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조총련…’국가 속 또 다른 국가’
최근 한 50대 탈북자 여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1987년 혹은 1988년 즈음?북한의 한 농촌지방에 살 때 미국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깜짝 놀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 시대엔 북한 극장에서 서구 영화가 상영돼선 안됐고 VCR은 미국에서 새로 나온 재규어 자동차보다도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이웃집에서 VCD를 봤고, 그 이웃들은 일본에서 귀환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실제로 40여년 간 일본인 귀환자들은 북한 사회에서 매우?부유한 집단에 속했다. 현재는 그 영광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지만 말이다.
1930년대 일본은 한국에서 많은 노동력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강제로 노동에 동원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1945년까지 일본에는 2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있었다.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항복하면서 바로 돌아갔지만 70만 명 가량은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에 남을 것을 결정했다.
이렇게 일본에 남은 사람들은 제도적으로나 일상 생활에서나 자신을 사회적 차별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했다. 1952년 그들은 일본 시민권을 빼앗겼고, 대부분이 저임금 비숙련 노동을 통해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러한 공식적인 차별 조치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한국인에 대한?경멸적 태도로 더욱 강화됐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차별을 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 프롤레타리아 계급 구성원이 되어 갔고 그 결과 일본 급진좌파나 일본 공산당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됐다.
1955년 조총련으로 알려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결성됐다. 조총련은 결성과 함께 30만 명에 달하는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자동적으로 북한시민이라고 여겨졌다. 그들의 대부분은 대개 한반도의 남쪽에서 태어났거나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그들의 ‘고국’이 어디인지 본 적도 없다.
조총련은 ‘국가 안의 또 다른 국가’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법인회사, 신문사, 금융기관 그리고 한국어 학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로 장식돼 있고 학생들은 북한??동포들이 누리는 풍요로움에 대해서 배웠다. 또 위대한 원수 김일성에 대한 글쓰기는 필수 교육과정이다.
애초부터 조총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완곡하게는 ‘송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북송을 꾀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북한은 가난과 억압이 있는 사회였고 어떤 면에서는 그들과 경쟁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의 러시아보다 더 스탈린주의적이었다.
북한당국은 곧 숙련된 기술이나 지식이 있는 조총련계 사람들이?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자금을 북한으로?끌어 오는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한 주민들은 편지를 써서 보낼 수 없는 반면 이들은 일본에 있는 친척들과 계속 연락을 취할 수 있었고 이런 기회를 이용해 돈이나 다른 형태의 물질적 지원을 요구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이들의 상황은 나빠졌다. 일본에서 유입됐던 자금은 빠르게 고갈되어 갔고 이는 20년 전에 비하면 10%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일본정부의 정책에 따른 결과였다. 2000년대 초반 악명 높은 납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일본 정부는 교역을 제한하고 사적인 자금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금지했다.
송금이 줄어든 것은 세대가 교체하고 한국인 집단 내부에 많은 변화가 생긴 점도 상당부분 기인한다. 2000년대 초, 북한으로 가게 된 이들을 알던 사람들은 대부분 60, 70대였고 직계 친척들은 죽었거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었다. 직계 친척도 아닌 이들이 북한의 선전부를 믿을 만큼 순진한 이들에게 기꺼이?돈을 보내줄 이유가 거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총련의 영향력이 약해지며 한때 강대했던 조직은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고 이제는 거의 4만 명도 남지 않게 됐다. 경제적인 붕괴와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으로선 이들의 자금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시기적으로 굉장히 안 좋은 것이었다. ?한때 북한을 도왔던 송금 자금은 옛날 일이 돼버렸다.
오늘날에도 이들 대부분은 (첫 세대가 살아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자식이나 손주일 것이다) 북한의 평범한 주민들과 별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 일본당국이 이들을 여전히?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만 이 특별한 그룹이 가졌던 의도나 목적은 더 이상 북한 사회에 독립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 최선화 기자?sun@theasian.asia
*원문은 아시아엔 영문판 (The AsiaN)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theasian.asia/?p=19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