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추어리] 별세 2년만에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책 낸 한겨레 구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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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글 이상기 기자 사진 변순철 사진작가] 2014년 11월 13일치 <한겨레>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12일 오후 멀리 이탈리아에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하는 ‘건축문화재 보존과 복원 과정’이라는 단기 교육과정에 참여해 마지막 이탈리아 현지 취재 일정을 거의 마친 참이었다. 일행과 밤까지 어울리고 호텔 방으로 돌아간 그는 아침이 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현지 의사는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는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애도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의 생전 관심의 폭 만큼이나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각계각층이다. 만화가 강풀씨는 “한겨레 구본준 기자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하시기를”이라는 글로 그를 추도했다. 육아 멘토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서천석씨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뒤늦게 만난 벗, 한겨레신문 구본준 기자의 명복을 빕니다. 삶이 뭔지 알고 있던 사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 따뜻한 자유주의자. 얼마 전에도 웃으며 통화했던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라며 고인을 기억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건축을 사랑했던 사람. 그래서 동네 건축가를 꿈 꿨던 사람. 시사회에서 만나면 어깨를 으쓱하던. 정말일까. 그와 함께 일했던 전·현직 한겨레 기자들은 얼마나 상심이 클까.. 구본준 기자의 죽음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며 안타까워 했다.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 오영욱씨도 “구본준 기자님 소식을 이제 접했다. 베니스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가는 버스 안에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기자님은 한 달 반 전에 사무실에 오셔 나를 인터뷰 해주셨다. 무슨 질문을 들었는지 아득해진다”라며 그와의 마지막 만남을 기억했다. 영화배우 김의성씨는 “구본준 기자가 돌아가시다니…충격이 크다”는 글을 남겼다.

지금은 한국은행을 출입하며 금융관련 기사를 쓰는 유선희 기자가 쓴 것이다.

당시 46살을 일기로 별세한 구본준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blog.hani.co.kr/bonbon)나 책의 자기소개란에 늘 이 말을 적었다. “시험에 안 나오는 것들에 관심이 많은 기자 구본준입니다.”

유선희 기자는 같은 기사에서 “때론 전문성 있게, 때로는 가볍고 재미있게 적어 올리는 그의 블로그와 트위터는 늘 많은 친구와 이웃들로 북적였다. 신문기자로서는 드물게 독자와 전문가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기자였다”고 썼다.

구본준 기자가 별세한 지 2년 만에 그의 새 책이 나왔다.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큰 집>. 그의 마지막 출장 직전, 정리하던 원고를 정리해 둔 것이 2년간 잠들어 있다 나온 것이다. 그의 <마음을 품은 집> 이후 3년 만이다. <마음을 품은 집>이 건물에 담긴 애틋한 사연, 그 건물을 지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은 상징성 강한 대형 공공건축물을 담았다.

종묘와 경복궁, 파르테논, 바티칸, 자금성부터 우리 국회의사당과 독립기념관까지, 흔히 ‘랜드마크’라고 하는 거대한 건축물이 여럿 등장한다. 이 책은 그가 얼마나 심사숙고했을지, 몇몇 주제를 구성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얼마나 고개를 갸웃거렸을지, 외국 나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차곡차곡 모아둔 내용과 실물을 확인하느라 얼마나 발품을 팔았을지, 정리 끝에 덜어낸 소재들은 따로 무슨 계획을 했을지 엿보게 한다고 그의 동생으로 이 책의 구성과 편집을 맡은 구태은씨는 말한다. 구태은씨는 “정리벽 강하고 모아두기 선수인 저자가 원고는 거의 마무리해두었지만, 미처 마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며 “어떻게도 저자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더 남았는데 바로 ‘저자의 말’이었다”고 했다. 그 자리는 건축환경연구소 ‘광장’의 김원 대표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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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8일 2주기 추모의 밤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출간기념을 겸해 열렸다. 당시 참석한 이들의 구본준 기자에 대한 추억은 너무 아름답다. 그래서 더 슬프다.

“한 마디씩 유쾌한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작년처럼 눈물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분위기는 아니고. 그냥 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쩍 웃음을 나눴어요. 중간중간 흐르는 눈물이야 뭐ㅎㅎ”

“이름 한 글자 틀린 걸로 전화 주신 것에 당황도 했고 매우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이라 그분 성함의 앞 두 글자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건축 관련해서 서칭하다가 한겨레신문사의 구본준 기자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즐겨찾기에 추가도 해놓았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서 어디서 들어본 거지 한참 생각하다가 십여 년 전 통화했던 그분이라는 걸 기억해 냈습니다. 당시 초보 편집자를 감동시켰던 그분을 저는 아마 평생 기억할 거예요.”

“늘 긴박한 한겨레 글 속에서 고 구본준기자님의 글은 집처럼 편안했죠.”

“구 기자님이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읽는 동화책 쓰기가 소원이라고 말씀하시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이젠 바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 되었네요.”

“내가 건축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의 8할은 글쟁이 구본준 기자의 건축 관련 글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도무지 기자인지, 건축가인지, 글쟁이인지 판단이 안 되는 구 기자의 글이 사람을 참 잡아끌더만, 어느 날 그는 이국 먼 땅에서 고인이 되었다고 타전되어 왔다. 그날 내가 느낀 낭패감은 인생무상을 넘어서 뭐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있냐는 생각들. 여전히 건축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아는 것은 또 별스럽지 않게 거의 전무한 상태. 그래서 구본준의 글을 더 기다리고 있었던 터였는데, 이렇게 또 글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니 그저 반갑고 고마울 뿐. 공간의 의미는 생활의 한 축이고, 문화의 한 틀이고, 버팀과 기다림의 한 뼘이라 생각하기에 여전히 관심의 한 틈새에서 서성인다. 그게 우리들 살아온 날이고, 살아갈 날들이거든. 구본준 여전히 페친이고, 구정은 먼먼 페친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가슴 저릴 그들 남매에게 책의 출간을 건배합니다. 쓰고 나니 #구태은 님도 남매인 모양이다.”

필자가 <한겨레> 피플면 데스크를 맡고 있던 2006년 어느 날 그의 기사가 내 데스크톱에 떴다. 전자책 출판사 편집자를 인터뷰한 글인데, 첫 문장(리드)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었다. ‘1mm.’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리드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주저없이 구본준 기자의 그 기사를 그날 톱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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