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길의 편집력 시대 ⑦] 위기 때 빛나는 미디어 대응 7원칙
화 자초하는 ‘노코멘트’…대응 늦을수록 손해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윤창중 대변인의 ‘불통 브리핑’이 화제가 됐다. 그는 2013년 2월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첫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기 위해 춘추관 마이크 앞에 섰는데 3분 동안 딱 다섯 문장을 읽고 질의응답은 아예 받지 않았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원성과 푸념이 쏟아졌다. 정권의 첫 행보가 영 불안했고 대국민 홍보가 영 시원찮았다. 급기야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성추행 파문으로 직권면직 당한다.
위기는 예고가 없다. 소비자와 우호적 접촉지점을 끊임없이 넓혀야 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조직, 시민단체도 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어떤 조직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부활하고 어떤 조직은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바로 미디어에 대응하는 편집력에 의해 갈린다.
1897년 ‘조선을 흥하게 하자’는 기치로 설립된 한국 최초의 은행. 109년 전통의 조흥은행이 2006년 후발은행인 신한은행에 통합되어 간판을 내리게 된다. 덩치가 크더라도 미래발전 전략이 시원찮고 금융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더니 후발주자인 막내에게 먹히고 만다. 이제 민족은행이라 내세우던 자부심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과자의 대명사 ‘해태제과’를 아시나요
해태제과를 기억하는가. 한때 대한민국 과자의 대명사였다. 한국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만든 제과업계의 역사였다. 하지만 해태제과는 자신보다 한참 덩치규모가 작았던 크라운제과에 2005년 편입되고 만다. 해방 직후 해태카라멜로 시작한 해태제과는 어느 순간 후발주자 경쟁업체인 롯데제과에 추월당했다. 무리한 사업영역 확장 시도와 그에 따른 경영실패로 해태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지금은 ‘해태’ 브랜드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오비맥주는 줄곧 1등 맥주였다. 그런데 1991년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이 식수원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룹차원에서 수습방안을 내놓았지만 불끄기에 급급한 소극적 대책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 국민적 지탄 대상이 된 오비맥주는 ‘천연 암반수 제조공법’을 외치는 하이트맥주에게 1등 자리를 내주고 만다.
삼양라면은 한국 라면의 원조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라면시장 60% 점유율을 차지하는 부동의 1등이자 전 국민의 간식으로 군림했다. 1989년 삼양라면의 공업용 기름파동이 발생한다. 라면을 공업용 소기름으로 튀긴다는 익명의 투서가 발단이었다. 우지파동을 계기로 삼양은 잠시 휘청거림에 머물지 않고 추락하고 만다. 나중에 법정에서 삼양의 무죄가 밝혀졌지만 소비자의 마음은 이미 떠나고 말았다. 만년 2등인 농심이 1등으로 등극하고 대표제품 신라면의 독주는 지금도 계속된다.
2004년 10월 25일 KBS뉴스는 풀무원 녹즙에 농약을 친 유기농 원료가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자연건강 생활기업인 풀무원에겐 소비자의 신뢰를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고발뉴스였다. 풀무원은 신속하게 10월28일자 모든 일간지에 “풀무원은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습니다”라는 제목의 큰 광고를 내보냈다. KBS 보도를 접하지 못한 국민들에게 오해 소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극적이고 적절한 대응이었다.
검증과 재반박이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11월 5일 KBS는 녹즙관련 보도가 사실과 다름을 방송했고 풀무원은 세계 수준의 유기농 관리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지면광고를 다시 내보냈다. 적극적 위기대응 시스템 가동으로 풀무원 브랜드는 더욱 강화된 자연친화적 이미지를 확보했다.
이처럼 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조직을 위협한다. 위기관리능력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미디어와 저널리스트를 상대로 한 민첩한 브리핑과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은 위기를 기회로, 만만찮은 손실을 브랜드 확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
◆ 미디어를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껴안아라
매스컴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생각만큼 쉽지 않다. ‘SK그룹 미디어 가이드’ 7가지 대응 원칙을 뉴스 편집자 입장에서 보완·분석해본다.
1. 즉각 대응하라 (24시간 이내)
발생 사건의 전모 공개를 늦추면 늦출수록 손해다. 나쁜 루머의 온상이 된다. 반면 즉각적인 대응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2009년 삼성 냉장고 가정집 폭발사고의 경우 삼성전자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사고 원인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지펠 냉장고 21만 대 자발적 리콜이라는 초유의 대책을 발표한다. 이 사태에도 삼성전자는 국내 냉장고 매출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경쟁사인 LG전자가 반사이익을 얻은 것도 없었다.
2. 미디어센터를 활용하라
위기관리팀이 상시적으로 가동돼야 한다. 즉 홍보팀, 기획팀, PR전담반, 기획조정실, 대외협력실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미디어 전담 전문가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 때 미디어대책을 진두지휘하는 전략적 리더십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대변인은 그 조직의 상징적 얼굴이다. 미디어 전략가가 위기관리 프로그램의 연출자라면 CEO나 대변인은 위기탈출 프로그램의 주연배우가 되는 것이다.
3.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라
기자들은 항상 무언가를 찾고 뭔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한국의 하루를 살피고 취재거리를 물색하고 있다. 기자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취재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해보라.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지식 리포트를 제공하면서 도움을 주면 기자들도 역으로 우량 정보를 줄 수 있다. 자기 조직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단점이 알려지거든 정황을 충분히 알려 이해시켜라.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하면 툭 터놓을 수 있는 이심전심이 가능하다. 기자들의 궁금증을 미리 배려하는 것만으로도 미디어 관리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4. 일체의 비난행위를 하지 마라
조직에 위기가 닥쳤을 때 라이벌 기업을 비난하거나 언론보도를 탓하며 비아냥거리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소비자, 일반 국민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양비론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시니컬한 브리핑은 조직의 신경질적 반응으로 틀 지워져 국민들에게 신뢰성 없는 조직으로 낙인 찍힌다. 소모적인 공방은 금물이다. 설사 라이벌 조직이 자신의 조직에게 낙인찍기 시비를 걸어와도 논쟁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판을 뒤집고 새 판을 까는 것이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시끄러운 개는 그냥 짖게 내버려두면 된다.
5. 모든 취재진을 공평하게 대하라
특정 언론사만 ‘편애’하는 것은 홍보업무를 가장 서툴게 하는 것이다. 당장은 섭외한 언론사만 특종을 한 듯이 크게 보도해 주겠지만 ‘물먹은’ 다른 언론사는 이를 갈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네거티브 꼬투리만 잡히면 일이 크게 벌어지고 만다. 기자들을 자극해 그런 상황을 미리 앞당길 필요가 없다.
6. 노코멘트, 오프 더 레코드라고 말하지 마라
침묵을 지키는 취재원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자초하는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냉소는 곧 자신에 대한 미디어의 냉소로 이어진다. 열린 것이 닫힌 것보다 힘이 세고 유리하다. 기자들은 소통의 흐름이 있는 곳을 주목한다. 그들에게 ‘노코멘트’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이 작심하고 달려들 때는 이미 늦었다.
7.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라
지성이면 감천이다. 위기를 잘 브리핑하고 고난을 타개하고자 백방으로 열심히 뛰는 담당자들의 모습을 기자들이 이유 없이 왜곡할 리 없다. 오히려 그들의 땀과 눈물을 감동적으로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