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추어리] 1997외환위기 극복, 췌장암으로 별세 강봉균 전 장관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한국경제의 거목, 강봉균(康奉均, 1943년 生)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1월 31일 향년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강 전 장관은 2014년 췌장암(膵臟癌) 수술을 받은 이후 차도를 보였으나,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민을 편하고 행복하게 하는 게 바로 ‘경제’”라고 강조했다.
강봉균 박사(경제학, 한양대)는 군산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서울대 상대에 늦깎이로 입학한 후 행정고시 합격을 통해 관가에 발을 디뎠다. 경제기획원 차관보, 노동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등 요직에 중용됐다.
2002년 8월 1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고향인 군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금배지를 달았고, 이어 17, 18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강봉균 장관은 김대중(金大中, 1924-2009) 정부 시절 ‘정책 브레인’으로 통했던 경제관료로, 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경제가 몸살을 앓던 1999년 재경부 장관을 지내며 위기 극복을 이끈 경제사령탑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고향인 군산대 석좌교수, 건전재정포럼 대표, 대한석유협회장 등을 맡으며 경제원로로 활동해왔다.
강 전 장관이 공식 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난해 11월 30일 한국개발연구원(Korea Development Institute, KDI)이 펴낸 <코리안 미러클 4: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 보고회였다. 편찬위원장을 맡아 집필에 심혈을 기울인 그는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며 발간보고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 책은 1997년 외환위기 전후의 어려움과 극복과정을 당시 경제수장들의 육성을 담은 기록물이다.
강 전 장관은 “외환위기는 단기적인 위기였지만 최근 우리나라 상황은 구조적인 데다 정치 문제와 섞여 있어 더 풀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각자가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필자는 고인이 경제기획원(Economy Planning Board, EPB) 경제기획국장 재임 시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가 경제기획국장 시절 만나 5개년 계획수립을 위한 사회보장부문계획위원회 위원으로 그가 주재하던 회의에 참석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한편 1961년에 설립된 경제기획원은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기획·총괄했다. 1962년부터 1981년까지 4차에 걸쳐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되었으며, 1982년부터는 그 명칭이 경제사회발전계획(經濟社會發展計劃)으로 바뀌어 실시되었다. 1982-1986년의 제5차, 1987-1991년의 제6차, 그리고 1992-1996년의 제7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주도한 경제개발로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