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군의문사 최우혁 37주기 추모식…9월7일 모란공원

최우혁 37주기 추모식 안내

1987년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최우혁씨(서울대 서양사학과 재학 중 입대) 37주기 추모식이 2024년 9월7일(토) 오전 11시 30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최우혁열사묘지에서 열린다. 

주최측인 최우혁기념사업회는 “당일 오전 10시 1호선 동대문역 1번출구 동대문성곽공원(흥인지문공원) 앞에서 전세버스가 출발한다”고 말했다. 

문의 010-4554-3074. 

아래는 최우혁씨 관련 자료다. 

최우혁 30주기에 나온 공동추모집


그대 우리 가슴에 살아

어두웠던 시절 우리는
새벽하늘 닮은 희망을 품고 살았다
강제로 입혀진 퍼런 군복도, 시퍼런 죄수복도
우리의 푸르디 푸른 희망만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그때 너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거짓되이 살지 않겠다고 바로 잡겠다고
온 몸으로 부딪혔고 남김없이 불살랐다.

단단한 돌멩이에 깊이 새긴 글처럼
그대 우리 가슴에 살아
그 이름 떠올리면 가슴 후더워지기를
그리고 이 길 지나는 모든 이들이 오래 기억하기를
낡지 않은 열정으로 진실을 응시하는
너의 부릅뜬 눈과 식지 않는 분노를 달래주려 널 향해
강물되어 흘러간 네 어머니의 안타까운 눈물까지도

오래된 싸움

이것은 오래된 싸움이다
여기 아스팔트보다 뜨거운 어머니들의 붉은 가슴을 보아라
무딘 심장을 가쁘게 두드리는 아이들의 피맺힌 절규
저기 칼바람에 날리는 아버지들의 흰 머리를 보아라
날이 갈수록 환하게 빛나는 아이들의 순결한 뜻
불타는 한과 빛나는 유지가 심장과 머리로 부활했으니
미인도 영웅도 고개 숙여라
이것은 늙은 생명들의 가장 젊은 싸움이다
이것은 진실을 밝히는 싸움이다
부패의 패당은 두려워하라, 마땅히
추악한 현장을 덮으려는
아아, 부질없는 가면의 가엾은 운명
이것은 명예를 지키는 싸움이다
독재의 잔당은 비켜서라, 당연히
온순한 사람들 욕보이는
우우, 짓밟은 만큼 짓밟힐 가혹한 필연
빛을 위해, 빛과 함께, 빛을 향해 그들은 걷는다
그러니 어둠아 도망쳐라 어서 힘껏!
이것은 태곳적부터 너의 조상들이 언제나 패배해 온
바로 그 유명한 싸움이다

최우혁 묘소


최우혁 열사 약력

– 1966년 3월 서울에서 父 최봉규 母 강연임 슬하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
– 1984년 3월 서울대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입학
– 1984년 서울대내 ‘경제법학회’ 가입
– 1984~1986년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서서 전방입소 거부투쟁등 각종 시위와 집회에 참석
– 1986년 5.3 인천시위, 5월17일 ‘헌제의회’ 소집요구 투쟁 참가
– 1986년 5월 20일 서울대 민족해방제 기간 중 이동수 열사 분신 목격 후 학내진입한
경찰에 맞서다 전치 10주 부상
– 1986년 하반기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현장활동 시도 등 노동현장으로 이전 준비
– 1987년 4월 28일 학생운동에 참가하다 구류를 살고 부상까지 당하는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의 간청에 의해 군입대(육군 20사단)
– 군입대 후 대학재학 시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인하여 보안대 등에 의해 관찰대상으로 지목, 지속적인 관찰과 면담을 받음
– 보안대 관찰사실을 안 부대원으로부터 차별대우를 받고 유격훈련 중 심한 구타로
부상을 입음
– 1987년 9월 8일 민주화 활동에 대한 보안부대의 관찰, 공작 및 부대 내 구타 등으로
분신을 통하여 자신의 몸을 산화한 것으로 잠정결론. 하지만 그 죽음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아 추가 진상 규명 중

