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풍속사⑮] 사람 잡아먹는 ‘식인종 시리즈’에 웃던 그 시절

실속있는 부위·불량식품·재소자…‘기발한 조롱’에 울고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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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재화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스마트한 세상,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정보, 개인주의가 심하다. 요즘이 그렇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인정과 소통은 예전만 못하다. 왜 그럴까? 이유를 찾기 전에 지금의 이 불통이 예견됐던 시절을 먼저 보자.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계속 독재로 치닫고, 문화가 궁핍해도 사람들 사이에 정(情)은 도도히 살아서 흐르고 있었다. 70년대가 그랬고 80년대가 그랬다. 사람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런데 난데없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우스개가 되는 ‘식인종 시리즈’가 등장했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구전으로 한참을 이어오다가 1990년대?초중반의 하이텔,?나우누리,?천리안 등 PC통신을 뜨겁게 달궜으니, 계보를 추정하기가 힘들 뿐이지 막강한 유머로 그 화끈·화려한 콘텐츠와 끈질긴 생명력, 들불처럼 번지는 파급력은 가히 핵폭탄급이었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이제 곧 주위에 남이 없어도 산다. 그 이상 재미있는 기계가 등장하니까…를 암시하는 게 유머 ‘식인종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식인종 시리즈 ① 차비는 공짜
식인종 아빠와 아들이 여행을 떠났다. 버스를 타는데, 아빠는 자기 차비만 내는 게 아닌가.
운전기사 “왜 차비를 아빠 것만 주시나요? 아드님 차비도 주세요.”
그 말을 듣고 아빠 식인종이 하는 말 “도시락도 돈 내나요?”

② 실속 있는 부위
식인종 가족이 남자 하나를 잡았다. 몸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다리는 아빠, 팔은 엄마가 먹고, 딸에게는 가운데에 달린 것을 주었다. 어린 아이는 자기 것은 제일 적다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엄마가 하는 말 “얘! 아직 그거 먹을 줄을 모르는 구나. 그건 주물러서 먹는 거야.”

③ 실속 있는 부위
식인종 나라에 여객기가 한대 추락했다. 그러자 다음 날 식인종 나라의 정육점엔 이런 광고판이 붙었다. “최신 수입고기 다량 입하!!”

④ 교도소
교도소 앞을 지나가던 식인종 부자가 있었다. 아빠는 아들에게 단단히 당부를 하였다. “아들아. 여기 있는 것들은 절대 먹으면 안 돼. 알았지?”
아들 “왜요, 아빠?”
아빠 “전부 불량식품이야.”

⑤ 자급자족
100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식인종 마을이 있었다. 마을주민들은 서로에게 모두 다정다감하고 서로 돕고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민 수가 90명에서 80명으로, 다시 80명에서 70명으로 줄어드는 것이었다. 마을 이장은 긴급 주민회의를 소집했다.
이장 “어떻게 된 일이냐? 뭐가 부족해서 우리 동네를 떠나는 거냐?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그러자 한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다. “뒷산에 가보세요. 이웃사람들의 뼈가 즐비할 것입니다.”
이장 “무슨 이야기?”
양심선언 “우린 이웃을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랬구요.”
이장 “식인종이 식인종을 잡아먹다니!”
양심선언 “신토불이!!”

⑥ 풍부해서 좋다
잠실야구장에 간 식인종, 좌석이 만원인 것을 보고 아주 좋아하며 입맛을 다셨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겠군….”

일상생활이 편리해진 건 좋지만 30, 40년 전의 소박했던 감성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식인종 시리즈’는 “난 네가 싫다”가 아니라 “너나 내가 서로를 해쳐서 누군가가 없어지면 우린 매우 쓸쓸해질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함의를 담았는지도 모른다.

당시 크게 유행한 광고 카피는 아주 강렬했다.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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