‘농업 세대’와 ‘IT 세대’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은 세대다. 그런데 현재 도처에서 베이비부머들의 탄식이 들려온다”고 안타까워했다. 각자 처지만 조금 다를 뿐 다들 주택 마련, 자녀 학비와 결혼, 그리고 부모 공양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조용필은 6·25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가수다. 전체 인구의 15%인 712만 명 베이비부머는 조용필을 통해 추억을 되새기고 남은 인생을 다독인다. 노래는 한 시절을 추억케 한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날릴 때 중년 남자는 조용필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에 가슴이 부르르 떨린다. 그 때 그 사람 그 추억이 파문처럼 번져온다. ‘가객(歌客)’ 조용필은 대한민국 4050세대의 영원한 추억의 아이콘이다. 그는 감성 편집자다.

80년대를 ‘청춘의 강’으로 건넜던 사람들은 안다

~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갈 인생길 / 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 했나 / 텅 빈 가슴속에 가득 채울 것을 찾아서 / 우린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네 ~ (어제 오늘 그리고)

80년대를 ‘청춘의 강’으로 건넜던 사람들은 안다. 조용필의 노래는 문학의 한 계열이었다. 일회용으로 소비되는 유행가요가 아니었고 힘겹게 굴리는 生의 수레바퀴 소리였다. 한국의 전후세대는 대부분 ‘조용필 가요문학’의 향유자가 된다. 그의 정련된 노래 가사와 리듬 하나하나에 포섭된다. 유행처럼 휩쓸었던 FM 팝송의 파도에도 ‘조용필 문학’의 정서적 울림은 굳건했다.

당시 기성세대들은 혼이 내뿜어지던 ‘창밖의 여자’에게 위로 받고 술 한 잔을 기울였다. ‘단발머리’ ‘고추잠자리’는 10대 20대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작은 거인’ 조용필의 도전적 음악성은 충격이었다. 기존 한국 가요지형을 뒤흔든 혁명성의 요람이었고 최초로 오빠부대가 태어난다. 바야흐로 제대로 구색을 갖춘 한국의 첫 ‘대중문화’가 태동한 것이다. 조용필 팬클럽은 한국의 스타 팬클럽의 원조다.

~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 램프가 켜져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홀로 /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렸다 (Q)

“꿈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느껴서 열심히 하다보니 노래인생 44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지켜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서울 경동고 졸업 이듬해 1969년 미8군 무대 록그룹 활동으로 음악인생 출발. 이후 한국의 가요역사를 개척하고 관장해왔다.

물망초… 그대여… 촛불… 창밖의 여자… 그 겨울의 찻집… 모나리자… 허공…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난 아니야… 한오백년… 간양록…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여행을 떠나요… 그가 불렀던 200여 곡들은 고달픈 현대사 속 휘청거렸던 우리의 삶을 대변한 서정시다.

‘가객(歌客)’ 조용필은 감성 편집자다

‘영원한 오빠’가 시대의 고비와 힘겨운 심정을 어루만져 주었기에 4050 세대의 가슴 속 낭만은 항상 현역처럼 출렁거린다. 아날로그 세대이면서 디지털 변화의 파도까지 헤쳐 나가야 하는 세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의 격랑을 온 몸으로 치러낸 한국 중년의 마음을 누가 위무할 수 있을까. 조용필 뿐이다.

그는 오직 콘서트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조용필 콘서트는 그 옛날 청춘의 꿈을 부활하게하고 떠나간 사랑을 만나는 랑데부 공간이다. 듣고 싶은 것은 위대한 가객의 목소리만이 아니다. 한 시절을 살아냈지만 아직 못 다한 아쉬움, 추억어린 회한, 붙잡고만 싶은 그리움 조각들을 되살리고 싶은 것이다. 지키고 싶은 오늘의 낭만 내일의 꿈을 조용필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 외로워 마세요 그대 곁에 내가 있어요 / 물밀 듯 다가오는 지난 추억이 지금도 아름다워요 / 이 밤이 새고 나면 가야하지만 그것을 이별이라 하지 말아요 /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우리 마음 함께 있으니 / 그대 그대 정말 외로워 마세요 ~ (외로워 마세요)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함께 가슴을 저미게 해준다. 가객의 노래에는 말이 살아있고 의미가 숨 쉬고 있다. 인간은 말과 글과 노래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조용필은 굽이치는 한국인의 정서를 유장한 가사와 살가운 리듬으로 담아냈다. 그는 노래의 장인(Master)이었다. 인간을 위로할 정서의 선(線)을 제대로 뽑아낼 줄 알았다. 자신이 펼칠 무대의 종합 구성을 모두 꿰고 있다.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총지휘자 총연출자로서 콘서트의 레이아웃까지 해낸다.

4050 세대는 조용필과 함께 간다. 가객의 감성 편집능력이 빛바랜 추억의 노트에 켜켜이 갈무리된 청춘을 부활시켜준다. 그리움을 살려내 준다. 해마다 ‘그 겨울의 찻집’에 들러 조용필 한 모금을 마셔야 세밑 겨울로 진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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