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지수 연일 고공행진···“더위야, 이 시(詩) 듣고 물렀거라!”

피서엔 등목이 최고

[아시아엔=김재화 유머코디네이터, 언론학 박사] 예전에 벼슬아치가 행차할 때 길잡이 하인인 갈도(喝道)가 ‘물렀거라’라 외치면 그 어떤 것도 앞에서 얼쩡거리지 못했다.

그러면 더위는 어떻게 쫓아야 할까? 작년 이맘때보단 분명히 기온은 낮은데, 후텁지근한 불쾌지수는 더 높게 몰고 온 이 더위 말이다.

급히 신조어를 만들어봤다. 바캉스 말고 ‘북캉스’, ‘바캉시’는 어떨까? 지역마다 있는 도서관이나 자기 집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 틀어놓고 책을 읽든가(북캉스) 시를 읊는다(바캉시). 이거 말 되는지는 모르겠다.^^

글 읽는 거, 더위 물리치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본다. 옛 조상들이 이미 많이 쓴 방법이다.

다산 정약용 <사진=강진군청>

다산 정약용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 하여 8가지 피서법을 기록으로 남겼다.

1.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2.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 타기
3.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4.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5.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6.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7. 강변에서 투호놀이
8. 달밤에 발씻기

여기서 6번 시 짓기를 주목해보자. 시 쓰기가 어디 쉬운가? 그렇다. 어떻게 바로 시인이 되겠는가? 그럴 땐 더위 달아날만한 남의 시를 읽는 것도 무방하겠다.

연암 박지원의 ‘끔찍한 추위’란 뜻의 극한(極寒) 시를 소개한다.

北岳高戍削(북악고수삭)
南山松黑色(남산송흑색)
隼過林木肅(준과임목숙)
鶴鳴昊天碧(학명호천벽)

북악산은 높다랗게 우뚝 솟아 있고
남산은 소나무가 검은 빛이다
송골매가 지나가니 숲이 숙연해지고
학이 우니 하늘이 파랗다.

서거정의 시 ‘삼복(三伏)’도 좋다.

한 주발 향그런 차 조그마한 얼음 띄워
마셔보니 참으로 무더위를 씻겠네
한가하게 죽침(竹枕) 베고 단잠에 막 드는 차에
손님 와 문 두드리니 백번인들 대답 않는다네

시원하게 자는 한여름 낮잠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복더위에는 민어탕이 일품이라지만, 아주 고급 생선이어서 2순위로 삼계탕을 많이 찾는다.

권오범의 시 ‘삼계탕’을 읽노라면 그 고소한 맛이 폴폴 느껴지는 것 같다.

삼계탕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세라
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
지옥 물에 목욕재계하고 나니
골수 녹아내려 녹작지근한 몸뚱어리
인삼 하나 끌어안고
볼썽사납게 다리 꼬고 누워
누드쇼는 하지만
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
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해탈시켜주길

웃프지 않은가? 웃음도 나오고, 닭에게 미안해 눈물도 나온다.
.
몸 허해지기 쉬운 여름엔 더욱 잘 먹어야 한다. 더위 빼고는 이것저것 골고루 잘 먹어야 할 것이다.

서늘한 계곡물에 발 담그는 탁족(濯足), 시원한 강바람 속의 뱃놀이 선유(船遊), 장쾌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보며 귀와 마음 씻는 관폭(觀瀑) 등도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피서법이다. 하지만, 시 읽기가 이들보단 비용·시간 면에서 가성비가 높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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