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생각] 전승절 참석 박 대통령 귀국 후 전순옥 의원 재회를···’근로기준법 준수’서 ‘노동개혁’까지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오늘(9월3일)은 이소선 여사가 별세한지 4년째 되는 날이다. 이소선 여사는 당신 이름보다 ‘전태일 어머니’로 더 알려져 있다. 1970년 11월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분신자살한 아들 전태일을 가슴에 묻고 40년을 더 사시가 별세한 이소선 여사.
필자는 1989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와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이 함께 쓰고 있던 서울 종로구 창신동 허름한 사무실에서 몇 차례 이 여사를 뵈었다. 1987년 6월10일 연세대 교문 앞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학생의 배은심 어머니 등도 유가협 사무실에 함께 했던 기억이 새롭다.
민주주의와 노동의 새벽을 열기 위해 몸을 던진 자식을 가슴에 묻고 또다른 희생자들을 막기 위해 구속 학생과 노동자들을 면회 다니고, 그들 부모들을 위로하는 게 이소선 여사 등의 일상이었다. 이 여사를 가까이에서 또다시 뵌 것은 20년이 지난 2009년 8월12일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만해상 시상식에서였다. 이 여사는 이란의 인권운동가로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 변호사와 함께 그해 만해대상(실천부문)을 받았다.
만해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필자에게 당시 상을 주관하신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오현 스님(현 신흥사 조실스님)의 말씀이 또렷이 남아있다. “이소선 여사는 진작 받으셔야 할 분이었어. 만해 선사께서도 흐뭇하실 거요.” 2년 뒤 이맘때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이소선 여사 장례식장에서 뵐 때도 오현 스님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내 자식을 잃고 수많은 남의 자식을 살리신 분.”
필자는 이듬해 국회에 진출한 이소선 여사의 딸이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의원과 종종 얘기를 나눈다. 전순옥 의원이 1년여 전부터 小工人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관련 법 제정에 앞장서고 있어 기쁘다. “백범 할아버지 손자로 산다는 게 참 어렵다”는 김양 전 보훈처장의 말처럼 오빠 전태일만큼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다. 특히 전태일 후광으로 국회의원 하고 있는 거라는 등 따가운 눈총도 없지 않을 것이다.
전순옥 의원이 정부와 국민들 관심밖에 있는 소공인들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더욱이 내년 총선에서 대구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비례대표 1번을 받았으니, 당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도리”라고 그는 말한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대구에 출마하는 것은 낙선할 걸 뻔히 알면서도 나서는 일이다. 몸 바쳐 노동조건 개선에 큰 획을 그은 오빠 전태일의 뒤를 잇는 길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사지(死地)에 뛰어들어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겠다는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마석 모란공원에서 이소선 여사 4주기 추도식이 열리는 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베이징 천안문광장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8월25일 남북고위급 회담의 성공적 타결과 전승절 행사 참석으로 큰 외교성과를 거두고 있어 국민들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 퍽 다행스런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중국 방문때 부친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기 분신자살한 전태일의 동생 전순옥 의원과 동행했다.
전태일 분신 45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법과 내용은 일부 달라도 노동개혁은 한국경제의 앞날이 달린 중대한 문제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께 제안한다. 귀국 후 전순옥 의원을 다시 한번 만나시라. 구체적인 대안은 혹 못 찾더라도 두 분의 만남 자체가 세월호, 메르스 사태 등으로 갈라지고 지친 국민들 가슴을 신선하기 그지 없는 가을바람처럼 적셔줄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