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풍속사⑭]”지금은 불통사회, ‘사오정시리즈’ 나오라, 오버!”
[아시아엔=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규정하는데, 언어와 불의 사용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론도 있다. 사람 말고 다른 짐승들도 그들만의 소리로 구애와 위험경보 등을 한다. 침팬지는 사람이 미처 끄지 않은 불을 봐뒀다가 먹잇감을 구워 먹기도 한다. 불의 효용가치를 아는 건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 자리를 내줘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다른 그 어떤 동물들이 지니지 못한 특별한 능력 한 가지를 갖고 있다. 바로 ‘웃음’이다. 그런데 웃을 수 있다 해서 그것만으로 영장의 지위를 갖는 건 아니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는 말도 있고, “죽어서도 웃는 돼지가 더 비싸다”고 하는 걸로 봐서 소나 돼지도 웃는 모양이다. 죽어서까지 남대문시장에서 윈도우쇼핑 대상이 되는 돼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돼지들도 인간을 향해 끊임없이 웃을지 모른다. 다만, 사람은 웃을 수 있되, 그 웃음을 유쾌함의 표현뿐 아니라 풍자에도 쓰고 있다.
풍자가 아닌 것 같은데, 풍자를 하는 묘한 유머도 태어났다. 바로 ‘사오정 시리즈’이다. 사오정시리즈는 1998년, 허영만 원작의 국산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온, 사오정의 귀가 접혀 있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캐릭터를 빗대어 만들어졌다. 우선 특징을 보자.
사오정 시리즈 ① 오토바이
사오정과 손오공이 오토바이를 탔다. 먼저 손오공이 오토바이를 운전하겠다고 하니 사오정이 자기가 한다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래서 손오공은 사오정에게 오토바이 운전을 맡겼다. 그런데 사오정이 너무 빨리 달리는 게 아닌가? 손오공이 한 마디 했다. “멈춰!” 사오정이 오토바이를 멈추더니 “알았어~ 나도 사랑해!”라 했다.
② 면접
똑똑한 손오공과 조금 모자라는 사오정이 면접을 보러 갔다. 손오공이 먼저 면접을 했다.
면접관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쓰인 게 언젠가요?”
손오공 “80년대에 만들어 90년대에 나왔습니다.”
면접관 “축구선수 중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인가요?”
손오공 “어렸을 때는 홍명보였지만 지금은 손흥민입니다.”
면접관 “UFO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손오공 “여러 추측이 있지만 과학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사오정은 손오공을 졸라 질문을 미리 알아내 당당히 들어섰다.
면접관 “당신은 언제 태어났습니까?”
사오정 “80년대에 만들어 90년대에 나왔습니다.”
면접관 “허걱! 아버지는 누구시죠?”
사오정 “옛날엔 홍명보였지만 지금은 손흥민입니다.”
면접관 “이거 바보 아냐?
사오정 “여러 추측이 있지만 과학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③ 시력
수업시간에 사오정이 손을 들더니 말했다.
사오정 “선생님, 칠판 글씨가 안 보이는 데요.”
선생님 “귀 말고 눈도…. 너, 눈이 몇이냐?”
사오정 “제 눈은 둘이죠.”
선생님 “그게 아니고, 눈이 얼마냐고?”
선생님은 사오정의 황당한 대답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사오정 “예~? 제 눈은 안 파는데요.”
새로운 유머시리즈는 유행하던 것이 서산에 지는 해가 다 되어야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당시 문화코드로 자리잡고 있던 ‘최불암시리즈’와 ‘덩달이시리즈’ 위에 올라선 것이 ‘사오정시리즈’였다. 사람들이 사오정시리즈에 열광한 이유가 뭘까?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던,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귀 닫고 모른 척 하기’가 영향을 주었다. 또 TV에서 익숙하게 봐온, 길지 않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광고카피의 코드와 섞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시절인데,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어떤 얘기를 듣기 싫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