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① 이승만 편 전방에서 총 맞은 병사 ‘빽’ 하고 죽는다
백성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 역할에선 왕(대통령)과 광대(코미디언)에게 같은 임무가 주어져 있다고 본다. 대통령은 코미디언의 대중성과 호감이 필요하고, 코미디언은 또 다른 의미의 권위와 신뢰감을 갖춰야 하기에 그렇다. 정치 선진국일수록 이런 구도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가.
한국은 통치자 1인이 전횡하는 정치구조여서 정치현실상 유머가 수용될 공간이 아주 좁다. 집권당과 야당이 상대 당을 전투개념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가. 일제지배, 6·25전쟁,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며 우리 서민들이 갖고 있던 해학은 약화되고 말았다. 말꼬투리를 잡아 난리를 치려 잔뜩 기다리는 판에 건전한 재담이 나올 수 없을뿐더러 유쾌한 조크가 환영받지도 못한다.
한국 정치판에서 ‘쇼’는 ‘속임수’로, ‘코미디’는 ‘저질 실수극’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의 의회에서는 ‘쇼’나 ‘코미디’라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 왜 한국인들은 짜증스러운 정치인들의 행태를 ‘즐거워야 할’ 코미디에 비유하는 걸까? 한국 정치판 메커니즘이 코미디언의 세계와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건국시기부터 그랬다. 돌아가 보자.
일왕의 항복으로 맞은 8·15광복. 민족의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사람들의 얼굴엔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데 광복을 맞은 지 열흘이 지나기도 전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했고 나흘 뒤엔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다. 이때 천재시인 박봉우가 외쳤다. “산과 산이 마주하고 서 있는 땅을 밟고, 요런 자세로 꽃이 돼서야 쓰겠는가?” 하지만 시대를 날카롭게 꿰뚫어본 지식인의 은유는 우매한 백성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대신 코미디언 명진과 박응수가 미국사람들과 비슷한 하이칼라 양복을 입고 다소 음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게 속지 마라!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 특히 가난에 찌든 반쪽 나라 국민들의 분노는 반일감정으로 표출됐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을 골탕 먹이는 코미디는 지금껏 단골메뉴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개그맨 필수코스, 이승만 성대모사
이승만 대통령은 민족 최대 비극 6·25 전쟁을 막지 못했다. 그가 외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지금도 코미디언 지망생들의 성대모사 기본 예문이다. 난리 틈바구니에서도 부패는 극에 달했다. ‘빽’과 ‘돈’은 그때부터 서민들의 불만을 자극했다. 전방에서 총에 맞은 병사들이 ‘빽’하는 비명을 지르고 죽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가 나돌았다.
이 무렵 시장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개그맨(약장수)’들은 최고위층을 향해 비수와도 같은 유머를 날렸다. “이승만은 ‘삼신할미’라네!” 외교에는 ‘귀신’, 내무에는 ‘병신’, 인사에는 ‘등신’이라는 풍자가 여기에 숨어있었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거리의 코미디언들이 뿜어낸 독설에 귀 기울였다면, 아마도 하와이 망명이라는 불행은 면하지 않았을까? 아님 말고!
이승만의 자유당은 장기집권을 위해 이른바 ‘사사오입’이라는 전대미문의 억지 산술을 유행시켰다. 재적의원 202명 중 3분의 2는 135명인데, 이것은 사사오입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담꾼들은 무대에서 말했다.
“이봐 친구, 꿔간 돈 갚아야지.”
“여기 있네.”
“아니, 60환뿐이잖은가? 난 100환을 빌려줬는데.”
“이런 사사오입 원리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구먼. 60을 반올림하면 100이 되잖은가?”
이승만 대통령은 소심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자신의 권력을 누가 훔쳐 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밤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런 사람에게서 유머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선거 때마다 “이번 ‘이승만대통령선거’에 누가 출마한대요?”라는 식의 가치의식이 실종된 말들이 유행했다. 1인 독주에 혐오를 느낀 사람들은 입담꾼의 혀를 빌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풍자를 해봤지만, 기득권층은 어용 코미디언을 동원해 “갈아봤자 별 수 없다”라고 받아쳤다. 사람들은 기운을 잃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으며, 영국의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바라는 것”이라고 조롱했다.
화투놀이에 ‘나이롱뽕’이라는 게 있다. 같은 패가 석 장이면 다른 사람이 내질 않아도 던질 수 있는 ‘자연뽕’이 된다. 이승만은 신익희의 급서와 조병옥의 병사 덕에 ‘자연뽕’을 치기도 했다.
우리 현대정치 초기에 유머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내용과 표현방식이 사뭇 음울했다는 얘기다.
*세상을 내게로 당겨주는 유머화술
Tips. 노래는 연습하면서 유머는 안 해도 된다?
누구나 집에 엄청 웃기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기계가 있다. TV다. 개그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는 당신이야말로 최고의 유머리스트다. “개그맨 해도 되겠어”라는 칭찬을 들었다면 이미 해학대가로 인생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볼 때는 알겠는데, 막상 해보려면 잘 안 돼”란 얘기를 많이 하는데, 맘 속으로만 시도해서는 안 된다. 노래는 수도 없이 반복해 따라 부르며 익히면서 개그는 왜 단번에 하려 드는가. 맘에 드는 코너를 녹화해 놓았다가 몇 번씩 반복해 본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방송 개그 코너, 흉내낼 수 있는 개그맨이 분명히 있다. 개그 CD를 차 안에 넣고 다니며 들으면 노래처럼 외워진다. 노래는 가사와 음정을 틀리지 말아야 하지만, 개그는 비슷하기만 해도 대박 나고 자기만의 것으로 응용 가능하다. 방송에서든 실생활에서든 재미있는 말 들었으면 얼른 메모해 놓는다. 미팅에서, 선보는 자리에서, 취직 면접에서, 축사나 자기소개하는 자리에서 ‘개인기’가 필수인 세상이다. 어려운 음치(音癡)도 고치는데, 소치(笑癡)를 왜 못 고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