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낙선 후보 가족으로 산다는 것…”땅에 뒹구는 명함을 다시 주울 각오가 있는가”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단순한 끝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살다가 어느 날 낙선 후보의 가족과 스치게 된다면, 눈을 마주치지 못하더라도 부디 고개만은 돌리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또 모진 삶이 조금 더해지겠지만, 그 또한 견뎌낼 용기를 내보려 한다.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땅에 뒹구는 가족의 명함을 다시 주울 각오가 돼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오늘도 나는 한참을 침묵한다.-본문에서 <AI 생성 이미지>

참담하다. 서운한 내색조차 할 수 없다. 지방선거 결과를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려 하지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죄인이 된 것처럼 사람들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솔직히 패배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다.

결과가 발표되던 날 밤, TV 앞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숫자만 바라보던 시간의 초조함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끝까지 말을 아꼈다. 그리고 결과가 확정된 뒤 가장 먼저 꺼낸 말은 “고생했다”였다. 그 한마디에 지난 며칠, 아니 몇 년의 시간이 모두 담겨 있었지만 정작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선거 패배는 삶의 의욕을 꺾는다. 더 이상 낙담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이 결코 ‘무뎌진다’는 뜻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는다. 좌절이 반복될수록 희망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지고, 마음 한편의 안타까움은 더욱 복잡해져 갔다.

선거운동은 우리 가족의 일상을 늘 같은 방식으로 무너뜨렸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서고, 밤늦게야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날들. 시장 입구에서 허리를 숙이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손을 내밀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모습은 어느새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없이 옷을 챙겨주시고, 식어가는 밥상을 덮어두신 채 하루를 견디셨다.

그나마 손을 잡아주던 이웃들, 이름을 기억해 주며 웃어주던 얼굴들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였다. 하지만 가족이 건넨 명함을 눈앞에서 버리는 모습을 보거나, 바닥에 나뒹구는 가족의 명함을 주워야 하는 순간은 누가 볼까 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자존감은 짓눌렸고, 그 장면은 가짜 뉴스나 비난의 말보다 더 깊은 상처가 되어 기억 한편에 똬리를 틀었다.

“또 나왔냐.”
“이제 그만해야지.”

못 들은 척하려 애썼지만, 결국은 후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살을 도려내는 아픈 상처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고, 그 순간만큼은 왜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선거 패배와 함께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결국 현실이었다.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수억 원에 이르는 선거비용은 매번 가족의 삶을 뒤흔든다. 당선되거나 득표율 15% 이상을 얻어야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고, 10% 이상 15% 미만은 절반만 보전받는 구조 속에서 낙선이 반복된다는 것은 경제적 부담 역시 반복된다는 뜻이다.

처음 도전했을 때는 가족의 자랑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기회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집안의 대화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미뤄둔 계획들은 하나둘 쌓여 갔다. 가족의 삶 자체가 선거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쌓여 가는 빚과 병원비, 아이들 학비, 일상의 작은 선택들까지도 비용 때문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낙선 이후 우리 가족이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치적 도전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후보자 가족이기에 앞서 한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가 주는 더 깊은 신음을 선거운동을 거치며 느껴야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무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좌절감, 정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쌓여가는 피로감, 변화를 원하면서도 그 변화를 쉽게 믿지 못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과 마주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시간, 그것이 선거운동이었다. 그들을 통해 세상을 더 많이 배웠지만, 솔직히 기분 좋은 배움터는 아니었다.

왜 누군가는 희망을 말하면서도 고개를 돌리는지.
왜 어떤 약속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지.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개표 초반에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화면 속 숫자가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결과가 확정되었을 때, 크게 울지도 크게 낙담하지도 못했다. 도와준 지지자들 앞에서 그저 담담하게, 조금 더 의젓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티려 했다. 그러나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비록 결과는 아쉬웠지만 그 과정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려 했다. 그런데도 당선을 향한 도전 속에서 후보자가 끝까지 변하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향한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었다. 그 진심만큼은 가족 모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은 더욱 타들어 갔다.

이제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일상은 아닐 것이다. 몇 번의 선거를 지나며 우리는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하루하루 삶의 짐을 짊어진 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듯 또 다른 고난의 시간을 걸어갈 것이다. 어쩌면 그 무게 덕분에 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다시 도전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치가 얼마나 무거운 선택인지, 그리고 그 선택이 한 가족의 삶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 우리 가족은 몸으로 체험했다. 이 모든 시간이 있었기에, 가족의 한 구성원인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앞으로의 삶이 지난날보다 더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음을 고해성사를 하듯 털어놓는다.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단순한 끝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살다가 어느 날 낙선 후보의 가족과 스치게 된다면, 눈을 마주치지 못하더라도 부디 고개만은 돌리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또 모진 삶이 조금 더해지겠지만, 그 또한 견뎌낼 용기를 내보려 한다.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땅에 뒹구는 가족의 명함을 다시 주울 각오가 돼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오늘도 나는 한참을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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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건호

'남도일보' 전남 동부권 총괄취재본부장 전무, 전 kbc광주방송 보도국장, '언론보도와 명예훼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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