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④ 전두환 편

전두환-이주일 공통점 8가지
1980년. 김영삼 집에 기르던 닭 모가지를 비틀었지만, 새벽은 왔고 아침도 밝았다. 긴급조치 시대가 끝나고 ‘서울의 봄’을 지나 5공화국이 탄생했으니까.

전두환과 이주일은 동시에 황제로 등극했다. 한 사람은 헛기침이라도 하면 이 사회가 온통 뒤집어졌으니 가히 정치의 연금술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어눌하고 띨띨하게 말을 할수록 더욱 온 인구에 회자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우상이었다.

웃음의 황제는 대관식만 늦었지 그 준비는 아주 오래 전부터였다. 이주일, 아니 본명 정주일은 거의 심부름꾼 수준으로 악극단을 따라다니다가 1972년 ‘하춘화 쇼’ 보조사회자로 겨우 한 자리를 차지했다. 향단이 역을 맡은 백금녀가 화장실에서 소변량이 많았는지 너무 오래 있었던 덕에 대타를 맡았다. 그의 여장(女裝)은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폭소가 터지는 요절복통 그 자체였다. 마침내 이주일에게 방송 출연기회가 왔다. 방송통폐합으로 TBC를 흡수한 KBS 2TV에 등장했던 것. 당시 코미디 전문 PD 김경태(그도 머리가 벗겨졌었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뭔가 보여 주겠다”는 이주일을 믿고 ‘토요일이다 전원집합’이란 일본 프로그램 카피본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전격 기용했다. 그는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2주일’ 만에 확실하게 떴다.

이 무렵 세간의 화제는 ‘전두환과 이주일의 공통점 시리즈’였다. 나중엔 강아지도 읊조릴 정도로 대중성과 유행성이 강했다. 1. 데뷔 시기가 같다. 2. 머리가 벗겨졌다. 3. 축구를 좋아한다(전두환은 육사에서 골키퍼를 했고, 이주일은 박종환 감독과 함께 축구선수였다). 4.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5. 푸른 집에 산다(청와대와 극장식당 ‘초원의 집’). 6. 미국엘 자주 간다. 7. 웃긴다. 마지막 것이 결정적이었다. 8. “뭔가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보여 주지 못한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데도 전두환과 이주일을 닮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출연정지, 꼭 말로 해야 아나”…5공 코미디 통제
이주일의 코미디 중에 “내가 국회의원이 돼서…” 어쩌구 하는 게 있는데, 그 정도로만 말해도 사람들은 이미 뒤집어졌다. “아니 저런 친구가 국회의원이 된다구?! 우하하하하~!!” 그런 그가 진짜 정치인이 되었을 때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주일은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기고 정치판을 떠나 이내 무대로 돌아왔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전유성이 말했다. “전직 코미디언이 정치를 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정도 지낸 전직 정치인이 코미디언이 되는 세상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전유성은 정치와 무대를 넘나들며 대중을 휘어잡는 이주일에게서 그 가능성을 봤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이주일이 전유성의 바람처럼 ‘코믹 토크쇼’를 진행했으니(요즘엔 강용석이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방방 뜨고 있고!), 정치인이 의사당에서만 웃길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도 웃기라는 국민의 희망에 부응한 것일까?

이주일은 정치판에서 겪은 숱한 왕따에 우여곡절이 심했던 것 같았고(언젠가 필자에게만 살짝 귀띔한 적이 있다), 정계진출 이전인 1980년대에 전두환과의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생긴 적이 있다. 5공 정권은 이주일의 머리카락을 빗댄 코미디와 저질 오리궁둥이 춤이 현직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건전한 국민정서에 역행하며, 어린이들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를 들어 방송출연 정지령을 내렸다. 하긴 TV배우 박용식도 전두환을 닮았다는 단지 그 ‘죄’ 하나로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으니!

정치인이 코미디언 되는 세상
세월은 흘렀다.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났고, 이주일은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 그때 이주일은 전두환 집에 초대돼 함께 간 최병서에게 업혀 나올 정도로 만취한 일이 있다. “섭히 생각 말그래이! 내가 출연정지 시키라 한 적 없어.” 이주일은 속으로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꼭 말로 해야 시키는 건가…?”

‘배추머리’ 김병조도 5공 피해를 입은 비운의 코미디언이라 할 수 있을까? 5공이 계속되는 동안 김병조의 지적 언어유희 개그는 인기가 대단했다. 그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자들에게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소금 뿌려라” 하면, ‘정의사회 구현’에 불타는 서민들은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김병조는 하이브로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누구 눈치도 살필 것 같지 않은 수사법을 구사해 힘없는 이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었다.

그런 김병조가 자기 딴에는 분위기를 탄다고 한 것이 오버가 되고 말았다. 당시 여당 민정당(민주정의당)을 두고는 ‘정을 주는 당’이라 하더니, 유일 야당인 통민당(통일민주당)을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했다가 노도와도 같은 국민들의 힘에 방송을 떠나야만 했다. 용비어천가라도 아무나 해서는 어설프기 그지없는 4류 코미디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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