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오비추어리] 독립운동가 최능진 장손, 막내삼촌 영정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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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자립씨

“한번은 아버지한테 내 대학등록금을 단기로 빌려갔다가 투자 실패로 날리는 등 곡절 많은 삶을 사셨다. 그래서 등록금 못내 쩔쩔 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이 사실을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언급한 적도 없다.” 5일 별세한 최자립(崔自立·71)씨의 조카 최우석 기자는 삼촌에 대한 회억을 이렇게 썼다. 자유당 이승만 독재에 맞선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인 최능진(1899~1951) 선생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이날 이승과 永別했다. 고인의 맏형이 최필립(1928~2013)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다. <아시아엔>은 최우석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본인의 동의를 받아 소개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최우석 <조선일보> 미래기획부 차장] ‘최崔 자自 자, 립立 자’ 막내 삼촌이 오늘 새벽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나를 끔찍이 이뻐해 주셨다. 장손인 내 기저귀 갈아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단다.

해방둥이셨던 삼촌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를 ‘형 아닌 아버지’처럼 따랐다. 삼촌은 아버지한테 혼날 일을 저지르면 우리 집에 와서 “선처해주시길 바란다”며 고개 떨구고 몇시간이고 앉아계셨다.

아버지도 17살 어린 막내 동생을 불쌍하다며 친자식처럼 여겼다. 삼촌은 우리 어머니한테도 형수님이 아니라 어머니처럼 대했다. 미국에서 대학 나온 삼촌은 LA에서 청소 용역회사를 차려 돈을 잘 벌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오는 무일푼 친구들에게 청소 용역을 주는 등 친구들한테도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러던 삼촌은 70년대 초반 귀국해 전자시계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전자시계를 제일 먼저 개발해 수출할 정도로 한때 잘 나갔다. 청년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 나는 그 덕분에 중학교 다닐 때 전자시계를 이것저것 바꿔가며 차고 다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호사다마랄까. 잘 나가던 회사는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고 SK에 인수됐다. 삼촌은 그날로 미국으로 가서 재기를 노렸으나 무너진 신화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번은 아버지한테 내 대학등록금을 단기로 빌려갔다가 투자 실패로 날리는 등 곡절 많은 삶을 사셨다. 그래서 등록금 못내 쩔쩔 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이 사실을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언급한 적도 없다.

삼촌은 대박 나면 모든 걸 내게 물려주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물론 실현가능하지 않은 줄 알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심이라고 믿었다.

연금으로 말년을 보내시다 이제 하늘나라 가신 삼촌. 아버지 돌아가신 지 꼭 3년 하고 2주 모자란 날에 아버지 보러 가셨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시다 가신 나의 삼촌. 부디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랑 즐겁게 지내세요. 오늘은 참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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