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장성택 몰락=보수 회기? 근거 없다

김정일 사망 2주기를 맞은 12월17일 평양 시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참배를 한 뒤 나오고 있다. <사진=AP>

북한의 2인자였던 장성택 처형을 둘러싸고 숱한 해석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갑작스런 사건은 북한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장성택이 감춰진 개혁론자이며 따라서 그의 갑작스런 숙청은 보수적 국내정책과 호전적 대외정책으로의 선회를 낳을 것이란 주장이 요즘 자주 보인다. 그럴 수도 있지만,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장성택은 지난 20년 동안 세계언론에 베일에 싸인 개혁파로, 그리고 더 자주 강경파로 묘사돼 왔다. 따라서 장성택의 몰락을 보수 선회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사실 북한에서 개혁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달 사이다. 장성택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는 장성택이 개혁 주도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심지어 장성택이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이었다는 간접 증거도 있다. 북한 정부는 장성택의 혐의사실을 공표하면서 내각의 경제운영 역할을 손상시켰다고 언급했다. 올 4월 이래 내각은 의심할 바 없는 대표적인 개혁론자인 박봉주가 주도해왔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장성택은 개혁파가 아닌 반개혁파였을지도 모른다.

장성택 처형이 중국-북한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임은 조금 더 명확하다. 기소장은 장성택과 그의 측근 관리들이 국유재산을 중국에 헐값에 넘겼다고 밝혔다. 이는 자원을 대규모로 중국에 매각하는 과정을 장성택이 주도했음을 뜻한다. 장성택은 또 나진경제특구 토지를 ‘불특정 외국’에 부당 임대한 혐의도 받았다. 그 나라 또한 중국이 유력하다 (러시아도 신청을 내기는 했다). 이런 주장이 중국에게 환영 받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북한당국이 중국에 계약 무효화를 주장한다면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이 암시돼 있다).

그러나 장성택 숙청이 북한과 중국 사이에 중대한 갈등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중국은 올해 초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불편해 했지만,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원하며, 따라서 북한 내부사정과 관계없이 북한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이제 극적인 장성택 제거가 북한 주민과 북한체제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자. 통치자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비밀 각료회의에서 끌려나가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한 북한 고위관리들은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것이 김정은의 의도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에 대해 공포를 가진 관리들은 더욱 복종하게 된다. 반대로 필요할 때 자발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게 된다. 장성택 제거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체제의 권력 장악력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숙청은 그동안 유지돼온 권력의 관행이 무너졌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반 이후 북한 고위층은 실각하더라도 육체적 형벌까지는 받지 않았다 (이는 최고위층에만 적용되며, 주민들은 많은 수가 여전히 처형당하고 있다). 대체로 실각한 고위관리는 몇 달 간 심문을 받은 뒤 지방으로 추방됐다.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추방당한 사람 중 일부는 혹독한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다수는 하위 관리직으로 임명됐다. 예컨대 전직 고위관리가 트랙터 수리점 운영을 맡는 식이다. 숙청된 사람들은 정치교화학습 시간에 자신의 과오에 대해 기나긴 고백을 하고 충성선언을 한다. 지방으로 추방된 이들 중 다수는 결국 사면돼 다시 평양에서 김일성 일가의 고위층 직책을 맡곤 했다. 장성택 또한 숙청된 뒤 복귀했던 적이 있으며, 현재 유력인물로 떠오른 최룡해도 유사한 과정을 겪었다.

평양 시민들이 지난 12월13일 평양 지하철역에서 장성택 관련 소식을 보도한 <로동신문>을 보는 모습 <사진=AP>

이 같은 느슨한 처벌은 정권 유지에 기여해왔다. 고위관리들이 숙청과 구금에 저항하는 것은 실익이 없는 일이다. 권력에 복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밤 늦게 누군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데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음을 받아들인다. 고위층은 비교적 사소한 일탈행위로 단죄되지만 지도자와 공산주의 체제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번 장성택의 비참한 말로는 북한 고위관리들에게 완전히 다른 신호를 보냈다. 이제 숙청은 육체적인 형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군 장성과 정부와 당 고위관리들은 처형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음모라는 새로운 선택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력한 통치는 관료들을 더욱 복종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이는 지금까진 비이성적인 선택으로 여겨졌던 폭력적 저항을 유발할 수도 있다.

장성택 몰락과 사형집행이 대중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부 순진한 사람들은 장성택이 북한 경제난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김정은의 친인척이 끌려나가는 장면은 북한주민들 뇌리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일부 대중에겐 이번 사태는 권력 핵심부의 결집력이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듯 그런 결집력 결핍은 불만과 저항을 부추기게 된다. 그 중 일부는 “어떻게 우리 위대한 영도자가 자신의 딸을 배신자와 결혼하게 했나”라는 불편한 질문을 하게 된다. 북한 주민들의 심적 변화는 위대한 지도자와 장성택 숙청에 대한 위험한 결론으로 비화할 수 있다.

장성택 숙청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으며 조만간 훨씬 더 극적인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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