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北 주민도 이제 ‘휴대전화’가 대세
최근 북한은 각 언론 머리기사에 자주 올랐다. 물론 로켓 발사 성공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규모의 군인사 숙청과 리설주의 임신, 김정은의 신년연설 등도 널리 보도됐다. 그러나 외신기자들은 최근 북한에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뉴스를 간과했다. 바로 북한의 휴대전화 사용자가 150만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10년은 북한의 통신산업에서 지대한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다. 북한은 아직 통신망이 널리 구축돼 있지 않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북한의 통신시설은 최악이었다. 그때 만약 누군가 북한 주민에게 집에 전화가 있냐고 물었다면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집전화는 고위층 인사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1990년대 말까지, 북한은 자동 시외전화 서비스가 없었다. 시외전화를 걸려면 근처 우체국에 가서 신청서를 제출해야 했고, 제한된 시간만큼만 통화할 수 있었다. 자동교환서비스는 평양 등 주요 도시에만 있었다. 지방에서는 1900년대 초기 전화산업이 처음 발전하던 시기에나 있었던 ‘전화 교환원’을 거쳐야만 했다.
이런 것들은 2000년대 들면서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북한 정부는 먼저 현대적인 전화망을 구축했다. 10년여 전 자동교환이 보편화됐고, 시외전화도 가능해졌다.
불과 몇 년 사이 전화 이용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북한의 경우 신뢰할만한 통계치가 없지만 현재 북한 전역에 수백만대의 집전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추측해 볼 수 있다. 한 정보통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작은 마을이라도 전체 가구의 3분의 1 가량은 집전화가 있으며, 평양은 절반 이상일 것이라고 한다. 이는 15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근처 기지국에서 전화를 개통하는데 드는 200~300달러는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비용이지만 시장에서 웬만큼 성공한 상인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기술 발전 여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시외전화는 아직 제한적이고, 두 가구가 전화선 하나에 연결되거나 같은 전화번호를 공유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식의 절약 방식은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60년대와 1970년대 소련에서도 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에서는 최근까지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준으로 전화가 보급되어 있다.
물론 북한에 해외전화도 있다. 최근에 널리 보급되며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다. 전화가 다양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해진 것은 분명하다.
북한에 휴대전화가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초였다. 그러다 2004년 당국자 수백명을 제외하고 일반인에게 휴대전화가 금지됐는데, 이유는 아직도 불명확하지만, 용천 열차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용천 열차사고는 김정일이 탄 무장 열차가 용천역을 지난 직후 발생했다. 이 사고는 사실 김정일 암살 시도였으며 기폭장치는 휴대전화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루머에 대해서는 좀 의심스럽지만, 북한에서 2004년 휴대전화 사용이 갑자기 금지된 것은 사실이다.
북한에서 휴대전화는 2008년 말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 2008년 이집트 통신사인 오라스콤(Orascom)은 북한의 이동통신망 구축에 투자하는 데 동의했고, 이와 함께 1980년대 말 이후 완공되지 못했던 유리 피라미드 형태의 유경호텔 건설에도 동의했다.
당시 이는 위험한 사업 결정 같았지만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전화기는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거의 한달 월급 만큼 비쌌지만 주민들은 기꺼이 전화기를 구입했다. 요즘 대부분의 평양 거주 가구들은 전화기를 갖고 있으며, 휴대전화 역시 북한 주요 도시에 퍼져 있다. 오라스콤 CEO는 “평양을 포함한 16개 주요 도시와 100개 이상의 소도시, 일부 고속도로와 철로 구간에서 통신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인데, 새롭게 전화기를 갖게 된 북한 주민들은 서로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고, 수다를 떠는 많은 기회를 갖게 됐다. 암거래 상인들은 최신 가격 정보를 얻고, 출하 일정을 조정하며, 장거리 현금수송 등을 상의하느라 전화를 이용하게 됐다. 전화 없이 이런 일들이 이뤄지긴 어렵다.
이는 또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북한 당국은 주민들 간 수평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북한 사회는 공산사회의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구분됐고, 사람들은 바로 옆집 사람들이나 직장 동료들과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대화할 때 항상 조심했다. 밀고자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시장은 물건과 서비스를 교환할 뿐 아니라 소문이 오가는 곳이 됐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북한 주민들이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정치나 다른 위험한 주제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전화를 사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당국이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려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포는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크고 빠르게 통신망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모두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에 전화가 10만대 밖에 없다면 모든 회선을 도청할 수 있겠지만 지금 북한에는 400~500만대의 전화기가 있다. 도청은 점점 더 어려워졌으며, 그 숫자만큼 비밀경찰을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위험한 단어만을 골라 잡아내는 목소리 인식장비도 있다. 이런 장비가 비밀경찰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이 알고 있듯 위험한 단어들을 피하거나 다른 언어로 대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기술 역시 조만간 북한 주민들이 습득하게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 주민들이 즉시 새 기술을 활용해 혁명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전화를 갖고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북한의 엘리트 계층이며 현 체제의 존속을 바란다. 그렇지만 이제 북한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는 점, 멀리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아직 북한에서는 최초의 시민사회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호소통이 점점 늘어나고 소통 채널에 접속하기 쉬워지면서 ‘북한 사회의 계층파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주민들의 정치사회적인 행동을 이뤄내는 새로운 북한을 만드는 중요한 첫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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