어느해 최우혁 추모식에서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추모기념사업 경과

– 단순한 개인적 고민에 의한 분신자살로 규정지은 군수사기관의 발표에 대해 그 죽음이 민주화운동에 치열하게 투신하며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던 대한민국의 한 젊은이가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내에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려는 군내부기관(보안대 등)의 직접적이고 조직적인 공작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확신으로 대학 동료들은 제대한 군동료들과 관계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만남과 조사를 시도하였으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등으로 의혹해소를 위한 결정적 증언 확보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 이후 군수사기관, 국방부, 국회, 대통령 등 관련기관에 지속적인 진상규명 요청을 하면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유가족대책위원회’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등과 연대하여 암울한 억압의 시대에 희생된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제도적장치를 위한 법제정 투쟁 및 올바른 법시행을 위한 지속적 활동을 전개
– 2004년 6월 14일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당초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1기 위원회의 결론과는 달리 열사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보안대의 관찰, 공작 및 군내의 가혹행위 등으로 최후의 항거수단인 분신을 통하여 자신의 몸을 산화하였으며, 향후 열사를 둘러싼 보안부대의 구체적 공작내용을 조사하여 열사의 죽음에 대한 보다 명확한 진상을 규명하고, 열사의 죽음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를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으며
– 2006년 7월 31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보상및 명예회복 결정을 받았음
– 2008년 2월 ‘명예회복심의위원회’의 열사의 민주화활동에 대한 공헌과 희생에 대해 열사의 모교인 서울대에 다른 6명의 열사와 함께 명예졸업장 수여 권고하였으나 제적되어 규정에 맞지않다는 어처구니 없는 형식논리로 수여 대상에서 제외
– 대학당국의 결정에 대해 열사추모단체(서양사 및 경제법학회동문회), 서양사학과 재직교수 등과 공동대응 끝에 학교측의 규정개정으로 2008년 8월27일 졸업장 수여
– 2009년 11월17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4.19혁명부터 유신 반독재투쟁, 6.10항쟁까지 서울대 출신 ‘민주열사’들의 추모 조형물을 돌아보면서 민주화운동의 전통과 의미를 되짚어 볼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 민주화의 길’을 엶
– 2013년 9월 서울대 내 민주화의 길에 자리잡은 추모수 앞에 열사의 뜻을 알리고 추모하는 추모비 건립 (서울대 내 5동에서 중앙도서관 가는 길 좌측)
– 2014년 8월30일, 열사를 추모하는 뜻을 모아 최우혁 열사를 1987년 군부대에 의해
매장되었던 양주 운경공원에서 27년만에 어머니(본인의 강권으로 자식을 군입대시켜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다고 고통스러워 하시다 안타깝게 한강에 투신)와 많은 민족민주열사들이 모여 계신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함
– 2016년 2월 10일,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하여 29년의 세월을 의문사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자식이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열렬히 활동하던 부친 최봉규 아버님 영면, 모란공원에 안장.
– 2017년 9월 1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짧은 삶을 아낌없이 불태웠던 열사의 삶과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동지들의 추억과 , 그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안타까이 죽어간 아들을 찾아 한강에 투신한 어머니의 눈물과 또한 아들의 꿈과 아내가 못다 찾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긴 세월을 민주운동가로 활동하신 최봉규 아버님의 삶과 투쟁을 <최우혁-최봉규 공동추모집>으로 발간
– 2018년 7월 국방부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 군의문사로 순직 결정 받음

