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추어리] 1987년 군 의문사 최우혁 친구 곁으로 떠나신 아버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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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편집국] 1987년 9월 8일, 전방부대 복무 중 민주화 활동에 대한 보안부대의 관찰과 부대 내 구타 등에 항의해 분신자살한 고 최우혁(사망 당시 21살)씨의 부친 최봉규(84)씨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새벽 4시5분 폐암으로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영면했다. 12일 아침 6시 난곡성당에서 추모미사 뒤 9시 서울 동대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한울삶에서 노제를 드린다. 장지는 아들 우혁씨와 25년 전 아들을 따라 한강에 투신한 부인 강연임씨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이다.

이날 별세한 최씨의 부인 강연임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두달만에 뇌일혈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뇌졸증, 실어증, 우울증에 시달리다 1991년 2월 19일 차디찬 한강에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학생운동으로 구류와 부상, 도피?등에 쫓기던 아들의 입영날짜를 당겨 입대시킨?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부인 강씨는 “우혁이를 군대로 피신시킨 게 아니라 사지로 몰아넣은 게지?감옥에 갔더라도 살아 있을 텐데, 살아는 있을 텐데”라며 삶을 마감했다. 고 최봉규씨는 유가협 총무를 맡아 국회 앞에서 422일간 의문사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최씨의 삶은 이경순, 최하동하 감독의 다큐멘터리 <민들레>에 일부 조명돼 있다.

아들 우혁씨의 서울대 서양사학과 84학번 입학동기이자 친구인 김치하(50)씨가 <아시아엔>에 추모글을 보내왔다.-편집자

아버님!

1987년 9월8일 당시 20대 초반의 청년인 제가 50대 중년이신 아버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22세의 청춘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친 아버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저의 둘도 없는 친구 우혁이의 죽음을 앞에 두고 처음 뵌 아버님은 그 엄청난 슬픔에도 굳건히 당신의 자리를 지키고 앞으로의 길을 준비해 가시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신 강건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부터 아버님과 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우혁이와의 3년 남짓 함께 한 대학생활은 아버님과의 거의 30년 세월을 한곳으로 걸어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30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버님과 저는 많은 일들을 함께 하였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버님이 일을 시작하면 제가 허겁지겁 뒤에서 따라가면서 마무리를 하곤 했죠

대학 재학 중 우혁이 추모문집을 내면서 혹시라도 우혁이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당시 있었던 상황을 정말 놀랍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생생하게 방대한 글로 남겨주시던 아버님.

헌병대와 국회와 청와대 등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진상규명 탄원도 하시고 국민들 서명도 받고 농성도 하시던 일, 특히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장장 422일 동안 여의도 국회 앞 노상에서 천막농성을 하신 아버님!

당신은 그렇게 춥고 힘들게 농성하시면서 제가 인사하러 가면 춥다고 빨리 들어가라고 슬쩍 등을 떠미시던 아버님.

우혁이의 민주화 활동과 그 희생에 대해 서울대에서 명예졸업장을 대리 수여받으실 때, 우혁이와 우혁이를 따라 한강에서 투신한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추모비를 학교에 건립했을 때, 1987년 군에서 매장했던 양주 운경공원에 혼자 누워있던 우혁이를 어머니가 먼저 자리잡고 계시던 모란공원으로 이장했을 때, 눈시울 붉히면서 말없이 손을 꼭 잡아주시던 우리 아버님

아버님은 지난 30년 동안 저에게 친구 최우혁보다도 더 가까운 저의 아버님이 되셨습니다.

이제 아버님을 멀리 보내드려야 한다는 북받치는 슬픔에, 아버님께서 바라고 바라시는 세상이 아직도 긴 어둠의 터널 속에 있는 이때, 울고 있을 수만 없어 담담하게 편지를 드려야겠다고 글을 쓰는 데 앞이 뿌옇게 보이네요.

아버님이 우혁이의 죽음 앞에 던지신 말씀을 되뇌어 봅니다.

“나는 이제 너가 죽은 것에 대하여 그리 슬퍼하지 않을란다. 네가 남긴 유제(遺題)를 위하여 나의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부디 나에게 힘을 주어 너의 비참한 죽음을 알리게 하고, 그리고 너와 같이 뜨거운 피를 가진 청년들이 죽어 자빠지게 만드는 부조리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제부터는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차가운 강은 없어도 좋을 법 하구나.”

아버님. 다음 만날 때 좋은 세상 왔다고 꼭 전해드릴게요. 이제 다 잊고 안녕히 가십시오

2016년 2월11일 최우혁기념사업회 김치하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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