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칼럼] 자식사랑은 본능, 부모사랑은 학습
과장된 이야기 속 효 교육에 고심한 선인들의 흔적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병풍 그림들 중에 ‘효자도’가 있다. 그런데 그 효자도를 보면 예술성은 별로 없고 단지 효를 강조하고 교육하기 위해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필자가 어릴 적 많이 들은 ‘효자 이야기들’도, 예컨대 어느 가난한 효자가 자기 넓적다리 살을 도려내(割股, 할고) 불에 구워 부모님 진지상에 올렸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백범일지>를 보면 인내심이 대단한 김구 선생도 그의 부친 병구완하던 차에 자기 넓적다리 살을 식칼로 베어내려다가 너무 아파서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삼국유사> 제5권 9장 효선(孝善)에 나오는 ‘손순매아(孫順埋兒)’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다. 신라시대에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손순 부부는 홀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지장이 있다 하여 어린 자식을 뒷산에 묻으려 했다는 것이다. 모두 황당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 선인들은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어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그림으로도 남기고 책을 써놓았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자녀들이 효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녀들은 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가? 그것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효도하게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새끼를 사랑한다. 인간 역시 동물인 까닭에 부모를 사랑하기보다 선천적으로 자식을 더 사랑하게 돼 있다. 그러므로 자식의 효도를 바라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은 자식이 효도하도록 가르친다. 다시 말해 부모의 자식사랑은 본능이고, 자식의 부모사랑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다. 사랑은 아래로 또 그 아래로 내려가게 돼 있다. 이른바 ‘내리 사랑’이다.
세종이 ‘효자도’ 제작 지시한 사연
이성계 장군은 썩어빠진 불교국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는 불교를 배척해 조선을 유교국가로 만들었다. 그 이래로 조선 유교는 가르침의 해석과 실천이 지나치게 엄격해 가히 ‘유교 근본주의’라 할 만했다. 전제군주 통치 아래에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를 국왕에 대한 충성보다 우선시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렇게 됨에 따라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 모든 행동의 근원)’이라 해 경직되고 이데올로기화 하기에 이르렀다. 또 남의 시선을 의식한 과장되고 형식화한 효행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이런 세태 속에 천륜에 역행하는 패륜행위도 간혹 있었다. 한 예가 세종 10년(서기 1428년)의 살부(殺父)사건이다. 경상도 진주에 사는 김화(金禾)라는 자가 아비를 때려죽였다. 보고를 받은 세종임금은 경악했다. 그리고는 백성을 가르칠 책을 만들어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신하들이 책을 나눠줘도 글(한자)을 읽을 수 없어 소용없다고 아뢰자, 이에 세종은 그림을 그려서 나눠주라고 했다. 먼 남의 나라(중국) 효행사례 같은 것 말고 우리나라 이야기를 주제로 그리도록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이렇게 하여 나온 것이 조선시대 효자도다. 우리 선인들이 효 교육에 얼마나 고심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