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칼럼] 군인결혼식 ‘예도 의식’, 무분별한 서양풍속 흉내내기

[아시아엔=민병돈 아시아엔 대기자, 전 육사 교장]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결혼식은 흔히 봄과 가을에 거행되었다. 추위에 움츠렸던 겨울을 지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오곡백과를 거두어 들이는, 풍요로운 가을에 거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풍속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 우리의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결혼예식만 보아도 그렇다. 예전에는 식이 시작되면 신랑이 하객들 앞에 멋쩍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하던 어색한 모습과, 수줍어 고개도 잘 들지 못하던 신부의 모습은 볼 수 없고, 기뻐서 싱글벙글하는 신랑과, 행복에 겨운 미소를 감추려 하지 않는 신부의 당당한 모습을 본다. 하객들 또한 신랑신부에게 축하하며 덕담을 해 주는데 망설임이 없다. 이런 모습들은 전통혼례의식에서 현대적 결혼예식으로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에 따른 진화라고는 해도,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도 눈에 띄곤 한다. 그 한 예가 군의 현역장교나 예비역 장교들의 결혼식에서 간혹 보게 되는 ‘예도’(禮刀) 등장이다. 신랑신부의 하객을 향한 감사의 예가 끝난 후, 사회자의 ‘예도 입장!’이라는 구령에 따라 10여명의 제복 입은 젊은이들이 긴 칼을 차고 씩씩하게 얼어 들어와서 2열 횡대로 마주보고 도열한다.

‘교차 칼!’이라는 구령에 따라 칼을 뽑아 든 오른손을 정면 45도로 들어올려, 서로 칼끝이 마주 닿게 하여 아치(arch)를 이룬다. 식이 끝나고 사회자의 ‘신랑신부 행진!’이라는 구령이 떨어지면, 이 한 쌍은 다정하게 서로 팔을 끼고 싱글벙글하며 칼날로 만들어진 아치 속을 (겁도 없이) 하객들의 박수 속에, 결혼행진곡에 발 맞추어 걸어나간다.

이런 장면을 보면 ‘이런 것도 진화인가?’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비록 그 칼들이 (실전용이 아닌) 예도라고는 하나 옛날의 실전용 군도(軍刀)와 똑 같은 모양의 칼이다. 그리고 우리의 풍속에 결혼식 같은 경사스러운 행사나, 절 또는 교회(성당) 같은 종교시설에는 칼을 차고 들어가지 않는 것이 상례(常例)이다.

결혼식장에서 칼을 찬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서양의 고대나 중세 암흑시대(dark age) 약탈혼이 성행했을 때에나 있었던 일이다. 다른 동네 여자들을 빼앗아 와서 결혼할 때, 빼앗긴 여자들을 찾아가려고 쳐들어오는 그 동네 성난 남정네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신랑의 친구들이 칼을 들고 결혼식장을 지켜준 일들에서 비롯된 풍속인데, 현대에 와서는 서양에서도 군대의 간부 결혼식 때에나 간혹 볼 수 있는 ‘예도 행사’일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연원도 모르고 서양사람들의 풍속을 무분별하게 흉내 내는 것은 바람직한 모방도, 건강한 진화도 아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문화 민족답게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과 자랑스런 전통을 시대에 어울리게 발전시키고 여기에 다른 문화의 좋은 점들을 접목하여 조화를 이루어간다면 우리의 문화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편협한 민족주의나 터무니없는 문화우월주의는 진화를 왜곡하는 독이 될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강한 사람, 자신감 넘치는 사람은 가슴을 열고 산다. 우리의 대문을 활짝 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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