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풍속사 ?] ‘메르스 확산’보다 더 빠른 90년대말 ‘엽기 시리즈’
[아시아엔=김재화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1990년대 말 ‘메르스 확산’ 같은 조짐에 이어 이내 ‘쓰나미급 유행어’가 된 말이 있다. 사전을 무시한 “아, 엽기발랄하다!”가 일상어가 된 것이다. 묘하고, 특이하고, 유쾌한 자극을 주는 것을 “엽기발랄하다”고 한다. 말의 오용이나 훼손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상이 바뀌면서 말의 쓰임은 얼마든지 달라지고 나중에는 그것이 표준어로 등재되기도 하니까.
요즘에는 한 가지 추가된 말이 있다. 이전에 “잘 한다”는 말이→끝내 준다→죽인다→왕뭐뭐하다→쿨하다…로 진화하더니 마침내→“엽기발랄하다”로 바뀌고, 질주를 멈추지 않고 이제 ‘개’를 붙인다. “개 반갑다”, “개 수고했다”, “개 맛있다” 등의 강아지를 보니 반가운 게 아니고, 개한테 고생했다는 격려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보신탕 맛이 좋다는 그런 말들이 아니다.
젊은 친구들이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는 ‘너무’에 해당한다. 너무는 또 무슨 말인가? 원래(아직)는 세거나 많거나 하는 것을 나타내는 부사에 해당하지만 부정적인 것을 표현할 때 쓴다고 나와 있다, 국립국어원 발행 사전에 말이다. 그러니 “너무 기분이 좋다”, “너무 따뜻하다”, “너무 존경스럽다”는 말의 엽기적 사고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내면에 엽기적 속성을 지니고 살았던 걸까. 해당용어를 그대로 말하면 재미가 없다. 자극적으로 말해야 한다.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들에게는 우리나라 말이 ‘너무 너무 너무’ 엽기적이다. 볼까?
◆ “얘야, 손님 받아라!”
식당에 들어왔다가 화들짝 놀라고 나가는 외국인들이 있을까 무섭다. “한국에서는 음식점에서 손님을 맞을 때 입구에서 음식점 안으로 던져버리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 “엄청 애 먹었다.” “어?! 이들이 개나 산낙지만 먹는 게 아니고 어린 아이를 먹는구나.”
◆ “으~ 시원해!”
“아니, 김이 푹푹 나는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펄펄 끓는 콩나물국을 먹으면서 뜨거운 게 아니고 시원하다니. 차력사들인가?”
한 턱 내려면 항상 ‘일발장전’ 해야 하는 한국인
◆ “야~내가 쏠게!”
“한국인들에게는 절대 밥이나 술을 얻어먹지 말아야겠다. 돈 낸 대가로 총질을 해도 꼼짝 못하고 죽어줘야 하는구나.”
◆ “영화나 한 판 때릴까?”
우릴 새디스트라 하지 않을까? “밥 때리고 전화 때리고, 이제 영화까지? 분명 성인영화 보면서 옆 파트너를 때리는 것이니, 성도착증 환자들!”
◆ “참 잘 훔쳤어. 수고했어.”
“어라, 도둑이 칭찬받는 나라네. 내가 봤을 땐 식탁을 닦은 건데, 저 종업원은 남의 집 물건도 훔쳐오는 모양이야.”
<엽기적인 그녀>라는 책이 2000년 출간되며 큰 인기를 얻자 2001년에 동명영화가 나왔다. 온라인으로 연재된 연애 회고록에 기반을 뒀다. 영화는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홍콩, 싱가포르와 미국의 아시아계 사람들 사이에서 ‘초대박’을 터트렸다. 예쁜 여자친구(전지현)도 엽기적인데, 무엇인들 엽기적이지 않을까. 그 무렵에 함께 나왔던 초엽기 절정의 유머들이다. 지금 다시 들먹여 보니 끔찍하기까지 하다.
엽기 시리즈Ⅰ
아들 “아빠가 굉장히 빨리 달리고 있어!”
엄마 “잔소리 말고 조준이나 잘 해!”
엽기 시리즈 Ⅱ
딸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엄마 “몇 번을 묻니? 오븐 속에 그대로 있기나 해!”
엽기 시리즈 Ⅲ
아들 “나 할아버지랑 놀구 싶어!”
엄마 “힘들다. 이번 주만도 세 번이나 파냈잖니?”
엽기 시리즈 Ⅳ
신델레라 발은 의족이었다. 왕자의 구두에 맞추려고 생 다리를 자르고 의족을 끼운 거였다.
엽기 시리즈 Ⅴ
병속에 들어 간 엄마를 꺼내려고 아이는 병 속에 바람을 불어넣다가 그만 엄마까지 마시고 만다. 허겁지겁 토해내 엄마를 찾으려 하지만 자동차, 냉장고, 수박, 동전…그런 것들만 나오지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조수진의 만화 ‘병 세 개’ 중에서)
‘엽기적 사고’가 기발, 신선, 짜릿한 아이디어 창출의 다른 말이 되면 참 좋겠다.
세상을 내게로 당겨주는 유머화술
★ TIPS: 효과적으로 뻥치기를 하라.
절대 본래 모습을 얼른 드러내지 마시라. 덜 생긴 여자에게 “꺄악! 김태희보다 더 예뻐요!” 해놓고 이내 “조금 전 말은 농담이었구요, 제가 정반대로 말하는 습관이 있어요. 사실은 생긴 게 아주 자유분방하시네요. 얼굴이 지방자치제가 잘 돼 있다구요!” 했다간 당신의 안위를 보장 못하는 상황에 이르거나 적어도 귀싸대기 한방은 각오해야 한다. 내 능력을 말하는 것도 그렇다. 상대가 믿지 않아도 겉만 금으로 된 칼집이라면 납으로 된 안의 칼은 끝내 뽑지말라는 것이다. 아셨지, 어떻게 뻥쳐야 하는 걸.
뻥 중 대표적인 것, 이 추억의 작업용 멘트들만 복습하시라!
○“아버님 도둑이세요?”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하늘의 별을 훔쳐다 당신 눈에 넣었죠?”
○“응급조치 할 줄 아세요?” 왜요? “당신이 제 심장을 멎게 했거든요.”
○“길 좀 알려주실래요?” 어디요? “당신 마음으로 가는 길이요.”
○ “셔츠 상표 좀 보여주세요.” 왜요? “천사표인가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