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순 사위의 아낌없는 장인 사랑···”백수연(白壽宴)이 장례식 될 줄이야”

20150704_190000[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명절 설날(Lunar New Year’s Day)에 즈음하여 우리 집안의 큰 어른이신 빙부(聘父)께서 별세하셨기에 집안이 휑하니 빈 것 같다. 필자가 1970년 가을 결혼하기 전인 1967년 선친(고 박의원 대구전매서장)께서 별세하셨기에 장인은 필자의 멘토(mentor)였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근무(1965-1989) 당시 뉴욕 본부와 방콕 지역사무처 대표들이 서울에 출장 오면 장위동 소재 자택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대접하면서 외국인들과 환담을 나누곤 하셨다.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인류 역사 시작 이래 인간의 최대 욕망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인간은 ‘웰빙(well-being)’을 추구하고, ‘웰다잉(well-dying)’을 소망한다.

건강하다는 것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 사고방식도 적극적이어야 하고 삶의 의욕도 높아야 한다. 1946년 7월 22일 61개국 대표가 서명한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은 그 서문에서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조화된 관계, 안전을 기본으로 9개의 원칙을 제시했다.

첫번째 원칙은 “건강은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안녕의 상태를 말하며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이다.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f infirmity.

요즘 ‘99·88·1·2-3·4’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즉, 99세까지 팔팔(88)하게 일(1) 또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살다가, 노환으로 2-3일 정도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사랑하는 자손들을 모두 만나고 또한 유언도 남긴 후 죽음(4)을 맞이하는 행복한 일생을 말한다.

지난 1월 19일 향년 98세(1919년 1월 2일 生)를 일기로 별세하신 故 간산(干山) 이종항(李鍾恒) 국민대 명예교수는 ‘99·88·1·2-3·4’를 몸소 실천했다. 필자는 1970년 가을 결혼 후 장인(丈人)이신 이종항 박사(법학)의 평소 생활을 관찰했다. 그 결과 보건 분야 전문가로서 장수의 비결을 정식(正食), 정동(正動), 정면(正眠), 정심(正心) 등의 생활화를 꼽고 있다.

즉, 매일 세끼 식사를 맛있게 하고, 하루 30분 이상 운동(겨울철에는 실내에서 자전거 타기)을 했다. 저녁 식사 후 일찍 취침하여 숙면(熟眠)을 취했고, 자손들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항상 긍정적 사고를 가졌다. 특히 매일 신문을 정독하면서, 취침 전에 반드시 일기를 기록했다.

이에 우리나라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치매(癡?)와 뇌졸중(腦卒中, 中風) 증상은 전혀 없었다. 또한 유언장도 유가족에게 남겨, 유산 분할도 명확하게 제시했다.

장모(丈母)님이 2011년 2월16일에 별세하였기에 장인께선 6년 정도 입주(入住)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우리 집과는 같은 아파트단지에 있기에 집안의 장녀인 아내(李幸子 前 고려대 교수)가 매일 문안을 드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우리 집 식구들이 장인을 모시고 서울시내와 일산 지역 ‘맛집’을 순회했다. 일요일에는 처남과 처제 등 가족이 방문했다.

‘가족의 힘’이 장인께서 장수하는데 큰 힘이 됐다. 4대(代)가족은 3男2女·자부와 사위 10명, 손주·손부·손서 14명, 증손(曾孫) 4명 등이다.

고인은 대학(국립대구사범대학, 국립경북대학교, 국민대학) 교수로 33년(1947-1964, 1968-1984)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고,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4년(1964년 2월-1968년 4월) 동안 고등교육국장, 국립도서관장, 국립중앙시청각교육원장, 장학실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장인은 매달 약 386만원 연금을 수령하여 생활을 했다. 필자는 지난 1995년 국제연합(United Nations Joint Staff Pension Fund)으로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하여 매월 20만원씩 장인·장모님께 용돈으로 드렸으며, 올해 1월까지 22년 동안 이어왔기에 총액은 5천만원이 넘는다. 장인·장모는 사위의 용돈을 고맙게 생각했으며, 또한 사위가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통해 回甲, 古稀, 八旬에 1억원씩 총 3억원을 사회 환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필자의 처가는 양력 설날에 차례를 모시고 있다. 올해 1월 1일에도 식구들이 다 모여 장인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었다. 장인께서 금년이 99세(우리나라 나이)이시어 백수(白壽)잔치를 1월 21일 토요일 12시에 열기로 결정했으며, 중국음식을 좋아하시어 연희동 소재 ‘T-園’에 50명을 예약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월 21일에 장인의 장례식을 거행했다.

우리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인 것을 실감했다. 백수연(白壽宴)이 장례일(葬禮日)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장인께서는 백수연을 하늘나라에 먼저 가 계시는 장모님을 만나서 하실 계획이었는지? 건강하시던 장인께서 1월 6일 감기 증세가 있어 병원에서 감기약 1주일분을 처방받아 복용했으며, 13일에는 검사결과 폐렴 증상이 나타나 입원해서 치료하기로 했다. 입원 후 폐렴이 악화되어 1월 19일 오전 8시 35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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