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북한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도왔다고?

민족민주화대성회 참석을 위해 교문을 벗어나 금남로로 향하고 있는 전남대학교 교수들, 이들 뒤를 학생들이 따르며 민주주의를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5·18 기념재단>

한국의 역사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과거사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가정해 보는 것은 항상 논란을 불러오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1960년경에 대한 서술을 자제하려 한다. 한국사에서 1945년 이후 대부분의 주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극단으로 기술돼 있다. 한국 현대사의 인물들은 어떤 이에게 영웅인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는 악당으로 비친다.

지금까지 논쟁이 일고 있는 사건 중 하나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다. 한국 ‘진보’ 세력 -한국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하고 싶어한다-들은 광주사태를 당시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나 그를 지지하는 미국 세력에 직접적으로 대항한 자유민주주의의 표현이라고 본다. 다수의 우파 역시 그런 평가에 동의한다. 전두환을 지지하던 전통 보수세력 일부만이 이 사실을 의심하거나 적대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다. 2013년 6월 중순, 보수 성향의 종편 채널 두 곳에서 ‘특종’이라며 방송한 내용이 있다. 1980년 광주에 북한요원과 특수부대가 비밀리에 급파됐다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들이 민주화에 찬성하는 혁명세력과 서울 신군부 사이 벌어진 혈투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탈북했으며 북한에서 특수부대원이었다고 주장하는 한 탈북자는 채널A와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광주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한국 좌파 세력들은 이 주장에 대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음모론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를 향해 달려온 한국의 굴곡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며 비극적인 사건을 훼손시키고 우파들이 독재자를 떠받들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좌파 세력의 이러한 주장은 실제로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제시된 근거들은 설득력이 떨어졌고, 이 종편 채널들은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세력의 반응은 여러 측면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첫째,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만약 북한군이 광주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실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바꾸지는 못한다. 북한 스파이 수십명이 광주에 있었는지 여부, 혹은 싸움에 참여했는지 여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 민주주의 운동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라는 사실을 전혀 바꿀 수 없다. 광주시민들의 용기나 희생은 북한 스파이들이 현장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평가절하되거나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 좌파매체가 이런 주장에 대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도움이 됐을 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1950년대부터 미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소련이 미국의 급진적인 좌경화에 참여했으며 이를 지지했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부인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소련의 기록보관소가 일부 공개되면서 여러 주장들이 증명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파세력의 음모론으로 무고하게 희생됐다고 알려진 알저 히스는 실제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의 봉급을 받았으며 그에 버금가는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오랫동안 미국 진보세력이 무죄라고 믿어왔던 로젠버그는 실제로 엄청난 열정을 갖고 비밀리에 소련을 위해 일했다. (하지만 실제 결과물은 적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소련 정부는 모든 정부가 하는 일을 한 것이다. 타국의 정치적 계획이나 기술적 우위를 알아내기 위해 다른 나라를 정찰했다. 소련 요원들은 미국 좌파세력 중 일부를 끌어들여 협력시키는데 성공한 적도 있지만, 공산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들이 당시 수많은 미국 ‘진보세력’의 공감을 얻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 사실이 맥카시 상원의원의 마녀사냥을 덜 혐오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에서 반가운 뉴스였음은 분명하다. 북한 지도부는 한국 군부가 시민들의 반란으로 전복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반정부 운동을 돕겠다는 의지도 감추지 않았다.

1960년 이승만 정부가 민중들에 의해 갑자기 무너지자 북한 지도부는 충격에 빠졌다. 김일성은 차후에 남한이 지도부를 또 무너뜨린다면, 북한은 정치적인 기회를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말, 북한은 한국의 반정부운동을 돕기 위한 게릴라전을 조직하려 특수요원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1979년 10월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당했을 때,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점차 확대됐고, 광주민주화운동은 그 정점이었다. 북한이 이 상황을 면밀히 주시했으며 잠입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매우 논리적으로 보인다. (이는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예상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추론한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당시 광주에 북한요원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 좌파언론들이 독자들을 설득하고 싶어하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당시 북한의 존재를 믿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폭로하는 것은 균형을 깨트리 것이다. 비록 이런 주장들이 옳은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역사학자들이 알고 있듯, 역사에는 실제로 매우 이상한 협력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독립과 민주화운동은 매우 의심스러운 평판을 갖고 있는 세력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스페인 내전에서 스탈린의 소련이 스페인 공화국의 가장 적극적이고 관대한 지지자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련은 지정학적인 고려와 더불어 공산주의가 될 수도 있는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스페인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스페인 내전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민주주의자들의 명성을 훼손시키지 않았다.

이와 비슷하게 중국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쑨원은 당시 제국주의 일본을 포함한 많은 외세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쑨원과 그의 지지자들을 일본 군대, 혹은 사악한 일본이 조작한 희생자로 보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벌어진 많은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독립이 일본 음모의 결과라고 묘사하는 것은 정말로 부적절한 일일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이런 사례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그러므로 북한 정부가 한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돕기 위해 실제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을지라도, 또한 이 사실이 실제로 증명된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의 개입 결과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개입에 관한 보도는 한국이 이룩한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단지 북한 지도부의 비겁한 계획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게다가 북한이 남측 형제들을 그냥 내버려 뒀다면 한국은 아마 여전히 군사독재의 보살핌 아래서 매우 행복하게 살았을 것임이 틀림없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가정들은 모두 완전히 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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