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깨니 콘텐츠 선명하게 드러나···’동아일보’ 심규선 대기자의 특별한 수상소감
[아시아엔=편집국] 동아일보 심규선 대기자가 25일 서울대 출신 언론인 모임인 관악언론인회(회장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가 주관하고 서울대 총동창회(회장 서정화)가 후원하는 제13회 서울대언론인 대상을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엔 서정화 동창회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임광수 직전 동창회장, 안병훈 이형균 김인규 문창극 배인준 관악언론인회 전 회장, 정종욱 전 서울대 교수,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박남수 전 육사교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심 대기자는 오비추어리 형식으로 수상 소감을 써와 읽었다. <아시아엔>은 심규선 대기자의 수상 소감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대기자를 지낸 심규선 씨가 2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
고인은 현역으로 일할 때 두 가지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발행부수나 광고매출, 시청률 등 변명할 수 없는 수치로 평가를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글로써 평가를 받는 직업이라고, 그러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애써 자위를 했지만, 선후배, 동료들이 숫자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며 때로는 미안함을, 때로는 자괴감을 느꼈다.
또 하나는, 입으로는 미래와 비전을 말했지만, 미디어업계에 몰아닥친 급격한 변화를 예상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하는데 무기력했다는 사실이다. 변화는 늘 신문사 밖에서 시작됐다. 그는 신문기자로 30년 이상을 살아오며 과분한 대접을 받았지만, 꼭 필요한 시점에 꼭 필요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그는 대기자라는 직책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러워했다. 그가 “대기자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잘못한 일이 많아 발령을 기다리는 ‘발령 대기자’”라고 농담을 한 것도 어쩌면 그런 심리의 소산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기자 말년에 그런 부담감을 덜 수 있는 행운을 만났다. 서울대 언론인 대상을 받은 일이다. 그는 유독 ‘대상’이라는 말에 끌렸다고 한다. 대상을 받았으니 대기자의 중압감이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고인은 2016년 2월 25일 저녁,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관악언론인회 관계자와 시상식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상을 받으면 흔히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겠다고 하지만, 저는 미래를 위한 격려라기보다, 부족하고 아쉬운 점까지를 포함해, 언론인으로서 걸어온 과거에 대한 애정 어린 인증으로 이해합니다. 모교가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평소 후배들에게 “언론은 어떤 압력과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영구히 이어져야 할 곧은 선이며, 언론인은 그 선을 구성하는 점이다. 점이 없으면 선은 존재할 수 없으며 선의 굵기는 점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언론인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자신만의 점을 찍고 키우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고인은 서울대 언론인 대상을 내심, 자신도 부족하나마 한개의 점을 찍었다는 표시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추정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방에 자주 드나들던 후배들이 서울대 언론인 대상 상패를 회사로부터 받은 30년 근속 기념패 옆에 나란히 세워두고 있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