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의 유머 풍속사] ⑤ 노태우-김영삼의 슬픈 코미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두 대통령은 임기 동안 국민들의 코미디 소재로 활용됐다.

물태우 “이 사람 믿어주세요” vs YS “강간도시 만들겠습니다”

노태우는 36%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당선 다음 날부터 내내 불안했다. 절친이 7년이나 대통령 노릇을 해내는 것을 옆에서 보긴 했지만, 왠지 자기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노태우는 보통사람의 수수함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대통령 선거 이듬해부터 곤욕을 치렀던 것이다. 민심은 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 버렸다. 노태우의 “믿어주세요”는 성대모사의 달인 최병서의 입에서 딴죽이 걸리곤 했다. 노태우는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한 유일한 대통령이었으나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를 코미디로 삼은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 시비도 흥미나 관심이 있어야 거는 법!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이윤박최돌물깡김노이박…. 사람들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우리 통치권자 계보에서 노태우를 ‘물’로 묘사했다. 하긴 일부 코미디언이 ‘물’을 소재로 삼긴 했었다. 나중에 그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밝혀졌을 때 코미디언들은 노태우의 ‘물’을 ‘식은 숭늉’이 아닌 ‘펄펄 끓는 물’로 고쳐 불렀다.

다음은 노태우 대통령을 소재로 삼은 몇 편 안 되는 코미디인데 이것 말고는 없으니 서둘러 읽고, 다음 선수인 김영삼으로 넘어가야겠다.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슬프고 가슴 아프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아는가? 나? 물고문 당한 양심수다.”

“그를 물이라 하지 마라. 한여름에도 오싹 추워지는 말이 물이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가? 나는 홍수로 알거지가 된 수재민이다.”

‘YS는 못 말려’를 필두로 대통령 실명 조크집이 가장 많았고, 그 자신이 여기저기, 이 입 저 입에서 마구 ‘씹히는’ 유머의 소재가 된 이가 김영삼이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그의 사투리는 시중에서 저절로 개그로 만들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지방 순시 도중 연설을 했다. 그는 ‘경제위기’를 설명하고 그 도시를 ‘관광지’로 개발하겠노라고 역설했다. “우리 갱재는 이깁니다(우리 경제는 위기입니다).”

우리 경제가 “이길 거”라는 말에 사람들은 대박이라며 손이 떨어져 나가도록 박수를 보냈다. 그는 국민들이 자신에게 용기를 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힘을 내어 다음 말을 이었다. “이 지역을 ‘강간’ 도시(관광도시)로 만들 것입니다.” 강간이라니!

청중들 모두가 험악한 표정이 되었다. 환호를 기대했던 김영삼은 의아해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우라까이라운드(우루과이 라운드) 때문에 사람들이 뒤집어진기라…”

야사에 따르면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던 김영삼은 자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코미디를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그의 입노릇을 한참 했던 박종웅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도 말한다. “YS가 당시 그린벨트를 잘못 이해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최고 지성인을 배출한 S대 출신 아닙니까? 그의 머리를 의심해선 안 되죠.”

그러나 YS유머는 거의 전부가 그의 머리를 부정적으로 빗댄 것이니 어찌하리오. S대를 나오지도 못한 젊은 말재주꾼 엄용수, 심형래, 김형곤 등은 ‘밀실개그’를 통해 감히 김영삼의 머리에 자꾸 흉을 봤다. 앞서 말한 대로 김영삼 대통령을 소재로 한 우스갯소리 모음집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 과정에 사실 여부를 떠나 수많은 루머 성 개그가 탄생했다. 당시 최고 으뜸개그로 떴던 것.

YS가 미국 대통령 클린턴을 만나러 갔다. YS가 ‘Danger!’라는 표시를 보고 “오우, 저 단거를 먹고 싶어요.”라 말했다. 수행원이 얼굴이 벌게지며 설명하길 ‘G’가 우리말 ‘ㅈ’으로 발음되어 ‘데인저’라고 하자,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 “Oh, my god!(조+ㅅ)”

또 다른 것들도 개그형식이 거의 같다. YS가 정치공작의 대명사인 안기부의 기구를 축소하고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불참을 지시하자, 기자들이 그 배경에 대해 물었다.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통상적인 관례였는데 불참토록 한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YS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몰라서 묻나? 장관들이 대통령과 회의하는데 부장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노? 국장도 이 자리에 못 끼는데.”
YS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절친한 친구와의 통화내용.

“축하한다. 드디어 당선이 됐구먼.”
“고맙데이.”
“부인도 그리 고생하더니 이제 퍼스트레이디가 되었구먼. 진심으로 축하하이.”
그러자 YS가 화들짝 놀라며 “그기 무슨 소리고? 우리 집사람이 언제는 퍼스트 아니었나. 우리 집사람은 절대 세컨드가 아니다.”

김영삼은 독설로도 유명하다. 그가 당내의 끊임없는 반목을 이겨내며 결국 권좌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거칠 것 없고 공격적인 발언 덕분이었다. 그는 말을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거나 누구를 의식하는 것을 선천적으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와병 중인 두 분의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