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문사 최우혁씨 25주기, “짧았던 21살 생애 결코 헛되지 않아…”

1987년 군 복무 중 의문사한 고(故) 최우혁씨(사망 당시 21세)의 부친 최봉규(82세)씨가 지난 2일 경기도 양주 소재 운봉 공원묘지에서 열린 25주기 추모식에서 소주 한잔을 마시고 있다.

“너희들도 한 잔 받아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 먼 곳에서 이렇게들 와주니….”

25년 전인 1987년 군 복무 중 의문의 죽음 당한 고(故) 최우혁씨(사망 당시 21세)의 부친 최봉규(82)씨가 늦여름 햇살에 뜨뜻미지근해진 소주 한 잔을 먼저 들이킨 뒤 아들 친구들에게 한잔씩 권했다. 파릇파릇 스무살 탱탱하던 청년들이 어느새 40대 중후반, 막내아들 친구지만 삶이 팍팍한 이들은 제법 늙수그레하다.

지난 2일 정오 가족과 친지, 동창생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회(유가협) 인사 등 30여 명이 ‘고 최우혁 열사 제 25주기 추모제’를 위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운경공원묘지 꼭대기 근처의 한 조그만 묘역을 찾았다. 늦여름인지 초가을인지, 코발트블루빛 하늘에 바람이 선선했지만 맹렬한?햇볕의 기세도 만만찮았다.

고인은?1984년 서울대에 입학, 학내 학생운동 동아리인 ‘경제법학연구회’에 가입해 각종 시위와 집회에 참석했다. 1986년 하반기 때 노동운동에 뛰어들려고 작심했다. 과외로 번 돈으로 수배자를 도왔고, 시위로 검거돼 수차례 구류를 살았다.

시위 때 입은 부상으로 심신이 크게 위축돼 있을 때,?어머니(강연임, 91년 별세)가 아들을 군에 보내려고 애를 썼다. 여염집 어머니들처럼 운동권 학생인 자식 때문에 수년동안 애태우던 어머니는 자식의 장래를 걱정해 군 입대를 서둘렀던 것이다. 그런 아들이 군에 입대(1987년 4월)한 지 5개월만에 병영내에서 영문 모르는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저기 저 수없이 반짝이는 나뭇잎 하나둘, 우리 살아남은 자들의 희망을 돌아오는 너에게 들려주리라.” 이날 낭독된 추모시 <나뭇잎 하나로 이 세상을>중에서.

학생운동 전력의 사병들에 대한 통제와 구타가?극심한 시절, 더구나 최우혁은 보안사의 요시찰 명단에 올라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대한 지 133일 만인 1987년 9월8일,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통보받고 뇌일혈로 쓰러졌다.

어머니는?군사정권에 맞서다 사망한 운동권 학생의 가족들로 구성된 유가협 등 시민단체에서 아들의 한을 풀겠다면서 열심히 활동했다.

어머니는 “내가 군대에 보냈기 때문에 우리 우혁이가 그래 됐지요. 우혁인 내가 죽였습니다”라는 말을 평소 자주 했다고 한다.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자책감이 지나치게 심했던 것이다. 생전의 우혁도 군 입대를 종용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강제 징집되면 나는 죽어요”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어머니의 자책감이 오죽 컸을까.

아무튼 자식을 군대에서 잃은, 그것도 데모꾼 그만두게 하려고 등 떠미는 어미의 성화에 못 이겨 갔다는 어머님의 자책감과 고통은 군대에서 자식 잃은 어미의 그것보다 갑절은 더 컸다. 어머니는 결국 4년 뒤 한강물에 몸을 던져 아들 품으로 갔다.

세월 잘못 만나 이렇게?풍비박산이 난 가족들이 숱하게 많던?시대였다.?그러나 그렇게 치열하게 공동체의 민주주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던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 살아 있는 자들은 뚜렷하게 나아진 세상에서 살아간다.

김명운 민주열사 추모연대(www.yolsa.org) 의장은 “보통 사람이 죽어 3년 탈상을 마치면 산 자들은 죽은 자를 잊고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게 상식인데, 역사를 만들어 왔던 사람들은 다르다”면서 “자신의 안위만이 아닌 전체의 삶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똑같이 이 사회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동지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25년의 세월은 열사가 살았던 기간(21년)보다 4년이 더 긴 세월이었다”고 덧붙였다.

아빠를 따라 추모식에 참가한 천진난만한 어린이. 이 아이가 컸을 때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빠를 따라 나선 네살 정도 돼 보이는 딸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묘소 주변 들풀을 툭툭 뜯어 흩뿌리면서 연신 묘역 주변을 통통 뛰어다녔다. 추모객들은 모두 흐뭇하고 사랑스런 눈길로 아이, 우리의 미래를 어루만졌다.

고인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고 고(故) 박종철 열사와도 친분이 깊었던 김치하씨는 이날 추모식을 진행하면서 “우혁이의 묘는 당초 군에서 급하게 마련한 것으로, 다른 열사들처럼 민주열사묘역으로 이장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4년 6월16일 최우혁, 박성은, 이승삼씨 사망사건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따른 것으로 보고 의문사 ‘인정’ 결정을 내렸다. 의문사위는 “우혁씨의 경우 서울대 재학시절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고 군 입대 이후 따돌림과 상습 가혹행위 등으로 심리적 압박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지휘관의 예방조치 없이 분신해 숨졌다”고 밝혔다.

최우혁 열사가 간 지 꼭 4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강산(江山)은 두 번하고도 반(半)번 더 변했다.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쉽게 잊혀 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람도, 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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