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지진 이경재씨 희생] 교민사회 단합과 재외공관의 책임감 회복에 밑거름 되소서

멕시코 강진으로 희생된 이경재씨 <사진=경상일보>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이경재씨. 멕시코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당신을 나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한국시간으로 어제 낮, 그러니까 그곳 한밤중에 붕괴된 콘크리트 더미 속에 당신이 묻혀 있다는 얘길 듣고서 당신을 처음 알게 됐지요. 그리고 6시간 뒤, 그러니까 당신이 견디기 어려운 무게와 어둠에 갇힌 지 10여 시간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울산에서 발행되는 <경상일보>에 당신에 관한 기사가 실렸더군요. 이국땅에서 열심히 살아온 41년 짧디 짧은 이생에서의 삶. 신문은 이렇게 당신을 소개했습니다.

“울산중앙중, 울산제일고, 울산대학교 서어서문학과(95학번, 현?스페인·중남미학과)를 졸업한 뒤 2002년 멕시코로?취업해 건너갔다. 원단 제조업체인?서영인터내셔널컴퍼니에서 일하던 그는 이날 출장을 떠난 사장을 대신해 업무에 전념하다 참변을 당했다.”

부인과 3살·5살 두자녀의 행복을 위해, 지진이 나던 그 시각에도 묵묵히 일에 전념하던 당신.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기까지 당신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대한민국~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한일월드컵의 뜨거운 함성이 진동하던 2002년, 스물여섯 청년은 멕시코로 이주합니다. 그후 15년, 결혼과 출산, 직장과 교민사회에서의 기쁨과 슬픔, 보람과 아쉬운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겠지요. 울산 앞바다와 고향집과 당신의 어머니도 떠올렸겠지요?

이경재씨. 나는 작년 여름 이후 멕시코를 자주자주 떠올리게 됐습니다. 인신매매범으로 몰려 산타마르타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한 여성 때문이었지요. 멕시코 당국이 그에게 가한 부당한 처사를 고발하고, 그가 속히 석방되길 바라서지요. 그 사건을 취재하면서 교민사회가 여러 갈래로 분열돼 있고, 심지어 심한 반목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지요. 또 대사관의 무관심과 무책임 역시 뿌리 깊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 당신의 별세 소식과 함께 내게 전해진 다음의 짧은 메시지는 희망을 가져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내게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다행인 줄 모릅니다.

“이경재씨의 매몰 소식을 듣고 대부분의 교인들이 현장을 지켰습니다. 일부 교민들은 현장에서 가족을 위로하며 집에서 어린 자녀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오늘 ‘가요소’ 당신의 장례식장엔 교민들이 찾아와 추모하며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더군요. 대사관 역시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고도 합니다.

너무 안타깝고 애통하기만 당신의 죽음이 교민사회를 하나로 만들고, 재외공관들이 그 중심역할을 하는 계기가 된다면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하고 위안을 삼습니다.

이경재씨!

못다 이룬 꿈, 당신의 소중한 가족들이 틀림없이 잘 이어가리라 믿습니다. 가시는 길, 주님이 동행하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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