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후보들, ‘유머지수'(HQ, Humor Quotient) 좀 높여주세오
[아시아엔=김재화 유머코디네이터,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 막강한 정치인이 되는 건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 아니 체할 수 있으니, 누워서 천장 쳐다보기보다 더 쉽다. 나이가 몇 살 이상에 한국국적 갖고 있으면 끝~ 아닌가. 선거에 나가야 하지 않느냐고? 당선되면 되지 뭐!
원조 민주주의 국가 영국에서는 ‘의회의 首長’이 되는 조건으로 “유머센스가 있어야 할 것”을 명문화시켜 두고 있다. 사실상 의원들 모두가 적절히 유머를 구사할 줄 알아야지 그러지 않으면, 즉 웃기기에 맹탕이면 정치인으로 쳐주지 않는다. 미국같은 정치선진국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유머 없는 정치연설을 ‘speech’ 아닌 ‘torture’(고문)로 여기는 경향이 있을 정도다. 유머에는 정치인이 꼭 지녀야 할 덕목인 평화와 민주주의 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잘 웃기고, 잘 망가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하는 오마바도 유머실력 때문에 8년이나 미국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도 직업유머전문가인 코미디언이 국회의원을 한 적이 있긴 하다. 요즘 ‘국민의당’과 말고 기업가 정주영이 세운 다른 ‘국민당’의 코미디언 故 이주일(본명 정주일)씨가 국회에서 콩나물과 정치를 팍팍 무치며 웃음을 줬었다. 그래서 이야기인데, 앞으로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은 공채 개그맨 출신이거나 나같은 유머전문가에게 와서 얼마나 잘 웃기는지 사전면접을 거치는 것을 의무조항으로 했으면 한다.
“손에 장 지진다” 했으나 버티고 있는 이정현 의원이나 지금은 작가로만 사는 유시민씨, “정치 불판 갈자”며 비유 멋들어지게 잘하는 노회찬 의원, 무엇을 ‘19금’이라도 빗대는 말솜씨 지닌 정두언 전 의원 등은 이미 유머실력이 검증되었으니 면제.
왜 우리나라에서 코미디언이 정치를 잘할 것 같을까? 다 이유가 있다.
?여의도 지리를 잘 안다. 방송사들, 국회의사당이 여의도에 있다.
?둘 다 숱한 소문의 주인공이 돼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내성이 강해 끄덕 않는다.
?이미지와 인기관리를 잘한다.
?자기 잘난 멋에 산다.
?일이 터지면 은퇴(사퇴)한다며 다 책임질 것처럼 행동하다가 잠잠해지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설쳐댄다.
?어려운 사람 돕는 시늉을 잘한다.
?‘결합’이 낯설지 않다. 선거철 지지유세 등에 코미디언들이 숱하게 지원을 해봐서 정치인의 생리를 잘 안다.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 하지만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
?뻥을 잘 친다.
?벌을 받더라도 곧 풀려나기를 잘 한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코미디언이 정치에 입문해 정치가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존 크나르 시장, 이탈리아의 베페 그릴로는 제1야당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 당대표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는데, 정계에 뛰어들 때 모두 인기절정의 정치풍자 코미디언이었으며, 선거운동이나 소통을 할 때 주로 웹사이트,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를 잘 이용하고, 정말 장난처럼 가볍게 정치를 시작했지만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어 기성정치인들의 코를 성형수술을 시키지 않고도 납작하게 만들어버렸다.
‘최고당’(The Best Party)의 대표이자 시장까지 한 크나르는 레이캬비크 시민 12만명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우리나라만한 땅 넓이지만 전체인구가 32만명에 불과해 크나르를 지지하는 사람은 전국민의 3분의 1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당 이름부터 엄지척에 해당하는 ‘최고당’이어서 웃긴다.
크나르는 경찰관 아버지와 주방보조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 제대로 성인이 되리라고 예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문제가 많았던 아이였다고. 공부는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택시운전사, 록밴드 활동을 하다가 결국 아이슬란드 최고의 정치풍자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성공했다.
크나르가 당을 만들게 된 동기는 처절한 무력감과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당선 후 기자들이 창당 이유를 묻자 그는 “월급 많이 받아, 내가 아는 친지들 돕고, 공짜로 즐길 것도 많고…”라 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
다음, 그릴로는 이탈리아의 야당 ‘오성운동’ 대표이다.
그릴로의 공약도 허경영씨 이상인데, 모든 수영장에 공짜 수건 제공, 동물원에 북극곰 사육, 병약자들을 위한 복지, 시내 한복판에 디즈니랜드 건설…등이니. 그래도 정식 정강정책은 점잖다. “사회의 기본인 가정을 돕고, 불우이웃 삶 향상, 사회부패 척결, 동등권리 보장, 학생들과 빈민층에게 무료버스와 치과치료 제공…”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그는 선거유세 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마구 늘어놓았다. “정치인이 반드시 공약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나도 정치인의 한 사람이므로 당선되면 지키리라고는 보장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공약 대부분을 지켰다. 또 “다른 당은 숨기면서 부패했지만 우리는 드러내 놓고 부패하겠다”고도 말해 사람들을 웃겼다.
미국의 트럼프, 필리핀의 두테르테에서 알 수 있다. 어떤 인물이라도 식상한 정치인만 아니라면 국민들은 야릇+짜릿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심리가 아이슬란드와 이탈리아에서 인기 코미디언을 대안으로 세운 것이리라.
사람들은 코미디언이 현실정치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 더욱 재미있고 속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수준 높은 유럽인들은 코미디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운을 주는 것을 잘 알고 코미디언을 그들의 공복으로 삼은 것이다. ‘낯익은 악마’인 구태 정치가 아닌 ‘새로운 천사’ 같은 정치신인에게 기대를 했고 코미디언은 거기에 부응을 하는 식이었다.
정치가 3류 코미디처럼 구니, 1류 코미디를 보여주겠다고 희극인이 정치에 발을 디디는 것 같다. 사람들도 세상 살기가 고달파 웃기기를 잘하는 사람을 정치인으로 뽑아 그들의 입담으로 시름을 잊으려 한다.
한국 정치계에서 연예인 정치인들은 꽤 됐지만, 코미디언은 흔치 않았다. 앞서의 이주일씨가 절반의 성공밖에 못 거뒀고, 故김형곤씨는 그리도 하고 싶었던 정치계 입문을 끝내 못하고 일찍 숨지고 말았다.
이미 나이 90을 넘겼지만 20대 청년 못잖은 기력 있으신 송해 선생이 ‘아리송해’ 하는 한국정치를 ‘뽀송뽀송해’로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