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오비추어리] “내툰나잉씨, 저 세상서도 버마 민주화와 한반도 통일 꿈 잊지마오”
미얀마 NLD(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던 내툰나잉(Nay Tun Naing)씨가 9월4일 새벽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46.
가족과 동지들은 고국 등에 흩어져 있어 부천 석왕사에서 장례절차를 마쳤다. 내툰나잉씨는 아웅산 수치 여사 측근으로 곧 실시되는 미얀마 총선-대선에서 주요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고인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1986 양곤(랑군)대 입학 △1988.8.8 항쟁으로 석달간 투옥 △NLD 지원 ‘새사회를 위한 민주당’ 지역회장 △1994 방한 △1997 ‘버마민주화모임’ 설림 △1999 NLD한국지부 정식승인 △2007-2012 프리버마 캠페인 126차 진행 △2010~사망시까지 NLD한국지부장 △2013.1 아웅산 수치 여사 방한 수행
‘코리아글로브’ 김석규 상임이사가 <아시아엔>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내툰나잉씨.
그대와 처음 만난 2015년 4월29일 저녁을 어찌 잊겠소.
한-미얀마 수교 40주년이라,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려 국회 한켠을 잡아놓고
여야 의원들까지 불러모셨지만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아예 판을 깨는
주한미얀마대사관 탓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지 않소.
그때, 그대와 김영길 아웅산포럼 대표께서 “아예 부천에서 40주년 기념식을 갖자” 하여
NLD 사무실에서 서른 남짓 우리끼리
두 나라의 40년 우정과 백년 미래를 함께 축원하지 않았소? 밤이 새도록.
“대사님께 고맙다 박수 드립시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어찌 우리가 이토록 귀한 인연을 맺었겠습니까.”
처음 보는 자리에서 그대는 남달랐소.
두 달 마음고생을 한마디로 녹였으니
8.8부터 얼추 서른 해 그 긴 나날 또한 그대에게 넘지 못할 벽이 아니다 싶었소.
많이 떠들었소.
광화문에서 여의도에서 저 부천에 황금이 있다,
머리 깎지 않은 파고다가 있다~
그런데 아이구머니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두 달만 지나면 11월8일인데 코앞에 두고 심장마비라니.
내 미처 몰랐소이다.
그대의 늠름함에 취해 그 긴긴 나날
그 몸서리치는 세월에 그대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그대 심장까지 무너졌음을
이 어리석은 사람은 못 읽었소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웅산 수지 여사보다 더 빨리
하늘나라에서 그대를 부를 줄이야
이 모자란 사람은 꿈에도 못 헤아렸소.
이럴 줄 알았으면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그럴 듯한 자리 만들어
그대와 함께 하려 하지 말 것을.
그저 부천에 불쑥 쳐들어가
그대의 손을 덥썩 잡고
막걸리 한잔 나눌 것을,
이 멍청이는 이 어둔 밤
사무실 홀로 한잔 마시며
그대의 이름을 부릅니다.
내툰나잉. 그대 잘 가시오.
내 이제 또다른 내툰나잉을 만나
그대와 못 다한 숙제를 풀 것이오.
내툰나잉. 부디 저 세상에서라도
그대의 미얀마가 자유의 나라가 되도록
우리 코리아가 통일의 나라가 되도록
우리 굳게 나누었던 약속을 이룹시다.
내툰나잉. 저승에 좋은 자리 봐두시오.
흐르는 세월 따라 문득 그대 볼 날이면
“그새 잊어버렸소?” 타박하며
볕 좋은 마당에서 한잔 가득
이미 돌이 되어버린 아쉬움을 녹여냅시다.
내툰나잉. 보고 싶소.
내툰나잉. 그대 잘 가시오.
그대의 벗 김석규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