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칼럼] ‘징비록’ 유성룡의 통곡 “이순신 앞뒤엔 온통 적들뿐이었다”

[아시아엔=민병돈 전 육사교장] 1592년 4월13일 왜가 조선을 침공하여 일사천리로 북상하자, 무능한 국왕 선조는 난리가 난지 불과 20일 만에 도성을 버리고, 백성의 욕설과 돌팔매를 뒤로한 채 비를 맞으며 평양을 향해 몽진 길에 올랐다. 분노한 백성들은 궁궐에 몰려가 식량과 재물을 약탈하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 제 나라에 쳐들어온 적과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달아나기나 하는 관군을 보는 백성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제각기 살길을 찾아 헤맸다. 조선왕국이 건국 200년 만에 망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영웅?앞뒤엔 적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남쪽지방에서부터 승전보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조선 수군의 연전연승 소식은 왜적이 천하무적 강군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백성들은 위무받고 사기를 되찾아 갔다. 기세등등하던 왜병들은 조선 수군이 그들의 해상 병참선을 차단하여 식량과 총포, 탄약 등의 보급이 불가능해지면서 배고픈 떼 거지가 되어 조선 의병의 공격을 받고 곤경에 빠졌다. 사기는 떨어지고 도망병과 투항자가 속출했다.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은 왜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의 승패를 역전시켰고, 조선에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영웅은 앞뒤에 적이 있었다. 앞에는 왜적, 뒤에는 국왕 선조(宣祖)였다. 이 못난 국왕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영웅이 죽여 없애고 싶도록 미웠다. 그러나 우리의 영웅은 아슬아슬하게 국왕의 칼날에서 벗어나 전장에서 나라와 국왕을 구하고 ‘적의 적’으로 생을 마쳤다. 적탄에 맞아 죽는 순간에 남긴 한 마디 말도 “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 죽었다는 말, 하지 말아라!”였다.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영웅은 적에게서도 존경받고 있다. 수백년이 지났어도…. “이순신의 죽음은 넬슨의 죽음과도 같았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어서도 이겼다. 조선역(朝鮮役·임진왜란) 7년에 걸쳐 조선에 책사·변사·문사가 여럿 있었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참으로 이순신 한 사람으로 자랑 삼지 않을 수 없다. 이순신이 살아있는 동안 일본 수군 장수들은 뜻을 펴지 못했다. 그는 실로 조선역에서 조선의 영웅일 뿐 아니라 (동양)삼국을 통틀어 한 영웅이었다”(도쿠토미 이이치로, <근세일본국민사> 제9권). 20세기 초 일본 문필가의 격찬이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 연합함대와 일본제국의 운명을 건 일전을 치르려고 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휘하의 함대가 1905년 5월27일 오전 6시30분 진해만을 떠나 동해로 항진하는 동안 해군장교 중에는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이순신 장군에게 기도한 이도 있었다. 그 해전에서 러시아 함대를 크게 격파한 도고는 일본의 영웅이 되었다.

도고 사령관은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자신을 넬슨이나 이순신에 비유하자 “나를 넬슨에 비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순신에 비유하는 것은 과하다”며 겸양하는 태도를 보이곤 했다. 이순신은 그가 충성을 바친 국왕에게도 배척당했고, 목숨 바쳐 구한 조국의 후예들에게도 잊혀지고 있다. 이제 이순신에 관해서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지경에 있다.

하늘이시여, 470년 전 4월, 이 나라에 이순신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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