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오비추어리] 김만수 ‘미래촌-품마을’ 촌장 “어머니 꾸지람으로 ‘세상씨름’서 이길 수 있었어요”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국화향 진한 지난 주말(10일) 아침 카카오톡으로 짧은 글이 올라왔다. 서울 서초구 양재2동 동장과 서초구의회 사무국장을 끝으로 36년 공직생활을 퇴직한 김만수(73) ‘미래촌-품마을’ 촌장의 글이다.
전날 어머니(김원순) 장례식을 마치고 보낸 것이다. 그와는 지난 초봄 ‘덕화만발’ 모임에서 처음 만나 다음카페에서 아주 이따금 소식을 전해 듣는 사이다. 기자는 조의를 전할 겸 전화를 했다. “어머님 생전의 눈물의 기도가 후손들에게 길이 덕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진 있으면 보내주시죠, 저희 <아시아엔>에 오비추어리라고 돌아가신 분 추모하는 난에 게재하고 싶습니다.”
그러구마 응답한 김 선생의 답이 없어 14일 아침 전화하니 잠시 후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다.
“미안합니다. 마침 주변에 컴퓨터도 없구요… 사진 올리는 것도 자신없구요. 따로 사진 준비한 것도 없구요. 부끄럽네요. 그냥 스마트폰으로 몰래 쩍어 놓은 것 보냅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김만수 선생이 기자에게 보낸 카카오톡 문자를 전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덕분입니다! 제 어머니. 한글날 진달래묘원에 잘 모셨습니다. 제 가슴 깊이 묻고 왔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동장(童長) 김만수 마음 글 올립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백수’하신 어머니는 슬하에 5형제를 두셨어요.
둘째인 나는 엄마한테 꾸중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재치도 없고 아양도 없고 뗑깡도 없고 나가 싸우지도 못하는 ‘순딩이’였으니까요.
정말 ‘쇠견통 머리 없는 애’ 였으니까요.
어머니는 늘 내 머리통을 큰 주먹으로 쥐어 박았어요.
세상에 나가 제 구실을 못할까 봐서요.
세상 대응에 대한 큰 교훈을 주셨던 거예요.
그 덕에 ‘세상씨름’에서 곧장 설 수 있었지요.
제법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실어주셨지요.
철도학교(당시 교통고교)를 가고 서울시 공무원이 되었을 때 제법 잘 컸노라고 동네 자랑도 꽤나 하셨구요.
어느 날 힘이 떨어지시고 가끔 정신을 놓으셨지요.
마땅히 비빌 언덕이 없어 낯모르는 곳으로 가셨지요.
셋째와 막내를 앞세우신 것도 모르고 계셨지요.
백수하시면서 아예 말문도 닫고 가슴문도 닫으셨지요.
99년을 사시면서 참으로 궂은 일 많이 하셨어요.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피하는 일은 도맡아 하셨지요.
거침없이 거뜬히 억척스럽게 다 해치우셨지요.
힘이 다하시고 마음도 다 하신 채
7년여를 누워 계셨지요.
이제 정말로 몸과 마음이 다하여
가볍게 숨을 거두셨나봐요.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불효한 둘째가
속으로 울먹입니다.
할말을 잃고 이제 어머님 영전에 가슴으로 고합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렇게 건장한 몸과 마음을 주셨음에
감사, 감사드려요!
안녕히 가셔요!
편히 쉬고 계세요!
2015년 10월7일 둘째 만수가 엎드려 어머님께 글월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