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풍속사] ⑫ ‘부라암 최’ 기억하는 당신, 유머지수 100점
[아시아엔=김재화 칼럼니스트/말글미디어 대표] 미국의 인권신장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있다면 16대 대통령 ‘아부라함 링컨’일 것이다. 한국의 청장, 노소, 남녀를 화합시켜 준 수훈갑은 단연 ‘부라암 최’(최불암)이라 규정한다. 유머 최불암시리즈는 사람들 간의 격의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세대나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향하여 농담을 날려도 ‘무엄하거나 체신머리 짓거리’가 아닌 것이 되었고, 오히려 ‘절대 친근감의 표시’로 여겨주었기 때문이다. 일명 허무시리즈라 불리던 이 유머가 탄생한 것은 1991년도였다. 당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성인까지 읊어대며 서로 맞장구를 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당시 필자는 생각했다. ‘유머가 사람 사이의 간극을 이렇게 가깝게 해줄 수 있나? 북한에 최불암시리즈를 전파하고 남쪽에는 그들의 인민공훈배우 유머시리즈를 도입해 즐기면 금방 통일이 되겠다.’
최불암시리즈는 수사반장, 전원일기 등에서 우직하게 밀어붙이면서도 결국 소탈하게 화해를 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최불암 씨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순박한 아저씨의 시선으로 약삭빠른 당시의 사회를 조근조근 풍자했던 것이다.
최불암 시리즈 ① 버스안에서
어느 날 최불암이 버스를 탔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지만 키가 작아 도저치 벨을 누를 수 없었다. 벨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던 최불암은 조용히 운전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삐~!”
② 굿모닝
최불암이 손자랑 놀고 있었다. 손자 “굿모닝, 할아버지!” 최불암 “굿모닝이 뭐니?” 손자 “영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에요.” 새로운 영어를 익힌 최불암은 부엌으로 가 부인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굿모닝!” 그러자 그의 부인 “감자국이유!”
③ 미국에 간 최불암
미국에 간 최불암. 영어회화 능력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바디 랭귀지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고급 레스토랑을 들어갔다. 메뉴판의 음식을 아무거나 손가락으로 대충 콕콕 집어서 겨우 식사를 해결한 최불암에게 종업원이 다가와 물었다. “Coffee or tea?”그러자 최불암,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자신 있게 대답했다. “or!”
④ 팝콘가게에서
학교 앞 팝콘가게 아저씨는 양을 듬뿍 주기로 유명했다. 소문을 듣고 간 최불암에게는 조금 밖에 주지 않는 거였다. 최불암은 울상을 지었다. 주인 “너, 불만이냐?” 불암 “아뇨, 전 불암인데요!”
⑤ 이문세와 등산 중에
머리가 길어 ‘말’이라는 불리는 가수 이문세와 최불암이 바위가 많은 불암산에 등산을 갔다. 최불암 “이문세 님, 내가 이 산을 잘 알아요. 저 높은 바위에 올라갈 땐 제 손을 꼭 잡으셔야 합니다.” 이문세가 최불암의 손을 잡긴 했는데, 어른의 깍듯한 존대말이 불편했다. “선생님, 말 놓으세요!” 그러자 이문세를 붙잡고 있던 최불암이 손을 놓았고, 한때 이문세가 불암산에서 추락사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해방 이후 가장 큰 히트를 친 유머라면 단연 최불암시리즈일 것이다. 유머시리즈 3대 히트작을 꼽을 때 나도 최불암시리즈를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었다. 용돈 잘 주는 삼촌 같은 친근감 가는 배우, 최불암의 입을 통하여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최불암시리즈’ 속 최불암은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시리즈가 유행한 것도, 사람들의 심리가 생활과 사고의 반전을 꾀하던 시절과 맞닿아 있다. 거기에 독재도 민주도 아닌 어정쩡한 사회분위기가 정치적 냉소주의와 젊은 층 사이에 번진 허무주의적 기류 역시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큰 배경이 되기도 했다.
1992년 이후에 우후죽순으로 나왔던 책이 최불암시리즈였다. 대략 20여종 이상이 출간되었다. 사람들이 너나없이 사서 읽고 화제가 이어지자 덩달아 아류인 ‘노사연 시리즈’, ‘맹구(이창훈) 시리즈’, ‘대발이(최민수) 시리즈’ 등 유명연예인의 실명을 이용한 유머 시리즈가 유행했다. 노사연은 자신의 이미지를 심하게 왜곡했다며 일부 출판사를 고소하겠다(했던가?)고도 했다. 나중에 최불암 시리즈는 이것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⑥ 성형수술
어느덧 나이도 들고 인기도 떨어진 최불암이 성형수술로 반전을 꾀하기로 했다. 최불암 “선생님, 잘 나가는 장동건 같이 해주세요.”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수술 후 TV와 CF요청이 빗발쳤고, 나중에는 김태희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신혼여행 첫날 밤. 최불암은 도저히 양심의 가책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고백하기로 했다. “태희씨, 사실…. 나 최불암이요, 수술한 거요.” 그 말에 상대가 엄청나게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녀의 대답에 최불암은 기절하고 말았다. “괜찮아유, 회장님. 지는 일용 엄니구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