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칼럼] 박근혜·반기문·푸틴·장쩌민·나자르바예프 참석 중국 전승절 예포 70발···’예포’는 해적선에서 처음 유래

[아시아엔=민병돈 <아시아엔> 대기자, 전 육사교장] 박근혜 대통령이 9월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라 중국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참관했다.

이 자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부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차히아진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 후진타오 전 중국주석, 장쩌민 전 중국주석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군 병력 1만2000여명과 군용기 200여대, 중거리 탄도미사일 등 각종 무기 500여기가 동원된 대규모 대열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식(式)의 시작과 함께 포성이 울렸다. 전승 70주년을 기념하는 공포탄 70발을 발사한 것이다. 이른바 예포다. 옛날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과학의 발달로 흑색화약(black powder)을 발명한 서양 사람들이 화약무기(총포)를 만들어 전투에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해적들도 이를 애용했다.

망망대해에서 상선(무역선)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던 해적들이 배에 식량이나 식수가 고갈되면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운 좋게 어떤 배든지 눈에 띄기만 하면 그 배에 신호를 보내 자신들의 절박한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렇게 해상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는 그 당시 항해중인 선원(船員)들 사이의 관행이었다.

이럴 때 서로 접근하는 두 배의 선원들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할 의사도 그럴 능력도 없음을 확실하게 알리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대포에 장전된 포탄을 발사해 버린다. 그 당시의 원시적인 포구장전식(砲口裝塡式) 포는 한번 발사하고 나면 뜨거워진 포신을 식혀야 다시 발사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 사람의 포수들이 분주하게 작업해야 했다.

즉 포수들은 물통을 들고 와서 포구에 찬 물을 부었다가 그 물을 쏟아 버리고 또 다시 새 물을 부은 후 쏟는 일을 반복하여 포신을 완전히 식힌 다음 포구에 봉걸레를 쑤셔 넣어 물기를 닦아낸다. 이렇게 해서 습기가 없고 완전히 식은 포구에 화약을 쏟아 붓고 봉으로 포신 속으로 화약을 다져 넣은 다음 비로소 포탄을 포구를 통해 밀어 넣아애 헸다. 이렇게 재장전이 끝나야 비로소 다시 사격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한번 발사한 포를 재사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데는 숙달된 포수의 경우에도 30분 이상 소요되었다. 그러므로 해상에서 해적선들 사이의 물물교환에 앞서, 서로 상대방에게 적의(敵意)가 없음을 알려주는 방편으로 쓰였던 포 발사가 점차 항해중의 선박들 사이의 우호 및 친선의 표현 내지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항해시대 유럽의 해양국가들은 해적도 장려하며 해적면허증도 주곤 했다. 해적들은 약탈한 금은보화를 국왕에게 바쳤다. 그들은 호경기 때는 무역상으로, 불경기에는 해적으로 활동하고 또 전시에는 해군으로 잘 싸워 주었다. 그들 중 발군의 공로자는 귀족으로 신분상승도 가능했다. 16세기 영국의 유명한 해적 드레이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가 드레이크 경(Sir Drake)으로 불린 이유다.

이처럼 서양해적들의 관행에서 비롯된 포의 발사가 서양 해양국가들의 의전(儀典)으로 발전한 것을 후진국들이 모방한 것이 오늘날 공식 의전의 일부로 정착한 것이다. 베이징에서의 예포발사도 서양의전의 중국식 모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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