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오비추어리] 막둥이, 막둥이 우리 막둥이 구봉서 선생님 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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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재화 <아시아엔> ‘문화예술’ 전문기자.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 1번지’ 작가] 막둥이 선생님! 8월27일이면 천국에서 무슨 웃음잔치라도 열리는 건가요?

14년 전 같은 날, 한국 코미디계의 걸물 이주일 선생이 떠나더니, 선생님도 어쩜 날짜를 이리 맞추시는지요? 아무튼 그곳에 잘 가셔서 그리도 가까우셨던 절친 후라이보이 곽규석 선생은 물론이고 서영춘, 배삼룡 선생들과 만나 즐겁게 회포 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한국에선 어쩐 일인지 대중예술인 이름 뒤에 그 어떤 존칭을 붙이지 않아도 무방한 관습이 있습니다만, 그 중 선생님 같은 희극인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그래서 “구봉서 온다” 심지어 “막둥이 온다”라는 말을 어린 아이들한테까지 듣기가 저어해 학부모로 학교 방문이 힘드셨다죠? 정작 선생님은 가족 걱정을 하셨을 것입니다. 친구들로부터 아버지가 한갓 ‘막둥이’로 불리는 것에 당신 자식들이 혹여 속상할까 미리 짚으신 거겠죠. 그러나 선생님은 이를 언짢아 하시긴커녕 “팬들이 주는 인기이고, 흠모를 받는 것”이라 여기며 허허 웃고 마셨으니 호인 중 호인이십니다.

그런 당신이, 영원히 함박웃음 피우는 것을 소명으로 알고 사시겠다고 하신 분이 홀연히 다시 못 올 곳으로 긴 여행을 가셨습니다. 인간세계가 진지하기만 해선 차라리 숨 막히거나 공허하니, 대나무마디처럼 쉬어가는 웃음매듭이 군데군데 박혀야만 세상은 배려, 용서, 인정이 넘치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역할, 마다하지 않으셨던 선생님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안 계시게 됐다니, 그 부음에 망연자실했으며, 허전함 계속될 듯하여 그저 먹먹키만 합니다.

선생님은 1958년 영화 <오부자>에서 막둥이 역할을 맡은 것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막둥이’라 불렸습니다. 특히 전쟁 끝나고도 한참 지나도록 못 살고 마음까지 피폐했던 그 시절에 ‘웃으며 복이와요’에서 서영춘, 배삼룡 선생들과 호흡 맞추며 국민들께 위안을 주시면서 한국 현대코미디의 기틀을 다지셨는데, 당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였습니다. 해외 이민 간 가족이 수십년 만에 와도 ‘막둥이’가 웃기는 코미디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얼굴 내미는 걸 미뤘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희극연기 대가들께서 출연하는 방송대본을 어쩌다 어린 제가 함께 썼으며, 지금도 선생님들의 코미디 인생과 연기평론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우선 제게 큰 영광을 주신 분입니다.

지난 2000년, 제가 교수로 있던 전북 예원대학교 교정에 고(故) 살살이 서영춘 선생 동상 세우며 제막위원회 장으로 모시려는 말씀드렸더니, 동상건립 취지에는 크게 공감하면서도 하필이면 당시 몸이 불편하셨고 다른 스케줄까지 겹쳐 운신을 못하셨습니다. 못내 아쉬워하는 저를 한참 다독여주시던 그때 그 일도 떠오릅니다.

선생님이 출연하신 400여편의 영화가 모두 뛰어났지만, 저는 1969년도의 <수학여행>을 잊지 못합니다. 영화 내용도 슬펐지만, 특히 학교 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수학여행 못 갔던 제 처지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연극과 코미디를 좀 공부해봤더니, 선생님 연기는 미국 브로드웨이의 걸출한 코미디 작가 닐 싸이먼이 추구하는 웃기고 울리는 희비극 콜라보와 그렇게 흡사해 무척이나 감탄했었습니다. 막둥이 선생님이나 다른 개척자들 덕에 희극 불모지 한국에 수준 있는 코미디가 착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연기를 그만 두시고서도 자나 깨나 한국 코미디에 큰 관심 가져주신 날이 무려 70년이나 됩니다. 당신이 궁핍한 사람들 어려움 염두에 두고, 코미디언 후배들에게도 조의금을 일절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으니, 그 마음씨 또한 우리를 숙연케 합니다.

샹포르가 “우리가 웃지 않은 날이 있다면 헛되게 낭비한 것”이라 준엄한 지적을 했는데, 선생님 안 계셔서 그런 헛된 날 많아질까 걱정 큽니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저희 몫이니, 그저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2016년 8월 후배 김재화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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