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풍속사] ‘아재개그’ 정의부터 잘못 됐다
[아시아엔=김재화 유머코디네이터, 언론학박사] 미당 서정주, 젊은 시절부터 시재(詩才)가 킹왕짱 역대급으로 빼어났다. 하여 당대 문우들도 한 수씩 사사하길 원했다는데.
절친이자 역시 소설로 주목 받기 시작한 김동리가 웬일로 자작시 한 편 들고 와 그 앞에 내밀며 레슨 요청하자 “가락을 넣어봐!” 했겠다. 시(詩)도 노래처럼 읽는 것보단 곁에서 읊는 운율을 듣는 맛이 좋은 법. 가만 듣던 서정주 감탄하며 무릎을 치며 “절창이야.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이 대목, 아주 좋아.” 했다.
긴 글 쓰면서도 짧은 글 잘 쓰는 서정주에게 뭔가 콤플렉스 느꼈던 김동리는 용기, 자신감 충만되어 “내도 시인 재주가 있나?” 물었다. 서정주 다시 진심어린 찬사 “이런 시어는 아무나 못 읊어요. 꽃이 피면 벙어리도 눈물지을 수밖에 없다니!” 그때 갑자기 정색한 김동리 “그러게 내 원고를 직접 읽으라꼬 안캤나? 벙어리도 아프게 꼬집히면 울 끼다 카는 것이 내 시 아이가.” 김동리는 경주 출신으로 사투리가 심했다나.
어디 한국말뿐일까만 말은 무릇 언어들은 어휘 한정으로 말 하나로 다른 뜻도 표현해야 한다. 문제는 발음이 같다는 것.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바글바글. 한자어를 함께 쓰는 우리말은 더욱 그렇지. 이게 최근 유행하는 ‘아재개그’가 되었다.
친아재개그파 나는 지금부터 이 개그의 묘미 설명하며 국민 일부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거의 탄핵에 이르고 있는 작금의 부당한 사태에 맞서려 한다.
아재개그의 정의부터 잘못되었다. ‘나이든 사람들이 하는 유행 떨어진 구식개그로 주로 하는 사람이 자기만이 웃는 유머’라니. 우라질! 참, 이 ‘우라질’은 욕이 아닌 한자로 ‘優裸嫉’인데, 벗은 몸이 빼어남을 시기하고 싶다…는 뭐, 그런 좋은 말이다. 유행이 떨어진 것인데 왜 유통기간이 이리도 길며, 여전히 깨소금 맛으로 만인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느냐는 항변으로 ‘우라질’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 꽃의 아름다움에 감정표현 더딘 사람도 가슴이 찡하다 할 수 있겠고, 아프게 꼬집히면 벙어리 아니라 귀머거리, 장님, 부처, 예수, 마귀도 다 아플 것…이 꽃이피다(꼬집히다)라는 아재개그를 만들어 냈다. 아재개그는 이런 지적 언어유희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 출생의 비밀이 찬란하지 않는가!
퀴즈문제 내보겠다. 어떤 자리에서 이 김 작가가 실연한 것. “‘태양의 후예’서 어마무시 빛 발한 송중기, 송혜교와 국민 MC 송해, 이 세 사람 공통점을 3글자로 하면?”
힌트? ‘응팔(응답하라 1988)’에 나온 배우의 이름 되겠다. 낑낑대지 마시라. 넌센스퀴즈라는 것이 그렇다. 미리 정답 모르면 못 맞히는 거. 정답은 “성동일”, 성….동일, 성이 같다, 이제 이해가 가시나?
나 김 작가, 앞 아재개그에서 송해 이름 나온 것에 착안, 여세 몰아 ‘송해가 목욕탕에서 막 나온 모습을 다섯 글자로?’ 하는 퀴즈를 이었다. 묵묵부답. 정답……..은 ‘뽀송뽀송해’이다.
출제자가 정답 말해주니 모두 절묘+재미 하늘 찌른다며 깔깔대는데, 한 대학생 녀석 일성호가 남의 애를 끊나니. “에이, 아재개그네요!” 이 말 듣더니 조금 전까지 웃어주던 다른 사람들 여럿이 이내 동조 하면서 스스로 표했던 ‘감동’을 회수하려 들었다.
