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시네마 올레길] “잃은 것, 버린 것, 남은 것”

타이틀 – 세븐 파운즈 (Seven Pounds)
감독 – 가브리엘 무치노
주연 – 윌 스미스 , 로자리오 도슨
개봉 – 2009년

# 속죄

미국 MIT공대를 나와 항공회사에 다니는 벤 토마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안온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즐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함께 귀가하는 길. 주행 중 휴대전화 통화에 신경을 쏟다 엄청난 불행의 사고를 저지르고 맙니다. 중앙차선을 침범한 탓에 건너편 승합차마저 나뒹굴고 맙니다. 아내를 포함 모두 7명이 죽습니다. 벤만 살아남았습니다.

영화 ‘세븐 파운즈’ (Seven Pounds)는 벤이 속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과오로 예기치 않는 죽음의 길로 가게 된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버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막다른 절망감에 허우적거리던 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속죄를 결행합니다.

7명의 선한 자(Good Man)들을 찾아 나섭니다. 척수이식이 간절한 어린이, 간이식이 절실한 하키팀 감독, 시각장애로 앞을 보지 못하는 피아니스트 겸 전화상담원 등을 미리 선정해 놓습니다. 폐마저 누군가에게 장기 기증할 것입니다. 남자의 폭력에 시달리며 생계가 어려운 남미계 여성가족에게 자신의 저택을 기증합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합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에밀리를 만납니다. 에밀리는 막대한 병원비에 파산직전입니다. 국세청 직원으로 위장해 접근한 벤은 외롭고 힘든 에밀리를 간병하다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서 벤은 흔들립니다. 심장이식 외엔 어느 한순간도 맘 편안한 생활이 불가능한 에밀리를 위해 벤은 마침내 결단을 결행합니다. 911에 전화를 걸어 자살자가 발생했다고 신고합니다. “희생자가 누구냐”는 응답에 “접니다”라고 말합니다. 얼음을 가득 채운 욕조로 걸어갑니다.

시간이 지나 어린이 합창단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맹인 에즈라는 각막을 이식받고 이제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멋진 피아노 반주를 마쳤습니다. 훨씬 건강한 표정의 에밀리가 걸어옵니다. 마주선 두 사람은 초면이지만 직감합니다. 벤 토마스의 소중한 선물을 나눠가진 두 사람.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을까요. 에밀리는 벤의 심장을 가슴에 안고 에즈라의 두 눈에 깃든 벤의 눈을 봅니다. 벤의 눈을 가진 에즈라는 에밀리의 가슴속에 깃든 벤의 심장을 마주봅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 ?옛날의 그 집
????????????????????????????????? ?박 경 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2008 >

# 남기는 것

어느 집에 사나요. 어느 집에 살다가 어느 집에서 생을 가다듬고 여미실 건가요. 때가 되면 돌아가고픈 집이 있지요. 하지만 그 집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라진 그 집을 찾아내는 과정이 생을 가다듬는 여정입니다.

작가 박경리 선생님은 모진 세월을 보내고 나니 나이가 들었고, 늙고 보니 참 편안하다고 하십니다. 이제는 그 집에 조용히 안거하니,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뭇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듯이 역사를 바라보니 사마천 같은 심경이 몰려옵니다. 앉은뱅이 책상 하나에 원고지 펜 하나가 말년의 선생을 지탱해주셨습니다. 뒷산 소쩍새 우리 소리가 메아리쳐 미닫이문 문풍지가 살짝 흔들립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두 눈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두 눈을 받은 두 사람을 통해 추기경은 아직 우리들과 함께 지금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사랑할 시간이 남았을 때, 서로 사랑하라고 다독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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