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낡은 책략,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가 지난 7월25일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7월27일)'을 앞두고 평양에 있는 조선인민군 전사자 묘지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AP>

북한, 협박-대화 ‘냉온탕’ 전술 효력상실

요즘 북한은 지난 3~4월 보였던 호전적 태도에서 돌변한 ‘유화 공세’를 펼치고 있다. 북한 고위당국자들은 6자회담에 복귀할 의사가 있으며, 핵 문제에 관한 ‘모종의’ 해결책을 놓고 협상할 준비가 돼있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양자대화를 제안했고, 한국과는 장관급 회담 개최에 근접했다. 실무회담에서 북한은 개성공단 즉각 재개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또 한국정부가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2008년 이래 동결된 금강산 관광 재개도 제안했다.

다 좋다. 그러나 바로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북한관리들은 전쟁이 일촉즉발 상태에 있으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준비가 돼 있다고 협박했다. 핵무기로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까지 타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심지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미사일을 쏘겠다고 장담했다. 북한은 이런 위협이 헛소리가 아님을 보이기 위해 평양주재 외국 대사관에 평양을 떠나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이제 협상의 시기가 왔다고 해서, 북한이 4월9일 한국 내 150만 외국인에게 핵폭탄이 쓸어버리기 전에 빨리 한국을 떠나라고 경고했던 일을 상기해서 안 될 것은 없다.

전쟁위협과 유화책 사이 해괴한 입장 선회에 대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특별한 일 아니라고 본다. 한마디로 북한이 1990년대 초반부터 쭉 써왔고 때로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던 전술이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협상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긴장시켜야 한다고 배웠다. 공포 조장은 협상을 앞둔 상대방의 태도를 부드럽게 만들어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과 원조를 쉽게 끌어낼 수 있게 했다. 예컨대 1990년대 초 경제난 악화로 원조가 필요했을 때, 북한 지도부는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흘리면서 도발했다. 사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런 벼랑 끝 전술은 큰 성공을 거뒀다. 미국과 한국 등은 정기적으로 중유를 무상 제공하고 경수로 2기를 설치하기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에 합의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해외 식량원조를 크게 늘리는 밑거름이 됐다. 1990년대 초기엔 이처럼 공갈?협박이 잘 통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가 7월29일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릉원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신화사>

남한 원조와 핵보유국 인정

따라서 몇 달 전 우리가 목격했던 전쟁위기 연출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곧이어 대화국면으로 전환된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행동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올 들어 낡은 유행가를 계속 틀었지만, 전보다 훨씬 더 시끄럽게 틀었다. 위협의 내용은 과거 우리가 들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북한 선전가들은 전례 없이 목소리를 높였고 위협의 결과로 다가올 재앙을 훨씬 극적으로 제시했다.

최근의 유화책 또한 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첫째는 남한의 원조, 둘째는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유화 공세의 강도는 3~4월 펼쳤던 전쟁위협과 마찬가지로 유별나게 심하다.

북한의 이런 비정상적 행동패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지나치게 목소리를 높이는 대외정책은 김정은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리더십 스타일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김정은은 젊고 경험이 부족한 반면 극적인 제스처를 좋아한다.

둘째, 그럼에도 북한이 전술 강도를 높이는 이유는 그런 외교전략으로 얻는 보상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탓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솔직히 말해 이들의 오랜 강온전략은 점점 그 효과를 잃고 있다. 상대방이 그런 선동을 너무 많이 봤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을 때 일부 서울시민들은 통조림과 쌀, 성냥을 사재기하러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같은 위협을 반복해서 들어온 서울시민들은 이제 카푸치노를 홀짝거릴 뿐이다. 비록 소규모 접전은 실제로 벌어졌고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심각하게 고조시킬 만한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이제 상식이 됐다. 이런 태도는 국제 외교가에도 널리 확산돼 있다. 외교관료들은 갈수록 북한의 해괴한 언행이 공허한 공갈에 불과하며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이 60주년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7월27일)'을 앞두고 7월25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전사자 추모식에서 전사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AP>

완전한 비핵화 희망 사라져

북한과 어떤 합의를 본다는 데 대해서도 무관심해지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한 1994년, 아니 2007년까지만 해도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이 관용과 진정성을 보이면 북한 핵개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었다. 다시 말해 북한 지도부를 공정하게 대하고 충분한 양의 자금을 지원하면 그들이 되돌릴 수 없는 확실한 비핵화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그런 희망은 사라졌다. 외교관료들은 비핵화 필요성에 대해 계속 립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북한 정부가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음을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하게 됐다. 이는 북한이 지난 몇 년 간 발표한 성명으로도 뒷받침된다. 북한 매체는 북한이 영속적인 핵보유국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지치지 않고 되풀이했다.

실제로 이 점에 관한 한 북한 관리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북한의 장기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무기 통제 협상이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다는 전제 아래 외부세계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 또 핵개발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돈을 받을 의사도 있다. 돌이킬 수 없도록 완전한 비핵화는 분명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아니다.

서구 열강이 결국 군축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미국과 다른 서방 나라들은 협상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서둘러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 미국 외교관이 말했듯이,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는 결코 달갑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들도 이제 아무리 생생하고 높은 톤으로 위협해도 상대방이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원하는 의제 역시 협상상대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번에 북한은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위협과 유화 제스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것이 여전히 유효할 것으로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는 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낡은 책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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