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김정은을 위한 4가지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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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21세기의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했다. 그리고 빈곤하기 짝이 없는 북한은 이제 그의 아들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나이어린 사성장군인 김정은이 통치할 것이다. 급작스런 권력 교체는 북한의 앞날에 여러 가지 추측을 낳고 있다. 북한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되려면 새로운 정권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개혁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인간이라면 긍정적이어야 할 것이다. 개혁에 대한 기대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향후 몇 년간은 북한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김정일이 실행했던 정책 패키지를 대체할 만한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다고 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전세계 언론에서 김정일을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치부했으니까. 그런데 김정일에 대한 이런 시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김정일의 정책은 비이성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도 체제 유지라는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했다. 체제 유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씨 가문은 모든 부정적인 변수에도 불구하고 계속 권력을 잡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린 김정은 대장이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의 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또 그가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특권들을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며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김정일의 정책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전략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 전략 : 개혁하지 말라. 중국을 모방하지 말라.
지난 25년간 북한 정부가 곧 중국식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수많은 발표와 예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잘못된 예상이었음이 증명됐다. 김정일이 ‘거대한’ 중국의 사례를 모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김정일의 결정은 옳았다. 북한의 상황은 중국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민족에 속해 있으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부유함(적어도 북한 기준에서 보자면)을 만들어낸 남한의 존재에 있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보다는 남한의 성공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식 개혁이든 남한의 성공이든 사회 통제 완화를 전제로 하는데 중국은 통제 완화로 인한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북한처럼 잘 사는 쌍둥이 형제를 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대만을 중국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북한의 경우 개혁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중국식 경제 부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20년 전 동독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동독인들은 소련이 동독 내부 사정에 관여할 의사가 없음을 깨닫자마자 동독 체제에 맞섰고 잘 사는 서독과의 통일을 요구했다.
두 번째 전략 : 핵무기 프로그램을 사수하라.
전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북한은 핵 보유국이다. 이것이 잘못된 인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북한의 핵 도발 가능성이야말로 전세계를 이 작고 빈곤한 나라에 집중시키는 원동력이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보자면, 핵 도발 가능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쓸모가 있다. 우선 북한 정권은 억지력으로서의 핵무기가 필요하다. 북한은 그들이 핵 도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한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은데 그들의 믿음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이라크 침공은 이들의 믿음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다피의 비참한 최후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가다피는 북한이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을 포기했던 인물이다. 그는 경제 개발과 핵 개발을 맞바꿨다. 북한이 볼 때 리비아에서 벌어진 일은 핵 무기가 왜 필요한지 더욱 확실히 설명해 주는 예가 되었다. 더욱이 핵은 폭동의 순간에도 정권을 지켜줄 수 있는 결정적 힘이다. 북한 권력자들은 반 가다피 세력이 서구의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만약 가다피가 끝까지 핵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서구에서 개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 정권에서 핵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협박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핵이 없다면 북한은 바깥 세계의 압력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서 북한은 가난하고 작은 나라이다. 일인당 GDP와 인구수는 가나 혹은 모잠비크와 비슷하다. 핵의 존재는, 그리고 핵 만큼은 아니지만 미사일의 존재는?김씨 가문의 나라가 전세계 강대국으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원천이다. 그리고 강대국의 관심은 대개 상당한 수익으로 이어진다. 핵을 실제로 양보하거나 아니면 양보하는 척만 해도 바깥 세상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없는 북한은 ‘가스 없는 투르크메니스탄’과 같다. 강대국을 상대로 협박하거나 그들을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
세 번째 전략 : 야당을 허용하지 말라.
수 십년간 북한은 여러 독재 국가들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북한의 야당은 알려진 바 없다. 1950년대 이후로 북한에는 사하로프, 하벨, 류 샤오보같은 인물이 나온 적이 없다.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권이나 이념을 비판할 때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숨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야당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야당 불허 정책은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는 북한 정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만약 북한 주민들에게 정치가 허용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삶과 남쪽 잘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북한 정권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북한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야당 절대 불허 정책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일성 주석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이 정책은 그 후로 더욱 공고한 전통과 통제 수단이 되었다. ?
네 번째 전략 : 시장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상행위는 허용하라.????
사실 북한은 지난 15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정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련식의 중앙집권 경제는 무너졌다. 정부 시설의 현재 생산성은 1990년의 절반 수준이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장사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 같은 상행위가 합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는 것이 보편화됐다. ?
이 같은 새로운 상황에서 평균적인 북한 가정은 국가로부터 배급을 받기보다 스스로의 상행위를 통한 시장경제로 살아가게 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의무적으로 국가 소유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공장을 결근하고 시장에서 돈을 버는 추세다. ?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추세는 북한 정권에 위협에 될 수 있다. 수십 년간 북한 정권을 받쳐준 감시 시스템은 북한의 모든 성인이 국가 소유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한다는 전제 하에 작동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북한 주민이 국가에서 지정해 준 곳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다면 그 사람은 정부의 레이더망 밖에 있는 것이고 이건 정부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시장이란 온갖 루머가 유통되는 곳이다. 그리고 수평적인 관계가 쉽게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의 맛을 본 사람들은 더 이상 국가를 예전처럼 공급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생하는 숙주로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시장은 정치적으로도 위험하며 이념도 전복시킬 수 있다. ?
북한 정권이 1984년을 자꾸 상기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도 나오는 1984년은 북한이 의도했던 스탈린식 경제가 실제로 성과를 냈던 마지막 해이기 때문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은 체제 유지에 위험한데 북한 권력자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을 다루는 것은 무척 민감한 문제다. 북한 주민들 자체는 무척 순하고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자주 불만이 표출되고 가끔씩 소동까지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금껏 벌어졌던 소동이 정치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에 소동은 지극히 국지적이고 상행위와 관련된 규칙 때문에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시장 상인들은 거의 다 중년 여성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튀니지의 경우에서 보듯 작은 소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북한 정권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은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으며 통제가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반시장적인 정책을 수립한다고 하면 아주 신중하게 계획하고 진행해야 한다. 과도한 압박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고 이것은 또 엄청난 사건의 도화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은 이상의 4가지 전략을 아주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김정일은 없지만 그의 측근들은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다. 김정은이 그들의 조언을 듣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그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어리기 짝이 없는 김정은 장군이 향후 몇 년간, 아닌 몇 십년간 북한을 통제할 수 있음을 예상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