코미디 숙명이 그렇긴 하다. 실컷 웃겨도 저질 운운을 듣는 게 예사니까. 하지만 상당히 못마땅하다. 아재가 지방사투리로 아저씨라, 나이 든 사람들이 겨우 던지는 덜 세련된 썰렁 유머라며 ‘3류 개그’ 쯤으로 취급해버리다니!
안철수 의원 국민의당 대표 시절 일화, 자기 당 사람들이 횟집서 가진 모임서 “아, 회를 먹으니까, 제대로 회식을 하네요”라 하자 일동 박장대소했다지. 밥값 내는 사람에게 보이는 충성(예의)인지 진짜 수준 높은 유머라 인정해준 것인지 모르겠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 자기가 받는 급여 중 10% 가량은 김 상무, 이 부장…의 아재개그를 들어주는 고통감내비라 한다니, 안철수 개그 반응도 약간의 아부성이었나? 그런데 말이다. 심지어 개그작가인 내가 해도 그렇고 나이 좀 든 사람들이 하는 개그는 내용은 밀어놓고 무조건 감이나 재미가 떨어진 아재개그로 치부하는 이 사회의 인식, 영 억울하고 또 억울타.
방송에서 본 것, 아이돌 그룹 걸 하나가 “바람이 이동하는 것을 귀엽게 말하는 지역이 어디죠?” 하고, “분당”이 답이라 하며, 본인과 듣는 무리들 실로 6.25때 포성 이상의 큰 목소리로 웃어대더라. 단언컨대 이 이야기를 40대 중반 이상 연령대가 했으면 어김없이 ‘아재개그’로 매도되며 좌중에서 기각됐을 터, 심지어 이 개그 한 사람은 향후 1년간 동일 구성원에게 동종 종류 개그를 못하는 처벌 내렸을 것이 뻔~.
나도 인정하는 부분. ‘아재개그’가 큰 복선 부족, 입체적이지 못하고, 반전도 약한 단순 스토리에 주로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식 언어유희 틀이긴 하다. 그런데 전 세계의 유머는 모두 이런 ‘말장난 기법’을 지닌다. 영어권의 펀(PUN)이 대표적, 일본에도 ‘다자레’라는 ‘아재개그’가 엄연히 존재, 중국서는 ‘시씨가 사자를 먹었다’(施氏食獅史)는 시가 유명. 일반 아재가 아닌 언어학자 자오위안런이 지은 것으로, ‘시씨 성을 가진 시인이 사자 열 마리를 먹는다’는 내용인데, 이게 절묘한 것이 ‘시’(shi)로 발음되는 글자로만 이뤄진 데 있다. 유튜브 영상으로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시시시시시~” 무려 90회를 하다가 끝난다.
멀리 갈 거 없다. 우리네 고전유머, 저 유명한 ‘김삿갓’ 풍자시도 아재개그인데, 계속 낮춰볼 건가?
‘내 일찍이 서당인 줄은 알았지만(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방 안에는 모두 귀한 분들일세(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도 요즘의 아재개그 식으로 평가해서 ‘단무지’ 수준이라 폄하할 거냐구?
보셨지? ‘아재개그’ 원조는 고급스런 언어유희에서 시작된 것이고, 사실 예전 생산품 무슨무슨 시리즈 유머가 거의 아재개그 형식이다. 개그 재발견하길. 아재개그가 사회에 공헌하는 바, 실로 엄청나다. 요즘 무력감과 상실감에서 빠져 허우적대는 중년 층 이상 꼰대들을 사회 일원으로 편입시켜 주는 태반주사 이상의 힘을 주고 있다니까.
세상에 선언한다. 이제 ‘아재개그’ 칙칙한 개그라 하지 말고 ‘아’주 ‘재’미 있는 개그로 여겨야 할 사. 국가 또한 아재개그를 널리 허하라!
**아재개그 ?몇 개**
모자가 놀라면 모자이크
정조대왕 가족 이산가족
교통사고를 3글자로 줄이면 붕어빵(붕~ 어~ 빵~)
항아리에 피부병이 옹기종기
자동차에 사람 셋이 타고 있다 쓰리랑카/ 인삼차 / 세차
길거리에서 총을 쏘는 것 길건 탕웨이
프랑스 사람이 빨래를 널면서 하는 말 마르세유
설날 세뱃돈을 못 받으면 설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