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북한의 미키마우스와 청바지가 의미하는 것

최근 비교적 조용했던 북한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고 있다. 북한에서 실질적 최고 사령관이었던 리영호 총참모장의 실각은 김정은 시대의 첫 번째 숙청이다. 이 사건은 예상대로 전 세계 언론의 다양한 추측을 불러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은 좀 덜 주목받고 있는 사건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다. 바로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공연 말이다. 이 공연에는 드물게도 팝 음악이 등장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은 젊고 매력적인 여인과 함께 이 공연을 관람했다.

리영호 총참모장의 실각으로 거대한 권력이동이 이뤄지고, 아마도 민간인 관료들의 권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보다는 지난 공연이나 김정은의 정책 변화 등을 더욱 주목해봐야 한다. 이런 변화들은 그동안 북한에서 특권층으로 살아온 80대 권력들을 뛰어넘고 조국의 미래를 위해 역할을 하려는 김정은의 선택과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옆에 앉아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누구인가? 솔직히 그가 누군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다수의 북한 인민들이 그 여성을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분명하다. 당연히 김정은의 배우자로 여길 것이며, 그 예상은 아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커플이 참석했던 공연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이 공연에서는 미국 제국주의 헤게모니와 탐욕의 상징인 미키마우스를 포함해 디즈니 만화영화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서양 팝음악, 프랭크 시나트라 노래 등 레퍼토리도 눈에 띄었다. 북한에서 이런 풍경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김일성의 첫 번째 부인 김정숙은 생전에 단 한 번도 북한 언론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려봐야 한다.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도 그리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 김일성과 결혼한 뒤 15년이 지나서야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짧게 소개된 게 고작이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의 둘째 부인인 김성애는 정치적 야망을 키웠고 언론에서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아내로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 여성조합의 대표로, 정치인으로 알려진 것이다.?양아들이 새로운 권력자로 떠오르면서 그녀도 곧 정치적 야망을 접고 언론에서 사라져야 했지만 말이다.

김정일의 수많은 연인들은 김일성 때보다 더욱 가려져 있었다. 김정일이 외국 고위 관료들과의 연회에 연인들과 함께 참석한 적은 있지만 북한 공식행사에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김씨 부자의 비밀 속 연인들이 공개 석상에 나타난 것만큼이나 미키마우스의 등장은 예외적인 일이다. 북한에서도 중국에서 수입한 옷이나 장난감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긴 하지만 반미주의가 팽배한 나라에서 미국 팝문화의 대표 아이콘을 공식적으로 등장시킨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다른 변화를 암시하는 단서들도 있다. 낮시간에 평양 거리를 활보하는 청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그렇다. 북한 여성들은 직장 밖에서 바지를 입는 것이 금지됐었다. 그들에겐 원피스와 치마가 사회주의의 도덕적 이상과 미적 가치에 부합된다고 여겨져 왔다. 바지 입은 여성을 처벌하는 법은 산발적으로 집행됐기 때문에 평양 여성들은 처벌받지 않고 바지를 입을 수 있다. 귀걸이나 장신구를 착용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이 또한 과거에는 금지품목이었다.

이런 변화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김정일식 리더십의 변화는 인간적으로 쉽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그의 시도를 나타낸다. 그렇다고 이런 모습들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상징적인 변화가 김정은이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전부인지도 모른다. 사실 김정은은 아직까지 독립적인 선수가 아니다. 주변은 그의 부모나 조부모 연배의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지난 15년간 북한을 이끌어온 사람들이다. 리영호 총참모장의 실각이 북한 내 힘의 균형을 바꿨을 지는 모르지만 북한 정치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아직 모든 권력은 이 노장들에게 있다.

김정은이 노장들의 도움 없이 경제나 외교, 군사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고안하거나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보좌관 집단을 만들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김정은은 결정권을 사소한 문제들로 국한해야 한다. 핵실험을 지시하거나 취소할 때도 참모와 노장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궁정악대가 어떤 음악을 연주할지, 공식적이지 않은 행사에서 카메라 앞에 누구와 등장할 지에 대한 결정권은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여성들이 바지를 입는 것과 미국 팝음악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 상징성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어린 독재자는 덜 억압적이고 좀더 진보적인 나라를 원하는 것 같다. 북한의 노장들이 이런 변화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불안정해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그런 걱정을 공감하고 있지도 않다.

김정은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려면 아마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팝음악이나 청바지에 국한된 작은 변화들이 북한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번역 임현정 인턴기자
정리 박소혜 기자 news@theasian.asia

*원문은 아시아엔(The AsiaN) 영문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theasian.asia/?p=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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