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추어리] 이종항 전 국민대 총장 ‘99·88·1·2~3·4’ 몸소 실천···대학교육 행정 큰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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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 박사] 간산(干山) 이종항(李鍾恒) 국민대 명예교수가 1월 19일 98세(1919년 1월 2일 生)를 일기로 별세했다. 요즘 유행하는 ‘99·88·1·2-3·4’를 몸소 실천했다. 즉 99세까지 팔팔(88)하게 일(1) 또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살다가, 노환으로 2-3일 정도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사랑하는 자손들을 모두 만나고 유언도 남긴 후 죽음(4)을 맞이하는 ‘행복한 일생’을 ‘99·88·1·2-3·4’라고 한다.

%ec%9e%a5%ec%9d%b8-1이종항 교수는 평소 정식(正食), 정동(正動), 정면(正眠), 정심(正心) 등 건강관리를 생활화하면서 살았다. 매일 세끼 식사를 맛있게 하고, 하루 30분 이상 운동(최근엔 실내에서 자전거 타기)을 했으며, 저녁 일찍 취침하여 숙면을 취했고, 자손들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돈독히 했다. 특히 매일 신문을 읽고, 취침 전에 일기를 기록했기 때문에 치매 증상은 전혀 없었다. 또한 유언장도 자손들에게 남겼다.

금년 1월 1일 세배를 드릴 때 자손(3남2녀, 그리고 손주, 증손주 등 4대 가족)들에게 덕담을 해주셨다. 그리고 가족과 친척 50여명이 1월 21일 점심에 ‘백수(白壽)잔치’를 하기로 결정하고 식당도 예약을 했다. 백수연(白壽宴)이란 100세에서 1살 모자라는 99세(한국 나이)에 베푸는 잔치를 말한다. 그러나 1월 6일 감기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1주일치 약을 받고, 13일 폐렴 증상이 나타나 입원 중 폐렴이 악화로 1월 19일 별세했다. 이에 백수잔치 날이 장례식 날이 됐다. 우리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과 교육행정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인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1월 2일 울릉도에서 출생했다. 부친(李容奎)이 어업조합 이사로 근무하여 1926년 장기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1931년 대구수창공립보통학교에 전학하여 33년에 졸업했다.

%ec%9e%a5%ec%9d%b8-21938년 3월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 졸업 후 그해 4월에 만주 건국대학 제1기로 입학하였다. 당시 대학 정원 150명 중 일본인과 중국인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조선인(한국인)은 10명만 선발했다고 한다. 1943년 6월 만주건국대학 정치학과, 같은 해 10월 만주대동학원을 각각 졸업했다. 졸업 후 만주 흥농합작사(興農合作社) 중앙회에 입사해 기획부에 근무했다.

1945년 8·15해방 후 1946년 2월부터 <동북한보사>(東北韓報社)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일본인의 귀국이 거의 마무리된 다음 미국 맥아더 장군의 주선으로 한국인 귀국을 위한 4만톤급 선박편이 마련되어 동포 6000~7000명과 함께 1946년 12월 15일 만주 심양(봉천)을 출발하여 호로도(葫蘆島)를 거쳐 1947년 1월 4일 인천에 도착해 기차로 대구로 이동했다.

1947년 5월, 28세에 국립대구사범대학 전임강사로 임용되었으며, 48년 4월 교학과장을 역임했다. 1951년 대구사범대학이 국립경북대학교로 개편되어 사범대학과 법정대학 교수로 재임했으며, 교학처장(1956-1960)을 역임했다. 미 국무성 초청으로 1960년 5-9월 미국과 유럽 대학들을 시찰했으며, 1964년 2월 경북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50704_1900001964년 2월부터 68년 4월까지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국립도서관장, 장학실장, 시청각교육원장 등을 역임한 후 1968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여 설립된 국민대학 제7대 학장(현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학장 재임 시 학교 캠퍼스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현재 소재지인 정릉으로 이전하는 데 기여했다. 1984년 2월 정년퇴임한 후에도 5년 동안 강의를 계속했으며, 그 후에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총 37년 동안 대학교수 및 대한민국 정부 교육분야 고위직에 봉직하면서 후학 양성과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주요 저서에는 <정치학>(1954, 문성당), <한국정치사>(1962, 박영사), <정치학개론>(1965, 진명문화사), 그리고 고대 가야족이 세운 구주(九州)왕조 등 다수가 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이종항 교수는 1월 19일(목) 오전 8시 35분 노환으로 별세했으며, 21일(토) 오전 7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하여 오전 9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한 후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마석)내 가족묘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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