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오비추어리] ‘간 박사’ 김정룡 “1주일 3일은 무조건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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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이름보다 ‘간(肝) 박사’ 애칭으로 더 알려진 김정룡(金丁龍) 서울대 명예교수가 향년 82세를 일기로 지난 11일 별세했다. 고인은 최근 식도암 투병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간 의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김정룡 박사는 수많은 환자를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B형간염 퇴치 등 한국의학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업적을 남긴 의료계 ‘큰 별’이다. 고인은 1971년부터 30년간 서울대 의과대학 내과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연구·진료에 전념했다.

김정룡 교수는 1960년대 말 만성 간질환의 주요 원인이 B형간염 바이러스(hepatitis B virus, HBV)라는 사실을 규명했으며, 73년 B형간염 바이러스 항원을 혈청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항원을 이용해 백신을 개발해 1979년 세계 3번째로 실용화했다. 1999년에는 C형 간염 바이러스를 혈청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성공해 세계 학계가 주목했으나 고인은 생전에 C형간염 백신을 개발하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김정룡 박사는 간염백신 로열티 약 100억원을 모아 1984년 재단법인 한국간연구재단, 1986년에는 서울대 부속 간연구소를 설립해 후학들에게 체계적인 연구와 최신 연구 수행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두 기관을 국가에 헌납했다. 김정룡 교수는 500여 연구논문을 국내외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했다.

김정룡 박사는 1935년 함경남도 삼수에서 출생하였으며, 목포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의대 졸업 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내과학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9년 서울대학병원 인턴, 내과 전문의를 시작으로 내과 과장, 의과대학 간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했다. 미국 하버드의대 보스턴병원과 영국 런던대 왕립병원에서 연수했다.

김정룡 교수는 1967년 미국 보스턴병원에 연수를 받기 위해 갔다. 당시는 미국의 바루크 블럼버그(Baruch Blumberg)교수가 B형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해 연구를 시작할 때였다. 블럼버그는 컬럼비아대학 졸업 후 국립위생연구소 연구원,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를 거쳐 1970에 필라델피아대학 암연구소 교수가 되었다.

블럼버그 교수는 1965년 호주 원주민들의 혈청에서 바이러스 비슷한 미립자를 발견하고 이것을 오스트레일리아 항원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이 훗날 B형 간염 바이러스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블럼버그는 B형 간염 연구로 미국인 대니얼 라이듀섹 박사와 함께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블럼버그 박사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생물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2011년 4월 5일 NASA 회의에 참석 중 심장마비로 향년 85세로 사망했다.

김정룡 박사가 간 연구에 뛰어든 1970년대 우리나라 국민의 B형 간염 보균자는 10명 중 1명꼴이었다. 1983년 국산 B형 간염 예방백신 ‘헤파박스’가 시판되었으며, 백신 값도 외국 제품보다 10분의 1 정도로 저렴하면서도 효능이 우수해 막대한 비용 절감에 기여했다. 예방백신이 보급되면서 B형 간염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간경화와 간암 환자도 감소했다. 김 교수는 생전에 “B형 간염을 퇴치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이 평생을 간 연구에 바친 의사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1971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로 근무하면서 1년 이상 그의 진료를 기다리는 예약환자가 1만5390명이라는 국내 최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간연구회 회장 △아시아태평양 소화기병학회장 △대한소화기병학회 회장 △대한내과학회 회장 △한국간연구재단 이사장 △내과학연구지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서울대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의대 명예교수 △간연구소 특별연구원 △일산백병원 고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등으로 활동했다. 그의 수상·수훈 경력은 다음과 같다. △대한의학협회 학술상(1973년) △대한민국 과학상(1983) △호암상(1995) △국민훈장 모란장(1984) △국민훈장 무궁화장(2011).

젊은 시절부터 애주가로 알려진 김정룡 박사는 “술이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약물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간 독성물질”이라며 “술? 좋지만 3일 진탕 마셨으면 3일 진탕 쉬어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평소 목요일에는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 조직한 ‘목탄회’에서, 금요일에는 젊은 시절부터 조직한 ‘금주회’에서, 그리고 주말엔 주로 골프를 즐긴 다음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은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 원칙을 평생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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