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칼럼] 여든살 노병이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이유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한반도 <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엔=민병돈 전 육사교장] 산천초목의 푸르름도 날로 더해간다. 사람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경치를 즐긴다. 그 경치 속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네 글자 ‘유비무환'(有備無患)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반 세기 전에 흰 돌 조각들을 깔아 만든 후 요즈음은 손봐주지 않아 부분적으로는 수풀에 가려지기도 하고 혹 산 꼭대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살짝 덮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원래의 모습은 남아있다. 이를 보는 노인들 머리 속에는 아직도 그 당시의 구호가 떠오른다. “싸우면서 건설한다!”

그 때 젊은이들은 향토예비군이나 직장예비군에 편성되어 북이 남파한 무장공비(게릴라)를 경계하고 싸우면서 배고픔을 참아가며 참 열심히 일했다. 사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찬탄하는 ‘한강의 기적’은 기적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인 것이다. ‘경제대국 대한민국’,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의 안보환경이 그 때와 마찬가지로 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더욱 극렬하게 말이다. 그 당시(1960년대)는 북한의 국력이 대한민국의 국력보다 훨씬 우세했다. 이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공업지대인 북부의 경제력이 농업지대인 남부의 경제력보다 훨씬 우세했던 데 기인한다.

그러나 지금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의 국력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막강하다. 지난 날 원조를 받아먹고 연명하던 나라에서 오히려 가난한 나라들을 원조해 주는 부자나라다. ‘공업입국’을 기치로 내걸고 열심히 일해 세계에 우뚝 솟은 산업국가가 되어 있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고 있는 북한이다.

배고픈 북한은 시기심이 극에 달해있다. 지난날 저들의 후견국이며 동맹국인 러시아(소련)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우리 대한민국과 국교를 맺고 친구가 되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질투심이 끓어올라 이성을 잃고 있다. 요즈음 계속되고 있는 동?서 해상에서의 북한의 무력도발과 입에 담기도 민망한 저질 욕설을 퍼붓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이성을 잃은 북의 권력자들은 혹심한 배고픔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불쌍한 인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온 세계 사람들의 우려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있다. 그들은 그 대신 그 비싼 핵무기, 화학 및 생물학 무기, 유도무기와 잠수함의 개발과 비축에 국력을 소진하고 있다. 이것이 저들 내부의 암으로 성장하여 머지않아 스스로 사망에 이르게 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성이 마비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내부로 시선을 돌려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부하고 세계 사람들이 찬탄하는 우리의 막강한 경제력도 튼튼한 안보의 뒷받침이 있을 때 비로소 이를 유지하고 누릴 수 있음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이는 인류역사의 교훈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안보의 토대는 국민의 신뢰다. 국민의 신뢰없이는 안보도 국가도 유지되지 않는다(無信不立). 이 또한 역사의 교훈이다.

여기에 지도자들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공직윤리에 투철하며 책임감이 왕성하고 유능한 지도자들을 보면서 국민이 지도자를 신뢰하고 그 나라를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인식할 때 비로소 국가안보의 토대가 마련된다.

이렇게만 된다면 요즈음 북한 김정은의 불장난쯤은 겁낼 것도 없다. 믿을 수 있는 사회,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를 만들자. 말보다 행동으로. 이것이 바로 국가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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