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요
타이틀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감독 : 데이빗 핀처
주연?: 브래드 피트,?케이트 블란쳇
제작년도 : 2009년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어야 하는 운명
어제는 가장 늙어버린 자신의 정지영상이고 오늘은 남은 나날 중 가장 젊은 모습으로 다가온 첫 날이다. 내일은 곧 들이닥칠 숙명의 시간이다. 생명은 시간 속에 태어나 자라고 성숙하게 된다. 동시에 시들어가면서 병들게 된다. 생명과 시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시간은 시간의 질서가 본질이다. 시간을 역류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우리말 제목은 잘못됐다. 원제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벤자민의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도도한 시간 속에서 벤자민의 육체가 거꾸로 생장하는 이야기다.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어 가야하는 운명. 한 인간의 기이한 생로병사를 통해 흐르는 시간에 대해 잔잔한 사색에 잠기게 한다.
태어남은 시간의 무대로 올라오는 것이고 죽음은 시간의 무대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시간과의 만남 이별이 우리 삶이다. 멜로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지만 세상의 기본 질서인 시간의 엄존함을 각인시켜주는 성인용 판타지다.
1918년 세계1차대전 종전일 美 남부 한 도시. 한 아이가 태어나고 출산한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아기는 놀랍게도 80세 노인의 피폐한 몰골이다. 충격을 받은 생부는 아이를 양로원 계단에 버린다. 벤자민이란 이름을 얻은 아이(브래드 피트)는 흑인 양모의 보살핌 속에 늙음에서 젊음으로 거슬러가는 생애를 살게 된다. 70대 노인 행색이지만 마음은 10대 어린이. 어느 날 양로원을 찾아온 어린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에게 사랑을 예감한다.
이때부터 벤자민과 데이지는 한평생 동안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결합하는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한다. 17세지만 60대 노인 모습 벤자민은 배를 탄 선원으로 세상을 떠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장과 전쟁에 참전해 생사를 넘나들기도 한다. 그 와중에도 데이지에게 보내는 엽서는 빼먹지 않는다. 잠들기 전 늘 홀로 말한다. “굿나잇, 데이지.” 50대 외모로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어느새 성숙한 처녀로 자란 데이지와 재회한다.
발레리나 데이지는 고향을 떠나 뉴욕 브로드웨이에 데뷔한다. 화려한 무대를 펼쳐 안팎에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예기치 않는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 데이지는 귀향한다. 이제 벤자민이 그녀의 곁을 지켜준다. 여자는 점차 늙어가고 남자는 어려진다. 두 사람의 짧지만 각별해서 놓치기 싫은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시작된다. 함께 40대가 된 것이다. 유일하게 육체적 나이대가 비슷해진 두 사람. 뜨겁게 사랑하고 둘 사이엔 딸이 태어난다.
데이지는 발레교습소를 운영하는 중년 부인이 되어가고 딸은 소녀가 된다. 데이지와 달리 점점 청년으로 변해가는 벤자민. 어느 날 벤자민은 대결단을 내린다.
젊어지는 남자와 늙어가는 여자의 비극적 사랑이 영화의 주제가 아니다. 생로병사란 이렇듯 피할 수 없이 당면한 것이니 미소로 받아들이고 안달복달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스며있다.
영원하지 않은,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를 썼던 미국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원작자이다. 피츠제럴드는 마크 트웨인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처음에 오고 가장 나쁜 것은 맨 마지막에 온다.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무한히 행복하리라”는 말에서 착안, 단편을 발표한다. ‘포레스트 검프’ 각본을 쓴 에릭 로스가 오래 떠돌던 영화 시나리오를 재각색하고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데이빗 핀처 감독이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시간의 서사시로 고품격 연출을 했다.
싱싱함은 만발한 뒤 반드시 시든다. 열정은 활활 타오른 뒤 푸석한 잿더미로 남는다. 우리는 한치 앞을 모른다. 사소한 연결 고리들이 인과관계를 이뤄 사건이 되고 불행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다. 생의 한 가운데서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에 절망해야 할까. 영원한 것은 없기에 마냥 낄낄거리거나 하염없이 슬퍼할 필요가 없다.
육체의 시듦에 대해 안달복달해 보톡스를 주입해야 할까. 무기력해진 정신력에 노심초사해 뇌에 보톡스라도 주사해야할까. 시간을 바라보는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된다. 벤자민의 한 평생을 유장하게 펼쳐 보인 성인 동화는 촉촉한 감동을 준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시간의 무늬를 함께 새기며 동고동락하는 삶.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한다.
시간을 낭비해버린 사람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하게 한다. 다시 일어서도록 북돋워준다. 덧없는 육체의 유한성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젊은 관객에게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주름 가득한 할머니 데이지가 아기로 변해버린 벤자민을 품에 안고 있는 마지막 장면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주위로 生死의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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