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북한 지도부를 가장 자극하는 말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이 만났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의 차기 지도자는 북한 정권과 핵개발 벼랑 끝 전략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무엇보다 박 당선인은 “옛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진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며 대규모 군비확장이 레닌 공산주의 깃발의 종말을 피하는 데 소용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상당한 논란을 낳을 수 있는 언급이며, 한국 차기 지도자의 공개적 발언으로는 피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북한 지도부는 욕설과 비난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모험적’ ‘호전적’ ‘도발적’이라는 자신들에 대한 평가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국제법이라는 성역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심지어 ‘전지전능하신 신의 뜻’도 그들에게는 강력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 박 당선인의 언급은 좀 다르다. 북한체제가 공산혁명에 대한 불만 등 주요 취약점이라 여기는 부분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의 이 ‘비외교적’인 발언은 그 자체로는 옳다. 구 소련은 외부 침략이 아닌 내부로부터 붕괴됐다. 소련은 경제 시스템의 특정 요인 때문에 무너졌다. 양질의 소비재를 만들어 국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한 불치의 뿌리 깊은 무능이 그것이다.
소련의 중앙통제 경제는 몇몇 매우 중요한 장점을 갖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정책결정권자들이 핵심적이라고 여기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그 결과 국가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정말 중요하거나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일부 분야에서 약한 경제 체질에 비해 훨씬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은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이란 대가를 치르고 달성된 것이다. 1950년대 소련은 비교적 빈곤한 나라였음에도 훨씬 부유한 미국의 그것과 대등한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소련은 세계적 수준의 발레팀을 보유하기도 했다).
소련 경제는 훌륭한 수소폭탄과 전투기를 생산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쓸만한 컬러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청바지 생산에 관한 한 절망적이었다. 공산주의 시절 러시아는 심지어 주요 곡물 수입국이었다. 이것은 의외의 사실이다. 러시아는 공산정권 전에도, 후에도 대규모 밀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양질의 소비상품을 생산하고 국민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능력 부족에 늘 시달렸다.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문제는 시장경제로의 이행 없이는 고쳐질 수 없는 구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소비에트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의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에트 시민들은 선진화한 서구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 격차는 결코 메워질 수 없음이 분명했다. 소비에트 국민들은 고질적인(그리고 계속 악화되는) 소비재 부족과 그것을 구하는 데 필요한 긴 줄, 필연적으로 엄격하게 내핍할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 경제생활에 신물이 났다.
소비에트식 국가 사회주의의 운명은 몇 십 마일마다 고장 나지 않는 승용차, 신은 뒤 몇 시간 안에 물집이 생기지 않는 신발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력에 의해 결정됐다. 소비에트 시민들에겐 우주 개발도 세계 최고 전투용 탱크 생산능력도 그런 약점을 보완해주지는 못했다.
정치적 요인이 작용했음도 인정된다. 사회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공산주의 신조를 수용할 수 없었고, 자의적 과두체제의 비민주적 통치에 분노하게 됐다. 소비에트 연방과 동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민족주의와 인종 갈등 또한 중요했다. 그러나 역시 궁극적인 요인은 소비재와 주민생활이 결정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북한의 경우 그런 종류의 압박에 더욱 취약하다. 북한 경제체제는 1940년대와 1950년대 소련의 청사진에 따라 건설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규제와 중앙통제가 더욱 강화됐다. 따라서 초기 소비에트 모델의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모두 논리적 양극단으로 향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금껏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모든 국가 가운데 북한은 가장 가난한 나라다. 북한의 내핍 생계와 고질적 소비재 부족은 1970년대 소련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북한은 실제로 내부 불만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북한의 엘리트층은 이런 취약성을 잘 이해하고 때때로 생활수준 향상을 목표로 한 경제재건 운동에 나서곤 한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생필품 공급 능력부족은 북한을 극단으로 몰고 간 국가 사회주의의 구조적 특징이다.
또한 북한 정치 지도층은 한가지 중요한 점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 소비에트 정권 지도부와 다르다. 소비에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거대한 대중의 불만에 의해 붕괴할 수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반면에 북한 지도층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그들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목격했으며, 고통스럽지만 같은 시나리오가 북한에서도 벌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체제에서 전형적인 현상인데, 북한 지도층은 상습적으로 음모론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가 미국 중앙정보부(CIA), 영국 해외정보부(MI-6), 이스라엘 비밀첩보국(Mossad) 등 제국주의 정보기관에 의해 은밀하게 수행된 정교한 심리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작전은 존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며, 있다 하더라도 결과를 낳는 데 아주 미미한 역할을 했다).
이것이 바로 외부 힘이 빈곤에 찌든 북한 인민의 잠재적 불만을 조장하거나 이용하려는 조짐이 있을 때 북한 지도층을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최근 언급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은 이 발언을 남한이 북한의 내부 반발을 적극적으로 조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에게 최악의 악몽으로 인식될 것이다.
남한 정치인들은 북한 체제의 종말을 재촉할 의도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통일에 대해 립 서비스만 하고 공산주의 독재에 대해 통상적인 비판만 할 뿐 실제로는 현상유지를 선호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내부 반발을 자극하는 데 약간의 적극적 관심이라도 내비친다면 그것은 북한 정부를 심각하게 경악시킬 것이다. 그리고 경악한 북한 정부는 현재 전세계가 가장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은 거리낌 없는 언급을 통해 결과적으로 옳았던 것으로 입증될 것 같다. 북한 핵 문제는 협상과 외교가 아니라 북한 내부 변화를 통해 해결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추동력은 북한 주민들이며, 덜 경직되고 풍요롭고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에 살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이다. 그런 사회는 현재의 북한 체제 때문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해법은 그러나 수 십 년은 아니더라도 수 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원문은 아시아엔(The AsiaN) 영문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theasian.asia/archives/60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