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스승…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분”
스승의 날 맞아 AJA?내 마음의 스승 만들기’ 행사, 각계각층 스승 모셔
“언론은 엉터리다. 나 같은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장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진땀이 난다. 죽기 전에 가짜를 면하고 싶다.”
올해 79세 육사 15기 민병돈 예비역 중장의 얘기다. 전역 후 각계에서의 자리 요청도 모두 마다하고 연금으로만 생활해 온 강직한 군인이다. 민 장군은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이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 13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마련한 ‘내 마음의 스승 만들기’라는 주제의 행사에서 사회의 스승으로 모셔진 자신을 낮추고 또 낮췄다.
민 장군은 “내게는 살아 있는 스승이 두 분 계신다. 나는 기껏 그분들께 연하장을 보내고 1년에 한두 번 뵙고 식사하는 게 전부지만, 스승의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진짜 스승, 장군이 되는 것은 힘들다. 유사품이라도 되고 죽는 게 생애 최고 바람이다. 그래도 요즘은 가짜인 걸 알아서 진땀이라도 흘리는데 예전에는 뻔뻔했다. 나를 스승으로 불러주는 것은 나에게 사람 되라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민 장군의 겸손 발언에 다른 스승들의 첨언이 이어졌다.
정성진 한국기자협회 고문은 “너무 겸손한 민 장군은 예의가 아니다”라며 “후진들 올곧게 지도편달 해 달라. 후생가외(後生可畏), 청출어람(靑出於藍) 아닌가. 제자가 스승보다 나아야 스승이 뿌듯한 것이다. 사람이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에게 무슨 빚을 졌는지조차 잊어버린다. 자기기만, 허위의식, 편견, 선입견 등이 그 빚이다. 스승을 능가하는 자기수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7세의 나이에도 청바지 차림에 여전히 맥가이버 목소리를 내는 배한성 성우도 “민 장군이 가짜면 나는 생짜다”라며, ‘내 마음의 스승’ 이야기를 이어갔다.
“50년 전 중학생 시절, 영화배우를 하고 싶어서 당시 허장강, 김희갑 등 유명 배우들의 대사를 따라하곤 했다. 그렇게 흉내 내는 학생 자체도 없던 시절, 스승의 격려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성우생활을 할 수 있었다. 김우중 전 회장이 세계 경영을 할 때 좋은 스승을 모시고 다녔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스승의 역할인 것 같다.”
아시아기자협회 이사로 행사 때마다 빠진 적이 없는 정대철 한양대 명예교수도 “45년째 학생 앞에 자리하고 있지만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모르겠다”며 내 마음의 스승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정 교수는 “자기 인생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학생에게 지식이 아니라 자세와 품격을 강조하는데, 그래도 학생들이 따라줘서 보람이 있다. 아시아엔 이상기 대표가 이 세상에 큰 낚시를 던지는 것 같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스승들처럼) 언제 어디서나 낚으면 대어를 낚는다”며 덕담을 했다.
이번 행사를 후원한 이형균 아시아기자협회 이사(KBS 시청자위원장)는 스승의 날에 맞춰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살리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교육감 이름은? ‘하나라도 더 알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가장 무식한 사람은? ‘모 하나도 몰라’….”
대학에서 언론을 가르치는 이 이사는 “학생들이 시험을 보면 답안지에 교수 이름도 잘못 쓰는 경우가 많더라. 학생들에게 첫 시간과 마지막 강의에서 강조하는 게 있다. 전공과목 3분 교수를 은사로 꼭 모셔라. 사회에 나오더라도 그 분들을 다시 찾아서 인생의 멘토로 삼아라. 은사나 스승이 없는 학생은 불쌍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기우 인천재능대 총장은 “선생은 많은데 스승이 없다는 이형균 이사의 말에 공감이 간다. 교육은 학생에게 마음의 불을 질러주는 역할인 것 같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게 해줘야 한다. 지치면 지는 거고, 미치면 이긴다. 오늘이 살아 있는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라서 행복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안병준 전 한국기자협회장은 ‘즐거운 문상’이라는 제목의 시를 읊으며 ‘내 마음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했다.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엄숙한 문상 뒤 남은 사람들끼리의 음복주 3잔과 추억담에 섞인 웃음소리, 미소로 일관하는 영정… 눈물샘 밸브 잠그고 우리는 오늘밤 문상이 즐거워 보인다. 음복주가 동나는 호상의 밤.”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고명진 아시아기자협회 이사는 “영월로 내려간 지 3년이 됐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온 아이가 기자되겠다고 하더라. 내가 기자가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세 명의 선생님 덕분이었듯 아이들에게도 그 은혜를 갚아 나가려고 한다. 또 평창에 오는 외국 기자들이 영월을 들를 수 있도록 아시아기자협회 추모공원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아시아엔에 ‘자연속으로’라는 연재 칼럼을 쓰고 있는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는 “생각이 아닌 행동이 습관을 바꾸고, 운명을 바꾼다. 나는 출근을 세계로 한다. 길을 잃어도 어차피 지구 위 아닌가”라며 28개월간 전 세계를 오토캠핑으로 다닌 86세 노장의 관록을 보여줬다.
그는 “엊그제 작은 강연 자리를 갔는데 칼럼을 통해 소개했던 ‘트로이메라이’와 ‘외로운 양치기’ 노래가 식사 도중 흘러나왔다. 눈 내리는 숲속에서 들었던 노래,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들을 노래를 이렇게 찾아서 선곡해 주니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이것이 인문학이다. 내 걸음 끝에 내 생명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라고 얘기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도 ‘스승’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언젠가 국내선을 탔는데 옆에 앉은 꼬마가 비행기를 처음 타봤다고 해서, ‘나는 큰 비행기에서 작은 비행기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우리는 75억 인간과 생명체 등을 태운 지구라는 큰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그 아이를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잘 관찰하면 깨달을 게 있다. 우리의 관찰력을 증가시키는 역할이 우리의 스승이다. 여기 이 자리에 계신 스승들은 자연과 우리를 맺어주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CJ제일제당에서 첫 여성 이사로 올랐던 김상임 전문코치는 “짧은 시간 스승님들을 대하며 많이 배웠다. 비우니 채웠다. 낮추니 높아졌다. 참 얕게 살았구나. 더 많이 배려하고 겸손해져야겠다”고 말했다.
‘내 마음의 스승 만들기’에 동참한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스승이 많은데도 스승을 못 모셨다. 강단에 서면서 좋은 제자를 바라지만 스승임을 주저하게 되는데, 오늘 이후부터는 내 마음의 스승들, 그리고 아끼는 제자들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칸 영화제에만 15번째 참석한 전 평론가는 “한국 영화는 아시아의 대세고, 한류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가 그 역할을 했다”며 “아시아가 꿈꾸는 좋은 세상을 일구는데 힘을 쏟고 싶다”고 보탰다.
이밖에도 올해 4번째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서는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남택희 전 경향신문 제작국장 등 사회 각계각층 스승들과 이혜민 주간동아 기자, 최재훈 경인일보 기자 등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차재준 아시아엔 총괄이사가 사회를 보며 ‘추억의 영화 퀴즈’를 통해 스승들에게 1960년대의 추억을 되새기는 기회도 마련됐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며 더 큰 가르침을 보여주는 스승들이 있어서, 우리는 얼마나 또 낮은 사람들인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 마음 속 스승의 가르침을 지금부터 하나씩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