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말글 톤] 충정로·백범로·송해길은 좋은데 박유천벚꽃길·로이킴숲·승리숲은 어째 좀

미국 케네디공항

호랑이는 죽어서 뼈를, 사람은 죽어서 길이름을 남긴다

[아시아엔=김재화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유머작가] 위 제목을 읽은 독자께서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지 왜 뼈냐고 하실는지 모르겠다.

필자 머릿속엔 전남 구례에 있는 조선 선비 류이주의 생가 ‘운조루’ 대문 위에 걸린 호랑이뼈의 위용이 무척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호랑이는 사후까지 뼈만으로도 충분히 용맹성을 보이고 있었다.

훌륭했던 사람은 오래오래 그 이름이 인구에 회자(膾炙:회와 구운 고기)된다. 특히 그 이름이 ‘길’에 많이 남는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송해로 입간판

서울의 세종로, 충무로, 을지로, 퇴계로, 소월로 등 주요 거리에 위인들 이름이나 호가 어김없이 붙여졌다.

충정로, 지봉로, 도산로, 백범로, 소파로 등도 민영환, 이수광, 안창호, 김구, 방정환 등의 위인 이름을 빌린 것이다. 당사자의 혼이나 후손들에게 크나큰 보람을 안겨주고 있을 거다.

필자가 사는 곳은 ‘허준로’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이 전국 도로명 표기 때 허준로(許浚路)로 새 길이름을 갖게 됐다. 또 필자 아파트 바로 곁에는 ‘허준박물관’도 있어서 이 근처는 조선시대 의성 허준 선생이 아직 살고 있나 싶을 정도다.

‘허준로’에 새겨진 글귀들

우연일 것이고, 낭설일지 모르지만 인근에 한의원이 많은데, 모두 치료효과가 아주 높다고 한다. ‘허준효과’일까?

길뿐 아니라 등대, 건물, 공항이나 배에도 사람이름을 붙인다. 케네디, 드골, 다빈치, 존 웨인, 루이 암스트롱, 칭기즈칸, 존 레논 같은 유명인들은 자기 공항을 갖고 있는 셈이다. 유명 도시에 있는 공항들이다. 우리 군함 중엔 ‘강감찬호’ ‘이순신함’ 등도 있다.

그런가 하면 법안(法案)도 사람 이름으로 명명한다. 법안이 나오도록 힘쓴 사람들을 기념해주는 뜻일 텐데, 특히 ‘윤창호법’, ‘김영란법’이 유명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법률은 음주운전 예방이나 공직자 부정을 막고 기강을 높이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추가 범죄를 알아냈어도 더 이상 처벌 못하는 연쇄살인범을 응징하는 ‘이춘재법’이 새로 생길지도 모르겠다.

올해 봄부터 시행되고 있는 ‘조두순법’은 출소를 앞둔 조두순뿐만 아니라 미성년대상 성범죄자들 관리에 효과적 제어수단이 될 것 같다. 전자발찌 부착기간을 대폭 연장하는 것이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80년 전인 1939년 춘천 가는 길에 ‘신남역’이 생겼다. 그리고 김유정역이···. 그 뒤 이 작은 역은 예쁘게 단장을 하고 ‘유정역’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역이름으로는 최초로 인명(人名), <동백꽃> 작가 김유정 이름을 붙인 것이다. 지금은 폐역 상태이지만 관광명소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잘 세우지 않는 것처럼 길이름이나 다른 것에도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울 종로에는 ‘송해거리’가 있다. 수원에는 축구 선수 박지성의 이름을 딴 박지성로(최근 동탄지성로로 개칭), 마라토너 이봉주을 기념해주는 천안 성거읍의 이봉주로도 있다.

‘박유천 벚꽃길’ ‘로이킴 숲’ ‘승리 숲’

박유천 벚꽃길

그런데 인기 연예인의 이름을 빌린 ‘박유천 벚꽃길’, ‘로이킴 숲’, ‘승리 숲’ 등 지자체들의 이런 헛된 욕심을 어떻게 봐야 할까?

광고도 모델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바로 내리고 당사자에게 위약금을 물게 한다. 이들 이름은 바꿔야할 것 같다.

서울과 남양주 경계의 불암산은 배우 최불암 선생의 것이 아니라 부처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있다 해서 불암(佛巖)이 붙은 거다.

독자 여러분 주위 길에 이름을 미리 붙여놓으시라. 나중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도로명 주소에 의하면 대로, 로, 길이 있다. 모두 같은 길인가? 아니다! 도로명은 폭에 따라 ‘대로’, ‘로’, ‘길’로 구분한다. 대로가 가장 넓고 다음이 로, 길은 다소 좁다.

새 주소에 쓰는 도로명이 정착하려면 30년이 걸릴 거라 한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도로명은 현재 12년 정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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