1987년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최우혁씨(사망 당시 21세)의 부친 고 최봉규씨가 2012년 9월 2일 경기도 양주 소재 운봉 공원묘지에서 열린 25주기 추모식에서 소주를 들이키고 있다.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및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지난 30년간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다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최봉규)를 대신하여, 2018 년 이후 큰형(최종순)이 유가협과 유가협 내 의문사 지회 활동을 이어받아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대책위원회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 중임
-아래 내용은 최우혁 큰형 최종순이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자료와 그간의 자료 1만여쪽 이상을 재검토하면서 열사의 죽음의 실체(프락치활동 강요로 추정되는 압박 등)에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를 확보한 내용을 정리한 것임
– 보안대 관찰대상 여부
*신병훈련소부대장 면담사실 증언 확인
*사망사건 이후 20사단 60여단 보안반은 관찰대상자가 아닌 것으로 입을 맞췄으나 2** 보안부대장(이**)은 보안사지시에 따라 60여단에 관찰지시 진술, 전입시 중대장(원**)은 보안반장(이**)으로부터 관찰대상자임을 통보받은 사실 진술.
– 사망사건 보고 보안계에서 했다 주장(사단 보안계장 이** , 일반사병 사망사고로 위장 의도)
– 정보과 보안문서 분실건 : 장례 후 지휘관 문서분실 사실 언급. 문서정서작업 지시 허위. 그간 세절기 확인하고 문제 없는 것으로 처리하던게 관행, 분실 다음날 아침 보안반 들이닥쳐 문제 삼아 정보과 소환조사(인접부대 사례, 2박3일, 가혹행위)하고 최우혁 책임자로 몰았다는 진술 있어 보안사고 조사보고서 청구했으나 부존재 통보.
– 손목 자해상처 발생일 조작 의혹:사망전날 점호 전 화장실 시도, 점호 후 의무대 치료-> 사망사고전 낮에 손목상처 보았다는 수송부 동기 뒤늦게 진술
– 정보과 배치 이후 사고 전까지 보안대 출입 수회 목격.
– 보안대 사찰 및 공작관련 자료 확보 : 검색어에 의한 자료 확보에 진전이 없음. 검색할 수 있는 비밀등급에 한계 있다고 의혹(의문사 자료) 최우혁과 보직을 맞바꾸고 정보과로 이동 1주 후 사망사고 발생, 후송 갔다가 의가사 제대한 동료사병(김**) 진술거부하여 설득 중.


추모연대 의문사진상규명 활동

가. 2기 진실화해위원회 현황
-임기(24.5월) 의문사 조사 미개시 3건
-진화위 임무 반하는 행태(위원장 등)
-위원회 운영연장 결정권 없음

나.진실화해위원회 분기간담회(8/17)
-상임위원 주관
-2023년 4월 간담회 이후 사건별 조사진척 사항 설명하는 자리,, 자료확보뿐 아니라 조사에 진척없어 사전회의를 통한 청문회 개최 요구 등 문서전달하고 문서 회신 요구
-청문회는 진화위법에 명시된 조사 권한 활용 의지 미약. 사건 관련자 특정, 조작의혹 많은 사건 중심으로 적극적 추진 요구

다. 의문사 진상규명 촉구활동
-경찰청 정보공개 요구 1인시위
-진화위 앞 1인시위 : 9/4 시작(요일별)

라.군의문사 대책위 활동
-사건 분석 및 정보공개 투쟁
진화위 사건 조사 및 자료 확보에 진전 없어 유족과 강집 피해자 도움으로 의문사위원회 자료분석, 진화위 조사반영 요구
-김용권 : 군사망사고위원회 조사결과(추**상사 개인의 일탈행위로 인한 사망사고)에서 보안대의 지속적, 조직적 폭력을 동반한 조사를 벌였다고 소위원회에서 결정.

※ 최우혁열사의 형 최종순은 ‘유가협’ 의문사지회장과 ‘군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 대표를 겸직하면서 열사의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활동 지속 중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사건 민사소송
-21. 6.24 민사소송 제기
-23. 4.13 1심 승소(서울중앙지법 민사부)
-23. 5. 1 법무부 항소(군인 이중배상금지, 소멸시효 )
-23. 8. 23 항소심(서울고법)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23. 9. 20 항소심 패소, 위헌법률 심판제청 기각
-23.10. 16 대법원 항고, 헌법 소원 제기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대한 법률안) 제정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이루기위해 자신의 한 몸을 바쳐 싸우고 희생한 민주열사들을 국가유공자로 제대로 예우하자는 법안으로 유가협어른들과 민주유공자법 제정 추진단을 포함한 관계자들의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법안 제정 활동

가. 2021년 6월10일 국회앞 피켓시위 개시
나. 2021년 10월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천막농성 시작
다. 2021년 6월10일 법안제정촉구 유가협 회원 삭발
라. 2023년 4월11일 법안제정촉구 단식농성 돌입
마. 2024년 5월29일 21대 국회통과된 ‘민주유공자법’ 대통령 거부권행사로 폐기, 22대 제정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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