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②윤보선 편

한국영화 전성시대였던 1960~70년대 활약한 불세출의 희극배우 서영춘(1928~1986)


서영춘, 숨 거두기 직전에도 폭소 자아내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육사를 나오든가 상고를 졸업하거나 서울시장을 지내야 한다. 4대 대통령 윤보선은 마지막 요건에 해당된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서울시장에 발탁됐으니까. 윤보선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뒤 입후보해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1962년 사임, 1963년 전두환의 ‘민정당’ 아닌 다른 민정당(民政黨)을 만들어 대통령되기 쟁탈전에 나가 박정희와 겨루었으나 1패, 1967년 6대 때 박정희에게 다시 패하여 2연패.

윤보선 대통령은 영국 에든버러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한 고고한 선비로 지조 있고 서양식 매너가 넘치는 국제신사다. 일제시대에는 나라 잃은 설움 때문에 밥을 일부러 굶기까지 했다는 강직한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정치인으로는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영국신사인 그가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마다 TV에 자주 나왔던 영국 코미디 <미스터 빈>의 로완 와드킨슨을 왜 닮지 못했을까?

미스터 빈은 자신의 이익이 보이면 다소 치사해 보여도 얄미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땅에 떨어진 음식도 다시 집어먹고, 새치기도 하고, 교통신호도 눈치껏 위반한다. 하지만 윤보선은 굶어 죽어도 땅에 떨어진 음식은 먹지 않고,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고, 빠져 죽어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 선비였다. 정치가의 풍모는 있었으되 정치꾼의 사술은 없었던 것. 만일 그가 미스터 빈의 코미디를 접할 수 있었거나, 미스터 빈이 윤보선과 같은 시대에 활동해 그 연기를 보여주기만 했어도 한국사회 민주화는 훨씬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윤보선은 5대 대선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적은 표차인 16만 표로 박정희에게 패했다. 그 무렵 윤보선은 잠시 ‘코미디언’이 된 일이 있다. “박정희는 부정선거를 했어. 그래서 내가 정신적 대통령이야!”라고 외쳤으니까…. 원, 세상에! 대통령 따로 있고, 정신적 대통령 따로 있는 나라가 어딨냐구?!

웃음경작지 여의도, 방송사와 국회

윤보선과 박정희가 두 차례 정권쟁탈전을 벌일 때 왕성하게 활약하던 코미디언 가운데 양훈, 양석천 콤비와 서영춘, 백금녀 커플이 있다. 그들은 무대와 영화에서 정치가들이 못해준 국민위안을 대신 하느라 그야말로 종횡무진 누볐다.

윤보선과 ‘살살이’ 서영춘. 신분은 달랐지만, 같은 시기에 비슷한 일을 하다가 큰 시차 없이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이다. 국민을 상대로 인기를 얻었고 그걸 유지했어야 했던 2인은 처음에는 빵빵 터졌으나 나중에 1인은 대선에 거듭 실패한 것을 빗댄 ‘버선도 버선도 떨어진 버선은?’ 답은 ‘윤보선’ 하는 식의 넌센스 퀴즈 대상이 되고 말았고, 다른 1인은 아까운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서영춘은 극장 간판을 그리던 3류 화가였는데, 당시 유행하던 극장쇼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배우 한 명이 펑크를 냈다.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서영춘이 대타로 올라갔고, 데뷔 이후 ‘하늘이 내린 뛰어난 코미디언’이라는 칭호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다. 그와 친구였던 <전국노래자랑>의 코미디언 송해(1926년생)는 지난 2000년 12월19일 전북 임실의 예원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고 서영춘 동상 제막식 추념사에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고 서영춘 동상 비문은 그 학교 교수였던 필자가 썼다.)

“아, 영춘이! 그대가 외쳤던 말, 지금 생각해 보면 60년대 70년대 사회를 향한 통렬한 질타였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예언이 되는 교훈이었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없던 시절 아무 거나 잘 먹자는 소리였으이. 뿐인가? ‘살살이 요건 몰랐을 거다’ ‘배워서 남 주나’는 면학을 장려한 말이었고,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 없으면 못 마시네’ 이 말은 가진 것을 잘 활용하라는 일침 아니었나?”

필자부터 서영춘을 위대한 코미디언이라고 보는 이유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도 사람들을 웃겼다는 데 있다. 병문안 간 여러 후배 중에 최고로 잘 나가는 이경규가 있었다. 곁에 있는 그를 보고 겨우 입을 연 서영춘 “경규야, 요즘 어떠냐?”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이경규 “(무심코)아이, 죽지 못해 살고 있죠!” 잠깐 미소 지은 서영춘 “나는 살지 못해 죽는다…!”

죽어가는 이 앞에서 엄청난 폭소가 일었다.

사람이 편안하고 즐거울 때 짓는 가장 보편적 감정표현이 웃음이다. 중요하고 재밌는 사실은 먼저 웃어도 우리 몸은 편안한 상태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웃음의 마력이다. 요즘 웃음경작지는 여의도다. 방송사 개그맨들과 의사당의 국회의원들이 웃음을 심고 키워내 유통시키는 웃음메이커들이다. 암튼 그들은 국민들을 웃긴다. 서로 웃기는 방법이 크게 다르긴 하지만.

*세상을 내게로 당겨주는 유머화술
Tips. 듣는 사람이 믿게 하려면?

믿게 한다고 거짓말이나 술수로 속이라는 말이 아니다. 유머가 ‘말이 되기에’ 듣는 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게 한다. 그러려면 첫째, 상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맞았다”는 말은 과장으로 웃기는 것일 뿐. 갈팡질팡하는 말이 웃길 수는 있어도 고급 유머는 되지 못한다. 둘째, 조크라고 수치가 틀리거나 인명·지명이 엉터리여선 안 된다. 강성범의 지하철 1호선 역명 대기는 정확해서 찬사를 받았던 것이다. 셋째, 자기 역량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말한다. 능력이 20인 사람이 90 이상을 얘기하려 했다가는 고개를 갸웃하게 할 뿐이다. 넷째, 가능하면 본인의 경험을 유머 소재로 삼는다. “~가 그러는데…” “책에서 봤더니…” 등을 전제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간접경험으로 알게 된 특이한 얘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표현이 생생하지 못하고 불명확한 정보를 말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가능하면 확실한 직접경험을 말하는 게 호응을 얻는다. 오락 프로그램 패널들이 토크쇼에서 말할 때 남에게 들은 극적인 경우보다 소박한 자기 경험을 말하는 것을 많이 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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